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金融)은 인간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 중 하나입니다. 금융은 여윳돈을 가진 쪽과 필요한 쪽 사이의 자금 융통 거래를 의미합니다. 오직 인간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예를 들어, 물건(먹이)이나 일(털 고르기)의 교환이 영장류나 돌고래 등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에 비해, 비인간 동물들 사이의 금융거래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둘 다 '거래'라는 개념으로 쉽게 묶이곤 하지만, 물품거래와 금융거래 사이에는 인류가 노래하던 달의 여신과 달에 쏘아 올린 로켓 이상의 격차가 있습니다.
원숭이들도 기초적 교환거래의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발리 등지에서 원숭이들이 관광객의 안경이나 스마트폰을 가로채는 행위가 화제입니다. 놀랍게도 음식물을 던져 주어야만 물건을 되돌려주는 것입니다.
동일 미션에 오이와 포도로 차별적 보상을 하자, 카푸친 원숭이가 오이 조각을 집어 던지며 항의하는 영상도 보입니다. 장자의 '조삼모사'가 단순히 우화로만 그치지 아니함을 시사합니다. 비인간 영장류 역시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과 교환거래의 기초 관념을 갖고 있음이 엿보입니다.
다만 교환의 관념을 갖기 시작했더라도, 원숭이 사회에 금융이 일어나려면 앞으로 몇십 만년은 더 기다려야 할 듯합니다.
한편으론, 어제 따온 알밤을 먼저 받아먹고 그 대가로 오늘 잡은 토끼를 나누는 식의 시차 거래 경험이 반복·확장되면서, 먼저 준 쪽이 그 대가를 받지 못할 위험(신용위험)도 차츰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를 해결해 줄 기술적 수단은 바로 돈, 신용위험 관리제도, 문자(증서)입니다. 돈은 가치의 척도로 교환의 매개 수단이자 가치저장의 수단입니다. 돈의 기능에 관한 이 건조한 문장은 돈과 금융이 펼쳐 보일 화려하고 격동적 세계를 내장하고 있습니다.
앞서 본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차원을 넘어서서, 돈과 금융은 문명을 형성시키고, 도시와 국가를 탄생시키며 그러한 거대한 조직체의 운영을 가능케 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우리는 베네치아, 콘스탄티노플 등 중세 산업도시의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메디치 가문의 위세와 업적을 통해 금융의 힘을 직관할 수 있습니다.

고대와 중세의 금융에서 대주가 직면하는 본질적 위험은 차주의 신용위험입니다. 석기시대를 지나 청동기시대에 고대문명이 자리 잡게 됩니다. 이때 금속(은), 물품화폐(곡식이나 베)가 사용되었고, 종교, 계급(노예제), 사유재산제, 문자, 수학, 성문법이 발명되거나 심화했습니다.
당시의 문헌과 유물을 통해 이러한 지식과 수단들을 바탕으로 이미 화폐 사용, 금융, 상업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금융의 형태는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자금 수요자(차주)에게 은이나 물품을 빌려주고 일정 비율의 이자까지 되돌려 받는 '대출'거래였습니다.
이 거래에서 돈을 빌려주는 쪽이 직면하는 위험은 자연재해 등의 불가항력적 사유를 제외하면, 차주가 차입금을 갚지 않는 위험(즉, 신용위험) 정도입니다. 이에 대응해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는 부동산담보, 보증인제도가 자리 잡고 있었고, 함무라비법전은 빚을 갚지 못한 자를 대주의 노예로 삼을 권리를 규정했습니다. 고대 로마의 12표법 역시 사적 구금과 노예화는 물론이고, 심지어 여러 채권자들에게 빚을 진 자의 몸을 비율에 따라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에서 볼 때, <베니스의 상인>에서 '차주인 안토니오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심장에 가까운 살 1파운드를 제공한다'는 계약과 그 재판은 우발적인 창작물만은 아니었을 듯합니다.
