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0.25%에서 연 0.5%로 인상했다. 금리 인상은 지난해 7월 이후 6개월 만이다. 지난해 3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한 이후 세 번째다. 올해 일본 기업들이 임금을 대폭 올릴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시장 동요가 크지 않아 예상대로 금리를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은 금리 인상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저금리로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 청산 우려가 제기됐지만 별다른 충격이 없었다.

24일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기준금리인 단기 정책금리를 연 0.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금리가 연 0.5%로 오른 것은 2007년 2월~2008년 10월 이후 17년 만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국제 금융자본시장이 전체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금리 인상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경제와 물가가 전망한 대로 움직이면 계속 금리를 올리고 금융 완화 정도를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일본이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을 통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탈출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보타 마사유키 라쿠텐증권 수석전략가는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임금 인상→물가 상승→금리 인상이 적당한 밸런스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올해는 플러스 실질임금이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기준금리 인상 판단 때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을 중시해왔다. 올해 춘계노사교섭(춘투) 결과는 3월에 나올 예정이지만 ‘제대로 된 임금 인상이 될 것’이라는 게 일본은행 내부 관측이다. 앞서 일본 재계 대표 단체인 게이단렌은 올해 춘투에서 5% 이상 임금 인상을 요구한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에 대해 “게이단렌 방향성과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물가는 이미 일본은행 목표대로 가고 있다. 이날 총무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소비자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는 전년 대비 2.5% 올랐다. 2023년 기록한 3.1%보다는 낮지만 3년 연속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0% 뛰었다. 월간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를 기록한 것은 1년4개월 만이다. 발목을 잡던 근로자 실질임금도 4개월 만에 오름세로 전환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11월 근로자 실질임금이 전년 동월 대비 0.5% 올랐다는 수정치를 이날 발표했다. 지난 9일 공개된 속보치는 0.5% 감소를 기록했으나 수정치는 이례적으로 0.8%포인트나 올랐다.
이번엔 지난해 같은 급격한 청산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일본은행이 이달 들어 잇달아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치며 시장에 신호를 줬기 때문이다. 금융정책결정회의 열흘 전인 14일 히미노 료조 부총재가 “(1월 회의에서) 인상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말했고 15일엔 우에다 총재가 같은 발언을 했다.
작년과 달리 미·일 금리 차가 급격히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많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7월 금리 인상 결정이 시장 예상을 빗나간 서프라이즈로 받아들여져 엔화 가치가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한 데 대한 반성이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날 도쿄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5엔대에서 움직이며 1엔 이상 하락(엔화 가치 상승)했다. 지난해 7월 금리 인상 직전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55엔 선에서 145엔 안팎까지 급락한 것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닛케이지수는 0.07% 하락 마감했다. 일각에선 설 연휴에 미국 중앙은행(Fed)과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결정, 미국 물가지표 발표 등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변수는 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이다. 우에다 총재는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떻게 될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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