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3.8㎝ 눈에 마비된 1000만 도시

입력 2021-01-07 17:21   수정 2021-01-08 00:14

비탈길에서 오도가도 못 하는 버스를 시민들이 내려서 밀고, 미끄러진 차량들은 속절없이 연쇄 추돌한다. 제설이 안 돼 주차장이 돼버린 퇴근길에 집까지 4~5시간 걸렸다는 하소연도 이어진다. 지상구간 고장으로 전철이 멈춰 서면서 출근길에 더 비상이 걸린다. 30~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폭설에 ‘그대로 멈춤’한 서울의 모습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역별로 10㎝ 넘게 온 곳도 있지만 종로관측소 기준 3.8㎝의 강설량에 서울 도심이 재난현장으로 변했다.

그제 저녁 6시께부터 내린 눈은 한 시간 만에 1.9㎝가 쌓일 정도로 대처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예보가 있었음에도 서울시가 늑장 대응했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대설주의보 발령 불과 30분 전(오후 6시30분)에야 시내 도로에 제설제를 뿌렸고, 7시20분에 2단계 제설대책(눈 밀어내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퇴근시간에 올겨울 최강 한파까지 겹쳤지만, 제설작업을 맡는 안전총괄관(3급) 등의 인사 발령이 행정공백을 키웠다는 비판도 나온다. ‘무방비로 당했다’는 데 시민들은 더욱 뿔이 났다.

기후변화시대를 맞아 폭설, 물난리 같은 자연재해는 빈발하게 마련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과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예기치 못한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마 태풍으로 태양광 발전량이 급감하거나, 반대로 풍력에너지 과다 생산이 전기 주파수를 급변동시켜 발전소 고장으로 이어지면 블랙아웃은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무정전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병원에서 중환자들이 생명을 위협받고 금융거래와 기업활동, 개인 삶까지 뿌리째 흔들리는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현대 거대도시는 태생적으로 이런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렇기에 재난대비 행정인프라와 시스템을 완비해야 하는 과제도 분명하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도시의 교통·환경·에너지·재해 등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스마트시티’ 조성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우리나라도 서울을 비롯한 지자체 33곳이 스마트시티를 추진 중이다. 국내 스마트시티 정책은 이미 2016년에 3단계 ‘본격 추진’에 접어들었고, 2017년엔 ‘스마트시티조성법’까지 완비했다.

그런데 새해 벽두 서울의 폭설 현장은 스마트시티 얘기를 꺼내기 부끄러울 정도로 민낯을 드러냈다. 초(超)국제도시는 편리한 생활 못지않게 ‘방재와 안전’에 더욱 초점을 맞춘 ‘똑똑한 도시’여야만 경쟁력을 갖는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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