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16일 16:2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이 미국과 유럽 과세당국에 납부한 세금 중 약 1000억원을 돌려받는다. 미국에서는 면세 혜택을 받는 해외적격연기금(QFPF)으로 인정받았고, 유럽에선 ‘최혜국대우’를 주장해 받아들여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실무자들이 해외에서 내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수년에 걸쳐 관련 세제를 면밀히 연구한 결과다. 연금 안팎에선 "기금운용본부 담당자들의 적극적인 행정으로 혈세를 아낄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최근 미국 국세청(IRS)으로부터 미국 내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면서 냈던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 중 비과세부분에 해당하는 300억원을 환급받게 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국회 예산심사위원회 최종 승인이 나는 데로 해당 대금이 국민연금으로 납입될 예정이다.
이번 세금 환급은 2017년 미국 연방세법 조항(897조(L))의 개정으로 QFPF에 대한 비과세 규정이 신설되면서 이뤄졌다. 해당 규정엔 미국 외 국가의 연기금·공제회들이 일정 조건을 충족해 QFPF으로 인정받으면 미국에서 부동산 자산의 거래로 얻은 양도차익에 비과세혜택를 주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민연금은 이미 미국 세법상 국부펀드로 분류돼 주식·법인에 대한 양도세는 면제되거나 한·미조세조약에 따라 일부만 납부해왔다. 부동산 거래에서도 법인 형태의 거래에선 면세가 됐지만, 자산이 오가는 거래는 이에 해당하지 않아 양도차익의 21%를 현지에서 세금으로 납부해야 했다. 기존 국부펀드 면세 규정에 더해 부동산 자산까지 면세해주는 QFPF까지 더해지면서 국민연금의 혜택 폭은 더욱 커졌다.
미국에서 QFPF로 인정받기 위해선 연방세법이 규정한 여러 요건을 충족해야 했기 때문에 세법 전문가들도 국내 연기금이 이에 해당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져왔다. 그동안 캐나다연금(CPP) 등 소수의 국부펀드만 QFPF로 인정받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지원실 소속 담당 직원들은 국내 기관 중 처음으로 지난해 외부 자문사와 함께 관련 규정을 검토해 QFPF로 미국 과세 당국에서 인정받았고 곧바로 경정청구를 진행해 세금을 환급받았다.
한 해외과세분야 전문가는 "미국 입장에선 세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혜택을 주는 조항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경정청구를 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라며 "조기에 규정을 면밀히 검토해 절세 효과를 누리게 됐다"고 평가했다.
국민연금이 이번 결정을 얻어내면서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 연기금은 물론 교직원공제회 등 주요 공제회들도 일부 세금을 환급받거나 앞으로 해외 투자 수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교직원공제회도 지난 6월 미국에서 QFPF에 해당된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두 기관을 제외한 주요 기관들은 국민연금 등의 동향을 보고받고 최근들어서야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부터 미국 뿐 아니라 스페인과 덴마크 등 EU 국가에서도 세금 환급을 신청해 막바지 절차를 밟고 있다. 각 국가별 환급 금액도 200억~300억원 수준으로 전해진다. 국민연금은 각 국이 자국의 연기금에 주는 비과세혜택을 해외 연기금에도 제공해야한다는 '최혜국대우'를 주장했고 이 주장이 현지 과세당국에서 받아들여진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연기금 관계자는 "갈수록 투자를 둘러싼 환경이 불투명해지면서 주요 연기금들도 수익률 악화에 직면했는 데, 국익 차원에서도 고무적인 결정을 국민연금이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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