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으로 밥값 내세요"…100년 전으로 돌아간 베네수엘라

입력 2021-10-21 10:42   수정 2021-10-21 12:31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남동쪽에 있는 투메레모 마을. 조르지 페나 씨(20)는 주머니에 금을 넣어 다닌다. 금반지도 금팔찌도 아니다. 금을 잘게 쪼갠 금조각들이다. 바로 이 지역에서 화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법정 화폐인 볼리바르는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휴지조각이 돼 어느 곳에서도 받지 않는 탓이다.
여기선 금, 저기선 헤알화...지역마다 통용 화폐 달라
페나 씨는 "이 곳에선 금으로 모든 거래를 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호텔에서 1박을 하면 금 0.5g을 내야 하고 중식당에서 두 명이 식사를 하면 0.25g의 금을 지불하면 된다. 이발 요금은 금 0.125g이다.

금으로 거래할 때마다 매번 무게를 잴 필요도 없다. 이 곳 사람들은 익숙해 대충 눈 짐작으로 알 수 있다. 페나 씨는 "3개의 작은 조각이 있으면 0.125g 정도 되고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5달러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0일(현지시간) '밥값과 이발비를 내기 위해 금 조각을 떼어내는 베네수엘라 국민들'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같은 실상을 소개했다. 전 세계가 100년 전 금에서 화폐로 이미 전환했지만 베네수엘라에선 법정화폐인 볼리바르의 신뢰가 떨어져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당 지역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것을 화폐 대용 수단으로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투메로모 마을처럼 베네수엘라 남동부에선 금이 교환 매개체로 통용되지만 더 남쪽으로 가면 브라질 헤알화가 지배적 통화 기능을 한다. 브라질과 국경이 맞닿아 있어서다.

콜롬비아 접경지대인 서쪽에선 콜롬비아의 페소가 화폐 역할을 담당한다. 콜롬비아 리서치 회사인 에코아날리티카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서쪽에서 가장 큰 도시인 산 크리스토발에선 전체 거래의 90% 이상이 페소로 거래된다. 이에 비해 카라카스 같은 대도시에선 미국 달러가 주요 통화 위상을 가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유로화와 암호화폐도 일부 지역에서 틈새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커피값 1737% 급등...살인적 인플레 탓
동서남북 지역에 따라 지배적 통화가 다른 것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우고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정권이 20년 넘게 이어진 영향이다. 특히 중앙집중적 계획경제와 복지 포퓰리즘의 폐해가 컸다.

이로 인해 원유 매장량 기준 세계 1위였던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IMF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 제시된 베네수엘라의 2019년 경제성장률은 -35%, 물가상승률은 1만9906%였다. 2018년에는 물가상승률이 1000만%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결과는 6만5374%였다.

중남미에서 비교적 구하기 쉬운 커피값도 1년 간 1737% 올랐다. 이런 숫자를 인정하기 힘들어 베네수엘라는 수년 전부터 공식적인 물가상승률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계속되자 베네수엘라는 화폐개혁을 추진했다. 지난 1일 3년 만에 또다시 ‘100만 대 1’의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을 실시했다. 볼리바르 화폐가치가 100만분의 1로 급감한다는 얘기다. 2008년 ‘1000대 1’, 2018년 ‘10만 대 1’의 화폐개혁에 이어 세번째다.

그래도 볼리바르의 위상은 여전히 추락하고 있다. 루이스 빈센트 레온 다타날리시스연구소의 경제학자는 "볼리바르가 부의 저장이나 교환 수단으로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볼리바르 외에 다른 통화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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