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 5월 4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5.09%를 확보하며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조정했다.
2012년 자금 부족으로 대한항공과 HD현대중공업의 KAI 인수 경쟁을 지켜만 봤던 한화가 14년 만에 다시 링에 올랐다. 연말까지 5000억원을 추가 투입해 지분율 8%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로드맵은 재무적 투자가 아닌 경영권 인수 의지의 공식 선언이다.
현재 KAI 최대주주는 한국수출입은행(26.41%)이고 피델리티(9.38%), 국민연금공단(8.56%)이 뒤를 잇는다. 한화가 지분 8%를 확보하면 민간 1위 주주이자 압도적 2대 주주 지위를 굳히게 된다.
개정 상법상 5% 이상 주주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통해 이사회 진입이 수월하다. 향후 수출입은행의 지분 매각 방식에 한화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다.
업계 관계자는 “재무적 투자자의 지분율을 넘어서는 순간 한화는 예비 주인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하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25년 기준 한국 방산 수출 점유율은 약 6.0%로 세계 4위를 기록했다. 프랑스, 이스라엘에 이어 명실상부한 방산 강국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2024년 8위에서 1년 만에 83% 성장하며 폴란드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대상 공급 비중 2위(8.6%)를 달성했다. K9 자주포의 세계 시장점유율 70% 돌파는 K방산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준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은 역설적으로 거대 통합의 압박을 불렀다. 록히드마틴 등 100위권 상위 공룡들은 이미 단일 무기 체계가 아닌 지휘통제·플랫폼을 묶어 파는 ‘통합 시스템’으로 시장 진입장벽을 높이는 중이다.
세계 시장 점유율 6% 수성을 위해선 개별 기업 단위의 각개전투가 아닌 빅딜을 통한 ‘한국 방산 주식회사’로의 체급 상향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록히드마틴은 1995년 마틴마리에타 합병, 2001년 제너럴다이내믹스 전투기 부문 인수를 통해 F-35 독점 구조를 완성했다. 보잉(1997년 맥도널더글러스 흡수)과 BAE시스템스(1999년 마르코니일렉트로닉스 인수) 역시 대형화를 통해 시장을 장악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지휘통제·센서·플랫폼·무장을 묶어 파는 ‘통합 시스템’ 전략이다.
록히드마틴이 F-35 탑재 레이더부터 데이터링크까지 자체 공급하며 생태계를 종속시키는 배경이다. 단일 품목 경쟁력만으로는 수주가 불가능한 시대가 도래했다.
과거의 방산 수출이 가성비 좋은 무기를 적기에 납품하는 ‘단품 매매’였다면 현재는 무기 구매국이 납기 안정성과 자국 방산 역량 강화를 명분으로 현지 거점 구축을 강력히 요구하는 추세다. 현지 생산, 기술이전, 일자리 창출이 포함된 ‘메가 패키지 딜’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 대응이 불가능하다.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CPSP)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캐나다는 잠수함 건조 기술의 100% 이전을 넘어 현대차 공장 건설, LNG 시설 투자, 희토류 광산 개발 등 방산을 넘어선 범국가적 경제협력을 요구 중이다.
올해 3월 제안서 제출을 마친 이 사업은 3000톤급 잠수함 최대 12척을 건조하고 30년간 유지보수까지 포함해 총 60조원 규모다.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컨소시엄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TKMS)가 2파전을 벌이고 있으며 오는 6~7월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다.
한국 컨소시엄이 강점으로 내세운 것은 빠른 납기와 통합 공급 능력이다. 함정 건조 사업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선체 및 플랫폼 설계를 주도하고 한화시스템과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가 각각 전투체계와 무장 부문을 분담하는 협력 구조가 핵심이다. 개별 기업이 아닌 ‘한국 방산 주식회사’ 형태로 움직이지 않으면 수주 자체가 불가능한 판이다.


국내 방산업계는 전방위적인 사업 재편에 한창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위아 방산 부문을 현대로템으로 통합하는 수직계열화를 검토 중이다. LIG넥스원은 사명을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LIG D&A)’로 변경하고 체질 개선에 나섰다. HD현대는 5월 안두릴인더스트리즈와 무인수상정 협력을 공식화하며 10월 시제기 진수를 예고했다.
김홍유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는 이러한 흐름을 미래 전장 대응을 위한 필수 전략으로 평가했다.
김 교수는 “미래 전장은 네트워크와 전술이 하나로 묶이는 통합 전자전 환경”이라며 “기업들이 결합해야만 이러한 통합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며 ‘한국형 록히드마틴’ 같은 거대 기업의 등장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분석했다.
이어 “방산에서 검증된 드론, 로봇 기술은 향후 민간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며 대형화를 통한 연구개발 역량 집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록히드마틴이 F-35를 판매할 때 함께 수출하는 것은 나토 표준 데이터링크와 미국 주도의 정비 네트워크다. 도입국은 향후 30년간 록히드마틴이 설계한 생태계에 종속된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 역시 3세대에 걸쳐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보장되는 대표적인 ‘연금형 모델’이다.
K방산의 대형화 움직임은 이 생태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한 최소 자격 요건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무기가 ‘표준’이 된다는 것은 향후 수십 년간 해당 국가의 국방 생태계를 점유한다는 의미와 같다.
김 교수는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파격적인 현지화 요구를 역으로 이용한 ‘전략적 분업’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핵심 기술은 국내에서 통제하되 현지에는 조립과 MRO(유지·보수·정비) 기지를 구축하는 이원화 전략이 필수적”이라며 “국내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 동반진출해 현지 공급망의 주도권을 잡는다면 파급 효과 감소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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