[오춘호의 글로벌 Edge] 맨체스터 票心, 브렉시트 本心

입력 2019-12-19 18:17   수정 2019-12-20 00:14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영국 맨체스터 지역을 ‘산업적 분위기가 서려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맨체스터는 산업혁명이 탄생한 곳이자 면방직의 메카다. 산업혁명 당시 이곳 기업인들이 내뿜는 기업가 정신은 대단했다. 새로운 시장이 계속 개척됐고 신상품이 잇따라 나왔다. 자유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농민들도 한몫했다. 이들은 그렇게 산업을 키우고 대영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마셜 못지않게 좌파 경제학자들도 이 도시를 자주 언급한다. 그들은 산업혁명과 함께 전개된 노동운동이 꽃을 피운 ‘노동운동의 성지’라고도 말한다. 맨체스터는 두 가지 얼굴을 가졌지만 1930년대 이후엔 노동당이 거의 장악했다. 노동당은 맨체스터를 포함해 영국 북부와 중부를 가로지르는 ‘레드월’ 지역을 지켰다. 1980년대 대처 보수당 정권 시절이나 2000년대 후반 캐머런 정권에서도 이 지역은 난공불락이었다.

노동당 텃밭 '레드월', 허물어져

하지만 지난 12일 열린 영국 총선에서 그 벽이 무너졌다. 맨체스터 지역 27개 선거구에서 9개 선거구가 보리스 존슨이 이끄는 보수당에 표를 던졌다. 20년 전만 해도 보수당이 고작 1석만 차지했고 2년 전 총선에선 4석밖에 얻지 못했던 곳이다. 맨체스터만이 아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노동당)의 선거구였던 세지필드에서도 보수당이 승리했다. 영국 정치의 패러다임 대전환이다.

보수당의 승리보다 주목되는 건 노동당의 패배다. 2년 전만 해도 의기양양했던 제러미 코빈 노동당수의 선거 전략이 먹혀들지 않았다. 그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분명한 입장을 내지 않았고 선거 전까지 철도 국유화, 무상교육, 무료통신, 주 4일간의 휴가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30년 전 노동당 공약 그대로다. 당장 간호사가 없어 긴급 수술을 제대로 못하고, 경찰관·소방관 부족으로 앰뷸런스 늑장 사태가 반복되는 게 영국의 현실이다. 오히려 이런 현실의 개선을 보수당이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역동적인 경제를 길러낸 대영제국에 대한 영국인들의 향수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브렉시트를 통해 유럽연합(EU)에서 자유로워지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영국인이 많다. 이들은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는 관료주의에 대해 맞설 수 없는 현실을 답답하게 느낀다.

'한번 바꿔 보자'는 의지 읽혀

하지만 영국인을 더욱 무기력하게 하는 건 고질적인 영국병에 탈출구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 영국인들이 원하는 건 변화와 혁신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브렉시트를 통해서라도 영국을 개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경제는 갈수록 쪼그라드는 상황이다. 제조업은 점점 소멸해가고, 인공지능(AI) 창업도 열기를 띤다지만 직원 50명 이상 기업을 찾기 힘들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칩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암(Arm)사는 일본 소프트뱅크에 매각됐고, AI 붐을 일으켰던 알파고의 딥마인드도 구글에 팔렸다. 디지털을 선도하고 디지털 개념에서 앞서가는 나라를 외쳤지만 현실에선 뒤쫓기는 상황이다.

존슨은 이번 선거에서 이런 심리를 활용했다. 그는 ‘영국의 잠재력을 펼치자’를 구호로 내세웠다. 제조업 쇠퇴와 금융침체가 있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맨체스터 역시 다음 단계의 준비에 호응한 것이다. 프랑스에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개혁과 씨름 중이다. 21세기 회생을 위한 노(老)대국들의 분투가 눈물겹다. 지금 한국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게 아닌지.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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