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순의 과학의 창] 핵 공포와 친환경 원자력 발전

입력 2020-07-15 18:09   수정 2020-07-16 00:09

75년 전 오늘 ‘트리니티 테스트’란 이름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폭탄 실험이 미국 로스앨러모스에서 행해졌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을 토대로 재래식 무기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대량살상 무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핵폭탄이 실제 전쟁에서 사용된 것은 2차 세계대전 막판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것뿐임에도 공상과학물이나 첩보물에서 인류나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다 보니 그 파괴력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핵폭탄이란 동전의 반대 면에는 원자력 발전이 있다. 그 덕에 화석 연료를 태우는 재래식 발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효율적인 친환경 발전이 가능하다. 원자력 발전이 친환경적이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거다. 환경단체에서 앞장서서 탈원전을 주장하고 있는 거 아니었나? 이 양반은 물리학 교수라는 사람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나? 방금 원자력 발전이 핵폭탄과 동전의 양면이라고 한 사람과 자아분열이라도 겪고 있는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도 조금만 인내심을 발휘해 달라.

무슨 말인지 설명하기 전에 잠시 필자의 대학원 시절 이야기를 조금만 해보자. 당시에 저녁 시간만 되면 폴란드 이민자 아주머니가 실험실에 들어와서 쓰레기통을 비워주곤 했다. 실험실에는 다양한 실험 장비와 소품이 있었는데 일부는 대단히 민감한 것이어서 외부인 무단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청소하시는 분이 실험실에 사람이 있을 때 찾아오면 우리가 쓰레기통을 복도로 내줬는데, 문제는 실험실에 사람이 없으면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해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쓰레기통을 비우고 간다는 점이었다.
합리적 판단 가로막는 공포
실험실 동료들과 고민 끝에 ‘방사선 주의’ 스티커를 문에 붙여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필자의 소속 연구실에서 연구하던 여러 물질 중 하나가 우라늄이 섞여 있는 초전도체였다. 핵분열과는 전혀 관계없는 초전도 연구였기 때문에 희석 우라늄을 사용했고, 우라늄에서 나오는 방사선량은 물론 안전 기준치를 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라늄 취급과 관련한 안전 규정을 따라야 했고 관련 물품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방사선 경고 스티커였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실험실에 그냥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실험실에 사람이 있을 때도 쓰레기통을 내어 달라며 노크하는 법이 없어서 청소하시는 분이 언제 오는지 확인해 쓰레기통을 내놓는 게 우리 일이 됐다.

실험실 문에는 작은 창이 있었기 때문에 복도에서도 실험실에 사람이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단체로 자살 충동에 걸린 미친 과학자들이 아닌 이상에야 실험실 출입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을 텐데도, 방사선 경고 스티커는 그런 합리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위력이 있었다.

원자력 발전은 핵원료를 사용해 발전을 하고 나면, 치명적인 방사능 폐기물이 나온다. 이는 잘 알려진 사실이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핵폭탄의 버섯구름 이미지가 더해지면 원자력, 방사능, 핵과 같은 단어만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은 공포감이 엄습한다. 한술 더 떠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같은 키워드를 뿌려주면, 연구실에 사람이 있는 걸 보고도 들어가고 싶어지지 않는 비합리적 판단이 순식간에 우리를 지배한다.
이상을 이유로 현실 포기할 수 없어
그런데 다소 역설적이게도, 원자력 발전은 극도로 위험한 물질이 너무나 명백히 눈에 띄고, 핵원료와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다루는 방법이 대단히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친환경 발전이 가능하다. 요새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의 원인 중 화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인지,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는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걸 생각해보면 너무 깔끔하다.

물론 원자력을 안전하게 다루는 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사고가 났다. 우리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고강도 지진, 장비의 고장, 모든 걸 알고 있어도 저지르는 사람의 실수 등의 확률을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정확히 예측해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다면 애초에 ‘사고’라고 부르지 않을 테니까. 그렇지만 사고의 확률을 점점 줄여나가는 것과 사고의 피해를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이는 현재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미래의 전문가를 키워나갈 때만 가능하다.

값싸고, 친환경적이면서 대형 사고의 위험이 전혀 없는 에너지원이 있어서 탈원전을 하겠다면 누가 말리겠는가? 그런 기술이 아직 없기에 우리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좋은 선택지가 무엇인가를 골라야 한다. 우리의 원시뇌가 불러준 탈원전이라는 답을 우선 적어놓고,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현실과 이상이 경쟁하면 현실이 백전백패하겠지만, 그걸 이유로 현실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꼭 그렇게 해야겠다면, 정치권에서 먼저 대중의 요구를 정확히 헤아리되 값싼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고, 나라의 부를 키우면서도 본인의 주머니를 불리지 않는 청렴한 정치를 선보였으면 한다.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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