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흔들리는 '하나의 유럽'

입력 2020-03-10 18:27   수정 2020-03-11 00:22

유럽을 주 전장으로 한 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참혹했다. 5500만 명의 생명이 스러졌고, 극한의 비극을 목격한 유럽인들의 상처는 누구보다 깊었다. 세 번째 전쟁을 막으려면 이웃과의 관계가 달라져야 한다는 데로 뜻이 모였다. 1946년 처칠이 스위스에서 “유럽합중국 건설을 위해 노력하자”고 역설한 배경이다.

‘하나의 유럽’ 구상은 ECSC(유럽석탄철강공동체) EEC(유럽경제공동체) EC(유럽공동체)를 거쳐 EU(유럽연합)를 탄생시켰다. 연방(유럽합중국)은 아니지만 ‘매우 긴밀한 연합’만 해도 불굴의 용기와 의지의 결과물이었다. 통합과 개방을 향한 유럽의 노력을 제러미 리프킨은 ‘유러피언 드림’으로 이름붙였다. 부의 축적과 자율성이 중심인 ‘아메리칸 드림’과 달리, 공동체 의식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방식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EU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쪽과 동남쪽으로 확장하고, 역내 정치안정을 촉진한다’는 목표를 향해 전진했다. 하지만 이상은 현실이라는 운명의 적을 만나기 마련이다. 2008년 세계경제를 휩쓴 글로벌 금융위기에 EU 회의론이 급부상했다. 통화금리정책 방향, 북유럽의 남부 유럽 지원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이 폭발했다. 일자리·무역·농업 등에 가해지는 EU 차원의 규제에 대한 불만도 치솟았다.

여기에 테러와 난민 문제가 가세하면서 관용과 연대라는 오랜 전통이 급속도로 허물어졌다. 1985년부터 국경을 없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한 ‘솅겐 조약’을 확대해왔지만 종교분쟁 성격의 테러, 통제불능의 이민자에 대한 반감은 유럽의 민족주의를 자극했다. 2016년 6월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은 이런 불만이 누적된 결과였을 뿐이다.

지친 EU 앞에 또 하나의 강력한 적이 등장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해 팬데믹(대유행)으로 치닫는 ‘코로나19’다. 이탈리아부터 덮친 코로나19가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하자 독일 프랑스 체코는 마스크 등 위생용품 수출제한령을 내렸다. 연대를 내팽개치고 각자도생을 선택한 것이다. 유로화와 함께 EU를 지탱하는 핵심축으로 평가받는 솅겐조약도 위협받는다. 이탈리아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파리를 경유해 입국하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문제’라며 국경 통제 요구가 터져나온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유럽과 세계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지 모르겠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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