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다른 누구도 아닌 저의 잘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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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2-29 17:06   수정 2020-12-30 00:32

[이학영 칼럼] "다른 누구도 아닌 저의 잘못입니다"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후진국’ 오명(汚名)을 벗어던지는 과정이 극적이다. 코로나 공포를 한 방에 날릴 백신 개발에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이라는 이름을 붙여 뚝딱 성공시키더니, 3억3000만 미국인에게 곧바로 접종을 시작했다. 민(民)과 관(官), 군(軍)이 똘똘 뭉쳐 코로나 백신을 개발해낸 과정은 ‘세계 최강 국가’ 미국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미국이 ‘초고속 작전’을 개시한 것은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 3월이었다. 백악관은 제약회사와 군 관계자들을 소집해 긴급회의를 했다. 제약회사들이 백신 개발을 최대한 앞당기는 데 정부가 할 일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했다. 개발 과정에서의 리스크를 덜어줄 자금 지원과 빠른 사용 승인이 필요하다는 업계 건의를 전폭 수용했다. 개발에 성공하면 미국인들에게 최우선적으로 공급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제약회사 모더나에 9억5500만달러(약 1조500억원)의 백신 개발 자금을 지원하며 3억 도즈(1회분)를 ‘입도선매(立稻先賣)’한 게 단적인 예다.

생산 못지않게 중요한 게 물류다. 온도 등 외부상황에 민감한 백신을 광활한 미국 전역에 제때 손상 없이 공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난제(難題)를 군이 해결했다. 지난 14일 미국 전역 636곳에 공급하는 백신 수송이 시작된 장면을 워싱턴포스트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고 보도했지만, 실제로 군사작전이었다. ‘초고속 작전’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현역 육군대장인 구스타브 퍼나 장군이 맡은 것부터가 그렇다. 퍼나 장군은 백신 수송 첫날 “미국과 연합군이 1944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편 상륙 작전은 2차 세계대전의 중대한 전환점이 됐으며, 전쟁 종말의 시발점이었다”는 말로 수송 작전에 의미를 부여해 미국인들을 환호하게 했다.

그러나 백신 수송 및 공급 과정이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미시간 등 14개 주(州)에서 “약속했던 할당량만큼 공급받지 못했다”는 항의가 불거졌다. 주지사가 민주당 소속인 곳의 항의는 더욱 격렬했다. 이때 상황을 반전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수송 책임자인 퍼나 장군이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 전말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모든 게 내 잘못”이라며 정중하게 사과한 것이다. 드넓은 미국 땅의 50개 주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급과 수요를 맞추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해하게 된 미국인들은 책임자의 솔직한 해명과 사과에 고개를 끄덕였고, 불만이 누그러졌다.

공급 차질 상황을 비판적으로 보도했던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부의 솔직한 사과’라는 제목의 사설(24일자 톱)을 게재하며 작전 책임자의 상세한 설명과 사과를 칭찬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저의 잘못입니다(I failed, nobody else failed)”라는 퍼나 장군의 사과 발언을 전하며 “이런 말을 공직 책임자에게서 듣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며, 그를 비롯한 초고속 작전팀은 민간 기업들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잘 도왔다는 사실에 유념한다”고 했다.

코로나 재앙을 일거에 반전시키고 있는 미국 정부의 ‘초고속 작전’ 수립과 시행, 논란 해소에 이르기까지 각 과정을 국내 상황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정부는 괴질 발생 초기에 궁극의 방역무기인 백신 개발에 곧장 착수했고, ‘세금 남용’ 논란을 무릅쓰고 제약회사의 초기 개발에 돈을 대며 물량 선(先)확보에 나섰다. 이런 조치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직시한 국정 최고책임자의 상황 판단과 결단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백신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논란에 대해서는 지체 없는 책임자 사과를 통해 국민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느 것 하나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코로나 방역 문제만이 아니다. 백신 확보는 물론 부동산 일자리 등 논란이 뜨거운 현안마다 대통령부터 각 분야 책임자에 이르기까지 ‘무오류 강박증’에 빠져 책임 회피와 남 탓에 급급해 있다. ‘90’을 잘했더라도 미흡한 ‘10’을 반성하고 개선 방향을 찾는 게 발전하는 사회와 조직의 모습이다. 조그마한 지적에도 발끈하고 수용을 거부하는 건 스스로에게 자신 없는 못난이의 행태일 뿐이다. “우리는 실수했지만, 그것을 반성하고 배움으로써 더 완전해지고 있다.” 퍼나 장군이 사과 브리핑에서 한 얘기다.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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