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앞당겨 계약합시다"…집주인들 다급해진 이유

입력 2021-06-08 09:57   수정 2021-06-08 13:48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에 오는 9월 이사를 앞두고 있는 유모 씨(32)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예정된 이사 날짜보다 앞당겨 계약하자는 요청을 들었다. 임대 보증금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되는 8월18일보다 앞서 잔금 일정을 정하자는 요구였다. 보증보험 가입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 집의 주인은 매매 가격과 전세금의 격차가 적은 다세대주택을 다량 매수해 임대 사업을 하고 있다. 전세 보증보험 가입이 필수로 이뤄져야하는 주택이지만 보증료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집주인이 보험 가입을 피하기 위한 꼼수를 강구한 것이다. 유 씨는 “시장에 전세 매물이 워낙 없어 이 집도 어렵게 구했다”며 “불안해도 집주인의 요구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임대주택 사업자들의 임대 보증금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되는 8월18일을 앞두고 이를 피하려는 집주인들이 계약 날짜를 앞당기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보증보험 비용을 감안해 전세계약을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하면서 그나마 있던 전세도 줄고 있다. 보증보험 가입의무를 위반하면 최고 2000만 원의 벌금 또는 최장 2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정도로 처벌 수위가 높다.
"7월까지 임대차 계약 마무리" 제안 속속
8일 강서구의 다세대주택 임대차 계약을 주로 주선하는 Y중개업소 대표에 따르면 “임대차 만료를 앞둔 많은 집주인들이 7월에 새 계약을 마무리 지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임대보증보험은 집주인이 세입자의 전·월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보험사가 대신 돌려주는 상품이다. 지난해 8월 시행된 ‘민간임대주택특별법’에 따라 지난해 8월18일 이후 신규 등록한 임대사업자는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마다 이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올해 8월18일부터는 기존 임대사업자도 모두 가입해야 한다. 위반하면 최고 2000만 원의 벌금 또는 최장 2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보증료 부담이 있는데다가 가입 절차가 복잡해 아예 계약을 서두르자는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단독·다중·다가구주택의 보증료율(0.146%)을 기준으로 보증금 금액별 보증료를 추산한 결과 보증금 3억원 임차주택의 연 보증료는 43만8000원으로 집주인은 월 2만7375원, 세입자는 월 9125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금 2억원 임차주택의 연 보증료는 29만2000원으로 집주인의 월 부담액은 1만8250원, 세입자의 월 부담액은 6083원이다.

보험료를 집주인과 세입자가 3대1로 나눠서 부담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임대보증금 보증보험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서울보증보험(SGI)을 통해 가입할 수 있는데, 보험료는 HUG의 아파트 보증금 보험 기준으로 '전·월세 보증금의 0.099~0.438%'로 책정됐다. 계약 기간이 길어지면 보험료도 더 내야 한다. 임대사업자 신용 등급이 낮을수록, 임대주택 부채(담보대출 등) 비율이 높을수록 보험료가 올라간다. 단독주택 보험료는 아파트의 1.3배다.


가입 절차를 위해 준비해야하는 것도 많다. 필수 제출 서류만해도 ‘공시가격 출력물’, ‘보증채무약정서’, ‘양도각서’ 등 최소 10가지다. 많게는 20종이 넘는 경우도 있다. 이마저도 누가, 언제, 어디에서 신청하느냐에 따라 요구 서류가 다르다. 가입 완료까지도 2개월 이상이 소요돼 임대차계약 신고를 못하다 과태료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서울 길동의 다가구주택 밀집지역에 위치한 T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임대보증보험에 가입한 임대사업자들을 보면 가입 절차가 워낙 길고 까다로워 나이가 많은 집주인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며 “보증금이나 월세 규모가 크지 않은 주택들의 경우 보증료 부담 비중이 커진다는 점도 보험 가입을 꺼리게 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전세의 월세화' 부추겨
집주인은 물론 세입자의 불만도 크다. 이미 시장에서는 보증보험 가입 부담을 세입자에게 월세로 전가하려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어서다. 보증료를 월세에 포함하는 등의 방식이다.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 대신 월세로 바꾸면 보험료 부담이 확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전세 5억원인 아파트를 보증금 1억원 월세로 돌릴 경우 집주인이 내야 할 최대 보증보험료는 328만5000원에서 65만7000원으로 감소한다.

심지어 임대 보증금 보증보험을 취급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도 보험 가입을 위해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하라”는 식의 조언을 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HUG에서는 대출금과 임대 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주택 가격을 넘으면 보증보험 가입을 거절한다. 문제는 최근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값이 폭등하면서 대출금과 임대 보증금을 합한 금액이 주택 가격을 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임대주택의 특성상 다세대·연립·오피스텔이 많은데 주택 가격 대비 전세 가격이 높게 형성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보증보험 가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천에서 빌라 여러 채를 전세 주고 있는 임대 사업자 박모 씨(48)는 “대략 빌라의 보증금 1억5000만원에 전·월세 주고 있는데 민특법상 주택 가격은 1억원(공시가 130%)이 안돼 전세 보증금에 훨씬 못 미쳐 보증보험 가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지난해 HUG에 문의하자 월세로 전환해 보증금 규모를 낮추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이곳 빌라에 사는 세입자들은 사정이 어려워 월세를 한푼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무리 보험 가입 해준다고 해도 월세 비중이 늘어나는데 좋아할 세입자가 어딨겠느냐”고 덧붙였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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