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얼마 오를지 모른다"는 '조삼모사 정부' [현장에서]

입력 2020-12-18 13:01   수정 2020-12-18 14:23



"이번 전기요금 개편으로 내년 전기요금이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2022년 전기요금은 예상도 안 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7일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전기요금 개편안을 도입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연료비 연동제는 분기마다 유가 등락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제도다. 직전 3개월 연료비 평균에서 지난 한 해 평균을 뺀 차액에 비례해 전기요금이 오르내린다. 그런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유가가 확 떨어졌고, 내년은 유가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으니 전기요금도 내려갈 것이라는 논리다.

그런데 내후년 전기요금 전망을 묻는 기자들의 질의에 산업부는 “예상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했다. 기관들이 내후년 유가 전망치를 발표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유가 변동에 따라 전기요금이 얼마나 변하는지 계산하는 데 필요한 여러 숫자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심지어 홈페이지에 올린 자료에는 연료비 연동제를 계산하는 기본 원리를 거꾸로 써 놨다. 산업부 자료대로 계산하면 유가가 급등할수록 전기요금이 내리고, 유가가 급락하면 전기요금이 폭증하는 황당한 결과가 나온다. 발표 당일 기자가 이를 지적했지만 자료는 다음날까지도 수정되지 않았다. 검증 없이 공식을 썼다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매체도 많았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애초에 국민들에게 정확한 계산 방법을 홍보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산업부는 18일 오후 1시 2분 한국경제신문이 본 기사를 통해 문제점을 공개 지적하자 한시간 뒤인 오후 2시 3분께 뒤늦게 보도자료를 수정 공지했다.)

전기요금은 세금과 유사한 점이 많다. 국가가 독점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대가로 지불하고, 내지 않으면 정상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 누가 얼마나 내는지 정부가 규칙을 정한다. 전기요금이 전기라는 상품의 가격인데도 여전히 '전기세'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 이유다. 만약 정부가 세금 제도를 갑자기 복잡하게 바꿔 놓고 "내년에는 세 부담이 줄겠지만 내후년부터는 모른다"고 하면 당장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국민들이 이번 '기습 개편'으로 내후년 전기요금이 어떻게 바뀌는지 궁금해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추정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문제는 심각하다. 내후년 유가는 산업부 주장대로 미지의 영역이다. 하지만 유가에 따른 여러 시나리오는 충분히 계산해 공개할 수 있다. 민간 기업은 물론 각 가계조차 수많은 가정을 적용해 내년 살림 계획을 짠다. 국민 세금을 받고 일하는 공무원들이 국민들에게 돈을 얼마나 더 걷을지도 계산해본 적이 없다면 직무유기다.

반면 계산해본 적이 있는데도 숫자를 발표하지 않았다면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감사원의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관련 감사 도중 산업부 공무원이 관련 문서 444건을 몰래 삭제하면서 이미 정부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의식해 전기요금 인상 사실을 숨긴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산업부가 조속히 전기요금 상세 계산법과 내후년 이후 전망치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이런 의혹은 갈수록 불어날 것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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