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칼럼] 경제팀에 거는 마지막 기대

입력 2021-06-14 17:20   수정 2021-06-15 07:22

통화와 재정당국의 엇박자는 늘 있는 일이지만 요즘처럼 극명하게 대비된 적도 없다.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며 금리인상 깜빡이를 부지런히 켜고 있는데, 정부는 ‘무슨 인플레 같은 소리냐’며 재정을 더 퍼부을 태세다. 이 정부 들어서만 벌써 아홉 번째 추경을 준비 중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이 정도로 추경을 남발하진 않았다.

경제팀이 그동안 한 일도 솔직히 돈풀기 외에는 없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가계소득을 채워줘야 한다며 한껏 재정을 늘리더니, 코로나 국면에서는 곳간이 비어가는데도 대놓고 빚(국채발행)을 늘려 무차별적으로 돈을 나눠줬다. 작년에만 다섯 차례에 걸쳐 86조3000억원을 풀었고, 이번에 준비 중인 추경까지 더하면 100조원을 훌쩍 넘어간다. 오죽하면 ‘기재부는 정권의 ATM’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경제가 정상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경제팀의 ‘찐’ 실력을 증명할 때가 드디어 왔다. 지금의 경제 정상화는 과거 경기 사이클상 회복과는 엄연히 다르다. 정상적인 회복 과정에서는 적당한 인플레가 동반되고, 적당한 인플레는 경기회복을 더 빠르게 하는 선순환 기능을 한다.

하지만 지금의 경기회복은 코로나19라는 비상국면에서 커질 대로 커진 양극화 속에 맞는 회복이다. 이른바 K자형 회복이다. 대기업과 코로나 수혜를 입은 테크기업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구가 중이지만, 코로나 타격이 집중된 중소제조업 자영업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게다가 역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재정을 풀어놓은 상태에서 코로나 백신으로 억눌린 소비가 폭발하면서 적정 수준을 넘어선 인플레를 유발할 우려도 크다. K자형 회복 과정에서 인플레는 경제적 약자에게 선택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다. 물가상승은 그 자체로 서민에겐 고통이다. 이미 심상치 않다. 지난 5월에도 생활물가지수는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두 배 웃돌았다. 장바구니 물가는 1년 전보다 12%나 상승했다. 그만큼 서민들의 체감물가가 껑충 뛴 것이다. 인플레는 화폐 상대가치를 떨어뜨려 가계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이중고를 낳는다.

인플레발 금리인상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연간 가계 이자부담은 13조원 가까이 불어난다. 금리인상 여파로 주식 부동산 암호화폐 등 자산가격이 급락하기라도 하면 빚내서 투자한 서민과 젊은 층의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들도 비상이다. 원자재값 상승에 이어 임금인상을 동반한 인플레 요인까지 맞물릴 경우 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한 기업들부터 나자빠질 것이다. 그동안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부실기업을 한꺼번에 드러내 경제 충격파가 더 커질 수도 있다. 한은에 따르면 한 해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 비율은 지난해 34.5%로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다. 무차별적인 코로나 지원금이 되레 ‘좀비기업’을 늘린 탓이다.

인플레가 오면 좋은 건 부채를 양껏 쌓아놓은 정부뿐이다. 부채의 실질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플레는 일시적이라고 치부하는 게 설마 이것 때문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경제팀은 인플레와 금리상승 충격파가 본격화하기 전에 선제적이고 정밀한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금융지원을 무한정 연장해 가계와 기업의 재정 의존도를 키우기보다는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자산 정리를 서둘러야 경제가 건강한 회복 과정을 찾아갈 수 있다.

물론 대선 국면에서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여야 가리지 않고 온갖 포퓰리즘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팀에 많은 기대를 걸지 않겠다. 퍼주기만이라도 제대로 제어해주면, 그걸로 제 역할을 했다고 박수를 보내겠다. 하지만 홍남기 부총리조차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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