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논란 부른 금감원의 '기관 압박'

입력 2021-02-21 17:06   수정 2021-02-22 00:12

“1990년대 후반 하락장이 펼쳐질 때마다 ‘기관투자가 순매수 유지’ 지침이 내려와 매일 주식 순매수액을 플러스(+)로 맞춰 정부에 보고했던 때가 떠오르네요.”

한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는 금융당국이 연기금 위탁운용 자금 거래내역 파악에 나선 것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연기금이 맡긴 자금으로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운용사에 주식 순매수·순매도 현황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금감원이 운용사들에 연기금 주식 거래자료 제출을 요구한 건 이례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연기금의 국내 주식 순매도가 이어지고 있어 시장 모니터링 차원에서 제출을 요구했다”고 해명했다.

운용업계는 술렁였다. 일부 운용사는 “고객인 연기금의 동의 없이 정보를 넘겨줄 수 없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금감원의 속내는 모니터링이 아니라 ‘무언의 압박’에 있는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연기금은 작년 12월 24일부터 지난 19일까지 12조원 이상을 팔아치웠다. 개인투자자들과 일부 정치인은 “연기금이 모처럼 불붙은 투자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금감원이 수탁운용사들을 지렛대로 ‘군기 잡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얘기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연기금의 국내 주식 순매도 행태에 대해 보다 세련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국민연금 등 주요 연기금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임기는 보통 2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10~20년을 내다본 장기적 운용보다는 단기 수익률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거스른 CIO는 화를 면치 못했다. 1999년부터 국민연금 초대 기금운용본부장을 맡은 김선영 씨가 대표적이다. 김씨는 임기 만료 3개월을 앞둔 2002년 8월 갑작스레 물러났다. 보유 주식 주가가 20% 이상 떨어지면 무조건 팔게 돼 있는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감사원으로부터 해임 권고가 나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장기적으로 자산을 굴리는 연기금이 왜 손절매를 해야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연기금이 미리 정해놓은 자산별 투자 비중에 따라 경직적으로 운용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는 지난해 5월 20일 내년 말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16.8%로 책정했다. 그런데 작년 11월 국내 주식 비중은 주가 상승으로 19.6%에 달했다. 목표 비중을 연말까지 맞추려면 국내 주식을 내다 팔아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기금위는 정부 측 인사 6명과 근로자·농어업인 대표 등 위촉위원 14명을 포함해 모두 20명으로 구성된다. 업계에서는 “운용 전문인력들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국내 주식 비중을 높이고 싶어도 바로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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