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호 테스 대표는 2002년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를 그만두고 신생 반도체 장비 업체인 테스로 이직했다. “한국도 반도체 장비를 국산화해야 한다”는 주숭일 테스 창업주(회장)의 제안을 받고 며칠을 고심해 결정했다. 현재 SK하이닉스에 남아 있는 이 대표 동기는 없다. 이 대표가 테스에서 24년간 성과급 등으로 받은 자사주는 102만2061주. 지난 22일 기준 1318억원어치다.
중소·중견기업에서도 수백억원, 수천억원의 주식 자산을 보유한 전문경영인이 나오고 있다. 최근 수년간 성과급으로 받은 주식의 가치가 큰 폭으로 뛰어 창업가 못지않은 부(富)를 이룬 것으로 분석됐다. 중소·중견기업 ‘샐러리맨 주식 부자’가 늘어나면 대기업 중심 기업 생태계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동철 하나마이크론 대표는 2019년 삼성SDI 전략담당 기획팀장을 그만두고 하나마이크론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 대표는 “베트남 등에 공장을 늘려 회사 생산 규모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최창호 하나마이크론 창업주에게 권유했고 이 승부수가 통했다. 이 대표가 6년간 성과급으로 받은 주식은 77억원어치. 삼성그룹에 다니면서 받은 성과급보다 많다.
창업 초기 단계에 회사에 합류하면 더 큰 보상을 받는다.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가 보유한 자사주 가치는 5361억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KAIST 연구원 시절 지도교수인 오준호 레인보우로보틱스 창업주를 따라 신생 기업에 합류했다. 미국 국방부와 군용 배터리 공급을 논의할 정도로 기술력을 키운 비츠로셀의 장승국 대표(585억원)도 초기부터 받은 주식 성과급 가치가 수백억원으로 불어났다. 국내외 사모펀드(PEF)가 투자한 기업을 경영하면서 부호 반열에 오른 기업인도 등장했다. 김용운 전 HPSP 대표가 최근 5년간 받은 회사 주식 가치는 263억원에 이른다. 국내 한 중소기업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쟁력은 회사 창업과 성장 단계에 합류하는 다양한 대기업 샐러리맨에게서 나온다”며 “국내에서도 파격적인 보상으로 부자가 되는 중소·중견기업 샐러리맨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5361억·이재호 1318억…자사주 가치 뛰며 보유자산 급증

성공 방정식은 크게 세 가지다. 창업 초기 단계에 합류한 샐러리맨은 ‘장기 투자’에 따른 결실이 크다. 대기업 임원 또는 부장으로 재직하다 중소 혁신기업으로 발탁된 기업인도 많다. 최근 들어선 사모펀드(PEF)가 업계에서 영입한 ‘스타 최고경영자(CEO)’들이 ‘샐러리맨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다. KAIST 연구원 시절 오준호 지도교수(현 레인보우로보틱스 회장)와 이족보행 로봇을 개발하다가 창업 초기 레인보우로보틱스에 합류했다. 이 대표가 보유한 레인보우로보틱스 주식 가치는 22일 기준 5361억원으로 웬만한 중견기업 시가총액보다 크다. 창업 초기 단계에 합류한 허정우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임정수 이사가 보유한 회사 지분 가치도 각각 2710억원, 1616억원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휴머노이드 선두 업체’로 분류되며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결과다.
배터리업계에선 에코프로그룹 경영진의 성과가 눈에 띈다. 2004년 평사원으로 입사한 최문호 에코프로비엠 대표는 18년 후인 2022년 이 회사 CEO로 승진했다. 현재 52세인 최 대표가 보유한 자사주 가치는 266억원. 비슷한 연령대의 국내 주요 대기업 임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성과급이다.
이들 중소·중견기업 샐러리맨 CEO는 창업주 못지않은 성공 스토리를 자랑한다. 현대전자산업(현 SK하이닉스) 출신인 이재호 테스 대표는 외국 반도체업체가 독점하던 반도체 전공정 핵심 장비를 국산화했다. 최 대표도 하이니켈 양극재를 국산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CEO로 고속 승진했다.
하나마이크론의 올해 매출(컨센서스)은 2조1620억원으로 예상된다. 2019년(4737억원)의 4.5배다. 카카오게임즈 등을 거쳐 2017년 펄어비스에 합류한 허진영 대표도 성공 모델로 꼽힌다. 허 대표가 보유한 펄어비스 주식 가치는 93억원에 이른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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