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국 와서 울어버린 '피아노 검투사'

입력 2020-03-27 17:56   수정 2020-03-28 18:28

우크라이나 출신의 세계적인 여성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47)는 ‘피아노 검투사’ ‘건반 위의 마녀’로 불린다. 강력한 타건과 화려한 기술, 빠르게 몰아치는 연주 스타일 때문에 얻은 별명이다. 그런 그가 지난 주말 내한공연 무대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는 마지막 곡인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를 연주하던 중 갑자기 건반에서 손을 내리고 울음을 터트렸다. 약 3분간 퇴장했던 그는 감정을 추스른 뒤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다시 나와 앙코르 곡을 50분이나 연주했다. 공연 후 그는 “마스크 차림의 관객들을 보면서 연주에 몰입하는 중에 우크라이나에 계신 86세 어머니가 떠올랐다”면서 “감정이 복받쳐 연주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 전 인터뷰에서 “유명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된 상태에서도 바이러스와 싸우는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콘서트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코로나19로 더는 숨을 곳이 없어졌고 모두가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사람들의 작은 몸짓이 계속 이어진다면 우리는 좀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모든 이동과 관계를 마비시킨 코로나 위기, 그 공포의 굴레에서 ‘피아노 검투사’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아픔을 사랑의 힘으로 승화시키며 ‘눈물의 공감’을 이루는 과정에서 그와 관객들은 마음의 정화와 큰 위안을 얻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음악을 통한 치유의 하모니가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음악 플래시몹(집단 퍼포먼스)이 확산되고 있다. 독일의 쾰른 등에서도 일요일 오후 6시에 음악가들이 일제히 건물 창을 열고 ‘독일을 위한 음악가들’이란 협연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필하모니 단원들은 각자의 연주 파트 영상을 유튜브에 모아 ‘네덜란드인을 위한 베토벤 9번’을 연주했다.

250년 전 탄생한 베토벤이 강조한 형제애와 연대의식, 인류 이성의 믿음에 세계인들이 위로를 받고 있다. 이번 내한 공연 때문에 출국 후 격리 조치를 받고 있는 리시차도 “앙코르 연주 첫 곡으로 베토벤의 ‘월광’을 선택한 것은 달빛이 사람들을 따뜻하게 비추고 감싸주듯이 많은 이를 위로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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