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몸의 사계절

핀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링크 복사 링크 복사

입력 2021-11-28 17:15   수정 2021-11-29 06:02

올겨울 몸과 정신이 전반적으로 무너졌다. 서로 신호를 주고받듯이 이쪽에서 터지고 잠잠해지면 저쪽에서 터지는 식이었다. 혈압과 고지혈로 약을 먹은 게 몇 년 되는데 오히려 몸은 더 불어났다. 약을 더욱 강도 높게 처방했다. 대장 내시경을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용종이 많았다. 안 좋은 식습관과 오랜 음주 탓이리라. 대장의 면역력이 떨어지자 몸속 염증이 커지기 시작했다. 전립선비대증이 왔고 염증을 동반했다. 그 와중에 허리 디스크가 터져버렸다. 며칠 자리보전하고 누웠다가 일어난 이후엔 좌골신경통으로 인해 다리가 당겨서 오래 걷기가 힘들어졌다. 엉덩이 몇 곳에 염증이 생기더니 아파서 앉기가 불편했다.

그 와중에 장염에 걸려 기어이 먹은 것을 토해냈다. 새벽에 자다가 깨어 토악질을 하면서 더럭 겁이 났다. 뭔가 큰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그날 밤 잠을 설쳤다. 다음 날이 되자 강박증이 생겼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잠을 설쳤다. 그러자 몇 년간 나타나지 않았던 내 오랜 친구 공황증이 댐을 허물기 시작했다. 비교적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자라나는 불안을 향해 친구야 하며 토닥여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무너지는 몸 앞에서 소용없었다. 결국 재앙적 사고의 연쇄에 빠지기 시작했고, 새벽녘 비참한 기분으로 몇 년 전 먹다 비상시에 쓰려고 남겨둔 안정제를 다시 꼴깍 삼켰다.

내 나이 마흔아홉. 아홉수를 낮은 포복으로 건너고 있다. 마음이 한없이 낮아지고 여려져 그저 이 불안증만 가라앉았으면 하고 빌었다. 며칠이 지나자 약이 몸에 길을 냈고 불안을 밀어냈다. 보름 정도 입맛이 없어 제대로 못 먹었더니 살도 좀 빠졌다. 몸이 가뿐해졌고, 자세를 바르게 한 덕분에 허리 통증도 거의 사그라들었다. 소변보기도 편해졌고 눈과 머리도 맑아졌다. 이제 저물어가는구나 했던 내 몸이 다시 쌩쌩한 기운을 되찾았다. 의사의 처방과 각종 약으로 증상을 잠재우고, 증상을 유발했던 큰 원인인 술을 끊고 식습관을 바로잡고 체중을 좀 뺐을 뿐인데 말이다. 다시 봄이 오는 것 같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엔 사계절이 있고 사람은 그런 것 없이 점차 약해지다 죽는 것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람도 내부에선 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는 것 같다. 우리 몸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결국 겨울이 온다. 건강한 사람은 컨디션이 좋고 나쁜 것이 그것이고, 아픈 사람은 발병하고 치유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 편하다.

어른들은 계절에 맞게 몸을 보살펴야 한다고 늘 말했다. 겨울에 앞서 몸을 보해주고 삐걱대는 부분을 다독여줬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기에 맨살이 드러나 서리가 앉은 것이다. 몸은 양약으로 고쳤지만, 자연과 함께 호흡해온 전통의 지혜를 한번 곱씹어보게 되는 나날이다.


    핀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링크 복사 링크 복사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