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808.53
(131.28
2.31%)
코스닥
1,154.00
(6.71
0.58%)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김나영의 교실 그리고 경제학] 배웠지만 해보지 못하는 아이들

입력 2026-02-20 16:54   수정 2026-02-21 00:10

언젠가 아이가 들뜬 얼굴로 학교에서 돌아온 적이 있다. 국어 시간에 ‘문학의 재구성’이란 글이 나왔단다. 그 글을 읽고, 자신은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를 현대적 관점으로 재해석해 시나리오를 썼다며 보여주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를 기회주의적으로 살아남은 이인국 박사를 현대 사회 속 인물로 불러낸 아이의 상상력은 기발했다. 아이는 내심 기대했던 모양이다. 친구들과 각자 재구성한 문학작품을 나누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교실을 말이다.

며칠 뒤 돌아온 아이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교과서에 실린 ‘문학의 재구성’이란 글은 문제의 지문으로 사용될 뿐이었으니까. 문학의 재구성을 배우고, 문학의 재구성을 해보지 못하는 교실. 나는 아이의 답답함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교사로서 서글픈 기분에 휩싸였다. 문학이 ‘느끼는’ 대상이 아닌 ‘맞혀야 하는’ 문제가 되어버린 현실. 이는 우리가 ‘공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정형화된 시험 시스템의 결과 아닐까?
핵심역량 키울 기회 놓쳐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객관식 시험은 일종의 성역이다. 점수가 소수점 단위로 명확히 갈려야만 공정하다는 믿음이 강하다. 하지만 미래 세대에게 진정 필요한 역량은 단시간 내 정답을 잘 고르는 기술이 아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창의성이다. 우리는 지금 소비기한이 지난 인적 자원 투자 방식에 온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헤크먼은 지난달 미국경제학회에서 ‘Hakwon(학원)’을 정확히 발음하며 과열된 우리 입시 교육을 지적했다. 그는 교육의 투자 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영유아기에 길러야 할 핵심 역량은 ‘비인지 기능’이라고 강조한다. 정서적 안정, 자기 조절 능력, 사회성, 호기심, 끈기 같은 비인지 기능이 미래 소득과 행복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라는 것. 너무 이른 시기부터 문제 풀이 경쟁에 노출된 아이들은 정작 중요한 비인지 기능을 키울 기회를 박탈당한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뇌 발달을 저해해 인지 기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유롭게 재구성하는 힘 필요
부모는 내 아이가 뒤처질까 불안하기에 서두르게 되고, 경쟁의 시기는 점점 당겨진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게 되고, 급기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라는 사회적 성적표로 돌아왔다. 나 역시 아이를 갖는 게 두려웠다. 교실의 숨 막히는 풍경 속으로 내 아이를 밀어 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시 경쟁의 파고 속에서 정서적 안정과 비인지 기능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엄마가 되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길인지 알기에 망설여졌다. 용기를 가지고 불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게 돕고, 본인이 원하는 걸 찾고 탐구할 시간을 주며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

우리 사회 성공의 잣대로 빠른 성취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재구성할 줄 아는 힘, 그것이야말로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인적 자본이 아닐까. “우리 아이가 몇 점을 받았는가”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세상의 틀을 얼마나 자유롭게 재구성하고 있는가”를 묻는 사회로 나아가길 바란다. 학교가 점수 말고 아이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공간이 될 때 비로소 우리 교육도 희망의 숫자를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김나영 서울 양정중 교사·작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