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온천 대국이다. 전국 3000여 개 온천지와 2만7000개 이상의 원천지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활화산의 약 7%가 집중된 화산대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지하로 스며든 물이 마그마 열로 데워져 솟아오른다. 눈 내리는 겨울 풍경 속 노천탕은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장면이 된 지 오래다.
자연이 만든 치유 인프라는 약 1300년 전 기록에도 등장한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정 기간 머무는 ‘유지(湯治)’ 문화는 황족과 승려를 거쳐 전국으로 확산했고, 에도 시대에는 사교와 교류 공간으로 기능했다. 온천이 공동체적 회복의 장이었다는 얘기다.
오랜 전통의 틀을 벗고 요즘 일본 목욕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교외 대형 온천 리조트와 도심 센토에서 보다 개인화된 핀란드식 사우나 공간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일본 MZ세대는 ‘사우나 팬덤’까지 형성하며 입욕과 사우나를 ‘트렌디한 취미’로 한 차원 끌어올리고 있다.
2010년대 후반부터 확산한 ‘도토노우(ととのう)’ 문화는 더 큰 전환점이 됐다. 사전적으로는 ‘흐트러짐 없이 정돈된 상태’를 뜻하지만 사우나→냉수욕→휴식 루틴을 반복하며 최적의 심신 상태에 도달하는 경험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사우나는 단순한 땀을 내는 게 아니라 자율신경을 조율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고온 환경은 교감신경을 활성화하고 냉수욕은 혈관을 급격히 수축시킨다. 이후 휴식 단계에서 부교감신경이 작동하며 깊은 이완이 찾아온다. 이 교차 자극은 혈류를 개선하고 정신적 선명도를 높이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다수 나왔다. 사우나는 그런 면에서 ‘열의 스포츠’가 아니라 ‘신경계 리셋’에 가깝다.

일본은 핀란드식 사우나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체화했다. 80~100도의 고온·저습 환경에서 하는 전통 일본식 사우나는 짧고 강렬한 열기 체험에 가깝다. 반면 핀란드식 사우나는 60~80도의 저온·다습 환경이 특징이다. 흥미로운 점은 문화적 맥락 차이다. 핀란드에서 사우나는 가족과 친구가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기능하지만 일본은 이를 보다 개인적인 명상 장소로 재해석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퍼진 ‘묵욕’(默浴·조용히 씻는 행위) 문화는 사우나를 더 고요한 취미로 승화시켰다.

2018년 출범한 ‘사우나슐랭’은 11월 11일을 ‘도토노에(ととのえ·도토노우의 명사형)의 날’로 지정하고 매년 ‘지금 가야 할 사우나’를 미쉐린가이드처럼 선정해 발표한다. 사우나 자체가 평가·기록되고 순위가 매겨지는 라이프스타일 산업이 된 셈이다.
개인 성향에 따라 프라이빗형, 커뮤니티형을 골라 가는 재미도 있다. 솔로사우나 튠은 지금까지 4만6000명 이상이 다녀간 대표적 인기 프라이빗 사우나다. 블루톤 인테리어와 차분한 조명 아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성우 호소야 요시마사가 참여한 음성 가이드를 들으며 사우나를 즐길 수 있다는 점도 흥미를 끈다.
반면 커뮤니티형은 일종의 ‘소셜 클럽’에 가깝다. 도쿄 시부야에 있는 사우나스(SAUNAS)는 9개 사우나를 비롯해 워킹 스페이스, 회의실까지 완비했다. 미쉐린 셰프가 참여한 음식을 맛볼 수 있고 독일식 사우나 퍼포먼스인 아우프구스(Aufguss) 이벤트를 연다. 아우프구스는 뢰일리로 발생한 증기를 타월로 부채질하는 예술 퍼포먼스로, 열을 고르게 분산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또 다른 인기 장소 ‘몬스터워크&사우나’는 100여 명이 함께할 수 있는 대형 사우나에 공유오피스 공간까지 갖췄다. 사우나에서 업무와 네트워킹, 힐링을 동시에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지난달 서울 신사동에 문을 연 핀란드식 프라이빗 사우나 시수하우스는 개점 후 두 달 치 예약이 곧바로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90분간 온수욕과 사우나, 콜드샤워를 홀로 즐길 수 있게 설계한 공간으로, 예약자 대부분이 MZ세대다. 이용자끼리 마주치지 않도록 동선을 구분하고, 자신만의 사우나 루틴을 적을 수 있는 종이를 주는 등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띈다. 국내 최초 프라이빗 핀란드식 사우나를 표방한 솔로사우나 레포도 인기에 힘입어 최근 2호점을 냈다. 전용 사우나 시설을 룸 내에 갖춘 숙소도 속속 문을 여는 추세다.
더 이상 사우나는 단순히 ‘씻는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는 사람에게서 얻은 스트레스를 홀로 조용히 내려놓는 곳이다. 디지털 세상 속 피로감을 씻어내고, 그 대신 정직한 에너지를 채워 넣는 경험은 한국과 일본 젊은이를 오늘도 뜨겁게 끌어당기고 있다.
김현주 에디터/정소람 기자 hyunjoorik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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