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날까 무섭다" 교사들 기피 심화에…특수 누리는 곳

입력 2026-05-15 07:00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수도를 개경에서 ‘나의 편’이 많은 이곳, 한양으로 옮깁니다.”

지난 3일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한 민간 체험학습 업체 소속 강사가 조선의 궁궐 그림 ‘동궐도’ 앞에서 이렇게 설명하자 초등학교 1·3학년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사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 앞에서 우리가 얼굴을 아는 조선시대의 왕은 몇 명인지 물었고, 1만원짜리 지폐 배경에 그려진 별자리를 보여주며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만들어진 유래를 설명했다. 이날 박물관에서는 외부 강사 20여 명이 각각 초등학생 5~6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곳곳에서 이 같은 수업을 하고 있었다.
◇민간 체험 시장 급성장
민간 체험학습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안전사고에 따른 법적 책임 문제와 학부모 민원 부담으로 학교에서 점차 현장체험학습이 사라지고 있어서다.

14일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605개 초등학교 중 98.8%가 현장체험학습을 시행한 데 비해 2026년에는 25.8%만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2023년 수련회를 간 초등학교는 20.5%였는데 올해는 3.1%만 수련회를 계획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은 안전사고 발생 시 책임이 교사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현장체험학습을 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초등교사노조가 지난달 전국 초등교사 2만19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6.2%가 현장체험학습 추진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안전사고 발생 시 교사의 법적 책임에 대한 불안감’(49.8%)을 꼽았다.

2022년 강원 속초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버스 사망 사고와 관련해 지난해 법원이 인솔 교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이 체험학습 중단의 시발점이 됐다. 강석조 초등교사노조 위원장은 “예측 불가능한 사고에 대해 교사의 민형사 책임을 면책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교육청 등에 따르면 초·중·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매년 두세 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그램도 다양화
학교에서 현장체험의 기회가 사라지면서 국내 민간 체험학습업계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 교육업계에 따르면 올해 4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민간 체험학습 시장이 2031년엔 7조원, 2036년에는 10조원대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학부모들이 체험을 아이들의 자기 계발 수단으로 여기며 지갑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한모씨는 주말마다 초등학생 자녀를 ‘한국사 1등급 명문대생과 함께하는 궁궐 투어’에 보내고 있다. 한씨는 “우리 어린 시절에는 박물관이나 궁궐로 소풍을 자주 갔지만, 지금은 그런 행사가 모두 사라졌다”며 “교과서에서만 보던 문화재에 이야기를 입히니 아이의 이해도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도 박물관·궁궐 탐방 등 역사 교육뿐만 아니라 경제 교육, 숲 체험학습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내 최대 체험학습 플랫폼 아자스쿨에 따르면 지난해 생태체험 상품 수는 전년 대비 3.4배, 경제·금융 관련 프로그램 결제 건수는 3.6배 늘었다.
◇커지는 경험 격차
학교가 맡아온 체험학습의 상당 부분을 민간 프로그램이 대신하는 ‘경험의 외주화’가 장기화하면 부모의 관심과 경제력에 따라 아이들이 쌓는 ‘경험 자본’의 격차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소득이 800만원 이상인 가구의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66만2000원으로, 300만원 미만 가구(19만2000원)의 3.4배에 달했다.

이미 입시업계에서는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학생의 진로 설계와 연계해 하나의 ‘스펙’으로 구조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 체험학습 업체 대표는 “대치동 등 학군지 입시 컨설팅 업체들로부터 특정 학생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짜달라는 요청이 잇따른다”며 “희망 전공과 연결되는 경험을 만들어 학교생활기록부에 구체적으로 남기려는 목적”이라고 귀띔했다.

교사들이 교육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현장체험학습마저 가지 않는다면 교사는 단순 지식 전달자로만 남게 될 것”이라며 “정부는 교사들이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는 안전망을 구축하고, 교사는 교육 주도권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미경/고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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