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자녀가 있는 그룹의 총수가 상속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 국내 대기업이든 중견기업이든 공개적으로 약속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삼성의 큰 결단이고, 한국 기업사의 물줄기를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재계 인사는 “앞으로 오너 일가의 3~4세들이 미국처럼 경영권이 아닌 주식만 소유한 채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는 문화가 자리잡지 않겠느냐”며 “삼성이 한다고 해서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하나의 좌표가 설정된 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기업이 경영에 몰두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착잡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4대 그룹 고위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 미증유의 경영 환경 속에서 본업인 경영에 집중하지 못하고 경영 외적인 일에 발목이 잡혀 대국민 사과까지 하는 걸 보니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이 어쨌거나 사회의 흐름에 발맞춰가야 한다는 현실을 목도했다”며 “한국의 기업사에 또 다른 하나의 매듭이 지어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한 중견기업 대표는 “오늘 이 부회장의 사과 기자회견이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경영만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일자리를 만들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게 최고의 ‘애국’인데 그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사과와 선언이 다른 기업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다른 그룹 고위관계자는 “삼성이 시도하는 걸 다른 그룹들이 무턱대고 받아들일 경우 ‘소버린 사태’ ‘칼 아이칸의 KT&G 공격’ 같은 일도 벌어질 수 있다”며 “지배구조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금 삼성에 필요한 것은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실천”이라고 밝혔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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