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그냥 脫원전 때문이라고 해라

입력 2020-02-05 18:38   수정 2020-02-06 00:10

차라리 그냥 탈원전 정책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좋았겠다. 불과 2개월 사이에 원전 이용률은 85%에서 70%로, 다시 60%로 낮추고, 판매단가는 ㎾h(킬로와트시)당 60.82원에서 60.76원으로, 다시 48.78~55.96원 범위로 계속 낮추면서까지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망가뜨려 폐쇄 결정을 밀어붙이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원전의 이용률이 낮아지면 생산원가가 높아지고, 판매단가가 낮아지면 판매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 경제성이 악화되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문제는 원전 이용률과 판매단가가 시장 수급에 의해 구조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정해진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용률과 판매단가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가정하지 않으면 원전의 경제성 분석은 고무줄 분석이 돼 신뢰를 잃을 위험이 높다.

월성 1호기의 이용률이 2001년부터 2015년까지 90% 안팎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0%까지 낮춰 잡은 이유는 ‘탈원전’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월성 1호기 폐쇄 근거가 된 삼덕회계법인 보고서에서도 새로운 정부에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원전 이용률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해 낮은 이용률을 가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폐쇄 결정의 논리 흐름은 ‘탈원전→이용률 하락→생산원가 상승→경제성 악화→폐쇄 결정’이다. 따라서 폐쇄 결정 이유는 경제성이 아니라 탈원전이라고 해야 한다.

원전의 판매단가는 정산조정계수라는 장치를 이용해 한국전력과 한수원의 이익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수준에서 결정된다. 다시 말해, 한전의 이익이 커지면 판매단가(한전 입장에서는 구입단가)를 높여 한전의 이익을 줄이고(한수원의 이익은 증가), 반대로 한전의 이익이 줄어들면 판매단가를 낮춰 한전의 이익을 증가시키고 한수원의 이익을 감소시키게 된다. 한전 주머니가 쪼그라들면 한수원 주머니를 털어 메워주고, 반대의 경우에는 한전 주머니를 털어 한수원 주머니를 메우는 방식이다.

월성 1호기 경제성 분석 보고서에서도 탈원전으로 원자력 발전량이 감소하게 되면 액화천연가스(LNG) 등 발전원가가 높은 에너지원의 발전량이 증가하게 돼 한전의 수익 악화가 예상된다는 논리하에 원전의 판매단가 하락 추세를 가정하고 있다. 실제로 한전 수익이 악화되면 전기가격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산조정계수를 통해 원자력 판매단가를 낮춰 이를 완화시키는 일이 반복돼 왔다. 요약하면, ‘탈원전→한전의 전력 구입단가 인상→한전 수익 악화→전기가격 인상 압력→원전 판매가격 인하→원전 경제성 악화→폐쇄 결정’과 같은 논리 흐름이다. 여기서도 폐쇄 결정의 근본 이유는 탈원전이라고 해야 한다.

어차피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경제성 때문에 추진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자꾸 경제성을 폐쇄 이유로 내세우면, 앞으로 원전 폐쇄를 결정할 때마다 이번과 같은 분석의 객관성 논란에 휩싸일 텐데 감당이 되겠는가. 결정 과정의 위법성을 놓고 용역기관이 배임혐의로 고발되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앞으로 경제성 분석에 나설 연구자를 구하기도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좀 어렵더라도 그냥 경제성과 상관없이 탈원전의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싶어 폐쇄했노라고 말하는 편이 나아 보인다.

탈원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지지자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전 계획 취소 정도로는 부족하고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원전 하나쯤은 중단시켜야 할 텐데,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단이 실패했으니 이를 만회하기 위해 월성 1호기 폐쇄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면 지나친 걸까?

대통령의 눈물까지 자아내게 했다는 영화 ‘판도라’는 과학, 경제성 따위를 따져가며 탈원전을 부추긴 영화는 애초부터 아니었다. 그냥 탈원전 때문이라고 하는 게 낫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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