대항해시대, 회사의 발명, 제국주의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금융투자상품이 출현했습니다. 흔히 금융거래의 두 축을 '대출'과 '투자'로 대별합니다. 전자는 차주의 신용위험이 현실화하지 않는 한 원리금을 돌려받지만, 후자는 투자 대상 사업의 성패에 따른 투자금 손실의 위험이 내재해 있습니다. 그래서 전자는 위험과 수익률이 낮고 후자는 그 반대의 경향을 보입니다(high risk, high return). 우리의 금융법률은 양자를 포함해 '금융상품', 후자만을 '금융투자상품'이라 부릅니다.대항해시대와 이때 탄생한 주식회사의 발명을 기점으로, 그전에는 '대출'이 주종이었으나, 그 후에는 '금융투자'라 불릴 만한 상품들이 등장합니다. 대항해를 위해 필요한 거대 자금의 조달에 성공해 출항한 무역선이 향신료, 금, 은, 노예를 싣고 무사 귀환하는 경우 여기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막대한 이익을 얻었습니다.
반면 1/3은 풍랑 등으로 실패했다 하니 투자금을 날릴 위험 또한 매우 높았습니다. 위 안토니오의 재판은 이러한 무역선 '금융투자'의 실패로 시작되었습니다. 필요는 발명을 낳는다고, 이에 대응해 다수의 투자자가 소액, 유한책임 방식으로 참여하는 '금융투자상품'이 발명되었고 주식회사의 기원이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주식회사는 대규모 방직, 제련, 철도, 전쟁 무기, 석유 시추, 화학 등 온갖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그 다양성만큼 여기에 돈을 대는 '금융투자'의 내용, 위험, 기법도 다양해지기 마련이었습니다. 대항해, 회사, 과학, 금융은 긴밀히 상승작용을 하면서 일국을 넘어선 초국적 체제를 형성하고, 제국주의시대로 나아갑니다. 그 시대를 살았음에도 고전학파경제학자들은 화폐의 흐름과 실물 부문은 무관하다고 보았으나, 실제는 그렇지 아니했고, 현재 우리는 금융(화폐) 부문의 규모와 영향력이 실물을 넘어서고 압도하기까지 하는 '금융자본주의'의 시대를 생생히 목도하고 있습니다.
금융투자상품의 위험성과 투자성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상품'을 '투입(투자)하기로 약정한 금전의 총액이 회수하였거나 회수할 수 있는 금전의 총액을 초과하게 될 위험이 있는 금융상품'으로 정의하고, 그 '위험'을 바로 '투자성'이라 명기하고 있습니다.
앞서 보았듯, '금융투자상품'(instrument)은 실물 상품과는 달리 그 자체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투자 대상 사업의 성패에 따라 그 가치(수익 실현)는 유동적입니다. 즉, 실현 여부가 유동적인 '위험'(가능성)이 실현되면 손실이, 실현되지 아니하면 '이익'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상적 용례와 달리, '금융투자상품'의 위험성과 투자성은 동전의 양면으로 결국 동일한 것을 다른 측면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서구와 우리의 역사적 발전 경로의 차이는 이 ‘위험성’을 기꺼이 감수하는지 여부로 보입니다.‘위험성’과 ‘투자성’의 동일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대항해시대에 앞서 명나라의 정화가 대원정을 감행했으나 중단된 사태의 의미, 서구와 우리의 역사적 발전 경로의 차이와 원인, 회사, 금융, 자본주의를 포함한 서구의 제도와 체제가 강력히 얽어 놓은 우리의 체제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돌리는 심장은 자본주의의 정신, 즉 이익 추구 욕망, 탐욕이라 일컬어집니다. 심장에는 눈이 없습니다.
이에 충실한 것인지 우리는 개별 금융투자상품의 쇼핑에 열중하고, 금융의 역사와 동학에는 별 흥미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금융은 압도적으로 중요합니다.
AI와 로봇 프로젝트에 몰두하는 플랫폼 기업들의 경쟁, 여기에 쏟아지는 금융투자금과 동학, 이것이 가져올 산업 재편과 사회 변동에 특별히 주목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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