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재영 '기억과 동행위' 상임대표 "고려인 눈물 닦아줘야"

입력 2017-05-18 09:47  

[인터뷰] 도재영 '기억과 동행위' 상임대표 "고려인 눈물 닦아줘야"

강제이주 80주년 맞아 국내 거주 고려인 배제한 고려인특별법 개정 추진

"고려인 대부분 독립운동가의 후손…돕지 않으면 순국선열이 꾸짖을 것"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고려인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직간접적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펼친 분들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오랜 기간 교류가 단절되고 우리말을 잃어버려 국내에 귀환한 동포 중에서는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이분들을 돕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순국선열들이 우리를 꾸짖으실 겁니다."

올해는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지 80주년이다. 1990년대부터 러시아·중앙아시아와 중국 등의 북방 동포 돕기에 앞장서온 동북아평화연대의 도재영(79) 이사장은 강제이주 80주년을 계기로 경기도 안산과 광주광역시 등지에서 활동하는 동포단체와 시민단체들을 모아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다.

17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발족식을 치르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억과 동행 위원회'(기억과동행위)는 이름 그대로 80년 전의 기억을 잊지 말고 고려인들과 함께 가자는 취지의 모임이다.

상임대표로 추대된 도 이사장은 발족식 직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고려인과 해외의 고려인들을 연계해 8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를 열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고려인 바로 알기와 고려인 기억하기 캠페인을 펼칠 것"이라며 "무엇보다 모국으로 귀환한 고려인 동포들이 가족 간에 생이별하는 고통을 겪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 당면 목표"라고 역설했다.

현행 '고려인 동포 합법적 체류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고려인특별법)은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러시아 및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자와 친족으로 현재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자'를 지원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로 이주한 고려인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 시행령은 '부모의 일방 또는 조부모의 일방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를 재외동포로 명시해 동포 4세는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고려인들은 외모로 차별받지 않는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외국인 취급을 받다 보니 보육료를 지원받지 못하고 지역아동센터에도 보낼 수 없죠. 더 안타까운 것은 성인이 되면 대한민국을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다른 민족과 결혼하면 부모를 모셔올 수도 없고 19세부터 24세 자녀는 데리고 올 수도 없습니다."

예전에도 법 개정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12월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됐다가 19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고 올 초에도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 자유한국당 곽대훈·김명현 의원,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 등이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도 이사장은 "정부와 국회 일각에서는 지원 대상을 확대하면 재외동포들이 국내로 몰려와 국내 고용시장의 질서를 깨뜨리고 재정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세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서 "국내 고려인들은 대부분 우리말을 하지 못해 단순 노동에만 종사하고 있는 만큼 국내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라고 잘라 말했다.

"90년대 말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고려인이 최근 급격히 늘어나 4만여 명이 이르렀기 때문에 더는 미룰 수 없게 됐습니다. 80년 전 강제이주가 시작된 오는 9월 9일까지 법 개정을 이뤄낸다는 목표 아래 고려인 경청회, 시민토론회, 국회 세미나 등을 열고 서명운동도 펼칠 겁니다. 지금까지 차별과 냉대를 감수하며 묵묵히 일해왔던 고려인들도 네트워크를 조직해 전면에 나서기로 했으니 이제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합니다."

기억과동행위는 법률 개정과 함께 강제이주 진상 규명과 고려인 명예 회복, 국내 정착 지원과 환경 개선 등에도 힘쓰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내 체류 고려인 인터뷰, 사료 수집, 아카이브 시스템 개발 등에 나서고 고려인 알리기 캠페인, 릴레이 응원 메시지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고려인이나 조선족 등을 따뜻하게 대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자 역사의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발전, 남북한 통일, 동북아 평화 시대 등을 위해서도 매우 긴요한 일이죠. 이들을 '왕따'시키면 한중관계나 한러관계가 좋아질 수가 없고 남북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북한 동포들도 우리에게 거부감을 느끼겠죠. 또 같은 핏줄조차 껴안지 못하면서 어떻게 외국인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도 이사장은 1966년 기아산업에 입사해 30년 넘게 일하며 기산·기아자동차서비스 사장과 기아그룹 부회장을 지냈다. 1990년대 업무 관계로 중국 동북 3성과 러시아 연해주 등지를 방문한 뒤 동포들의 현실에 눈을 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은퇴 후에는 NGO 활동가로 변신, 2003년 동북아평화연대 이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동북아평화연대는 1997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재외동포사업국으로 출발했다가 2001년 정식으로 창립됐다. 조선족 사기피해 해결을 위한 청원운동, 연해주 고려인 정착 지원, 동북아 민족교육 지원 ,다민족·다문화 교류사업, 지속가능한 농업·경제사업, 도서 보급, 고려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건립 등의 활동을 했다.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기업들이 나서야 할 분야가 있듯이 NGO가 해야 할 몫이 따로 있다는 게 도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2014년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 러시아·남북한 종주 자동차 랠리도 NGO인 우리가 앞장섰기 때문에 성사될 수 있었다"며 "앞으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며 우리에게 많은 기회가 올 것으로 본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시민사회는 시민사회대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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