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중근 "LG 위해 팔꿈치·어깨 썼다는 것만 알아주면 여한없다"

입력 2018-09-28 15:25  

봉중근 "LG 위해 팔꿈치·어깨 썼다는 것만 알아주면 여한없다"
마운드 떠나는 봉중근 "LG에서 우승못한게 가장 아쉬워"
은퇴식 뒤에도 멘토로 1군 선수단과 시즌 끝날 때까지 동행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LG 트윈스에서 10년 동안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마운드를 이끈 좌완 투수 봉중근(38)은 2016년 12월 LG 트윈스와 계약 기간 2년, 총액 15억원에 생애 첫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했다.
봉중근은 그 2년이 마무리돼 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군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2016년 10월 4일 삼성 라이온즈전(4이닝 1실점)을 끝으로 1군 무대에 서지 못한 봉중근은 최근 구단을 통해 현역 은퇴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누구도 봉중근에게 '먹튀'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LG 구단의 길었던 암흑기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봉중근이 팀이 기여한 가치는 단순한 FA 몸값만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LG 구단은 5위 싸움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KIA 타이거즈전을 앞두고 28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봉중근 은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봉중근은 "팀이 너무나도 힘든 시기에 은퇴식을 해야 하나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구단 관계자나 감독님, 코치님, 선수들 모두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만사를 제쳐놓고 은퇴식을 마련해준 구단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LG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했던 팀이었고, 이상훈 코치님을 보면서 야구를 시작했다. LG는 너무 많은 의미가 담긴 팀"이라며 "LG를 평생 사랑하면서 야구 쪽에서 큰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향후 각오를 밝혔다.
봉중근은 1997년 신일고 재학 중 미국프로야구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해 2002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된 2004년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7승을 올린 봉중근은 2007년 1차 지명으로 LG 유니폼을 입고 국내 무대로 복귀했다.
봉중근은 전성기를 LG에서 보내며 암흑기의 에이스로서 고독하게 마운드에서 버텼다.
LG는 2008년 8위, 2009년 7위, 2010년 6위에 그쳤지만, 봉중근은 3년 연속 10승과 170이닝을 돌파했다.
하지만 2011년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2012년부터는 마무리로 변신했다.
마무리로 역할을 바꿔서도 3년 연속 25세이브(2012년 26세이브, 2013년 38세이브, 2014년 30세이브)를 달성하는 등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궂은일을 마다치 않았던 봉중근은 2015년부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결국, KBO리그 통산 321경기에서 55승 46패 2홀드 109세이브 평균자책점 3.41의 성적을 남기고 유니폼을 벗었다.



2014년 신시내티 시절 어깨를 수술했던 봉중근은 LG 유니폼을 입고 2011년 팔꿈치 수술, 2017년 두 번째 어깨 수술을 받았다.
봉중근은 "나이가 많아서인지 재기가 힘들었고, 올해가 가장 힘들었다"며 "올해 7월쯤이었다. 라이브 피칭까지 다 마친 뒤에 통증이 재발했다. 그때 은퇴를 결심했다"고 소개했다.
봉중근은 여러 곳에서 조언을 구했지만, 은퇴 결정은 스스로 했다면서 친한 후배인 류현진(로스앤젤레스 다저스)과의 대화 내용도 소개했다.
그는 "(류)현진이에게 은퇴한다고 말했더니 안 믿더라"며 "현진이가 통증을 참고 던지면 어느 순간 괜찮아진다고 하길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통증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봉중근은 "현진이가 많이 슬퍼했다"며 "은퇴할 때 한 타자라도 던지라고 말해줬을 때는 울컥했고, 무척 고마웠다. 후배이긴 하지만 메이저리그의 대투수 아닌가. 진심을 다해서 얘기해준 것에 대해서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봉중근은 LG에서 우승하지 못한 채 은퇴하는 것을 가장 아쉬워했다.
그는 "지난해 이병규 코치님의 은퇴식을 미국에서 봤는데, 내게도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며 "우승 한번 해보지 못하고 은퇴하는 게 제일 맘에 걸리고, 팬들에게 제일 죄송스럽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는 LG가 11년 만에 가을야구 진출을 확정한 2013년 두산 베어스와 시즌 최종전을 꼽았다.
그는 "그때 한국시리즈 우승한 것처럼 모든 선수가 다 같이 울었다. 그때 꼭 우승할 거라고 믿었다"며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고, 그날 그 경기가 LG 유니폼을 입고 가장 자랑스럽고 기억에 남는 날인 것 같다"고 했다.
봉중근은 이날 팬 사인회에 이어 경기 전에는 시구자로 나선다. 봉중근은 이제 선수로 뛰지 않지만 선수단 멘토로서 올 시즌이 끝날 때까지 LG 1군과 동행할 예정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전할 메시지로 "한 시즌 144경기 치르다 보면 40∼50%는 지는 것이 야구다. 우리 후배들이 패배했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지다 보면 또 이긴다. 이기는 경기에서 좀 더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후배 투수들은 자신의 볼을 믿고 던졌으면 좋겠다. 어린 투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안타나 홈런 맞으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표정을 너무 많이 봤다. 그래선 안 된다. 다시 또 이길 수 있는 경기가 온다. 그것만 놓치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고맙다"며 "LG가 힘든 시기에 팀을 많이 도와줬고, 팔꿈치, 어깨를 LG를 위해 썼다는 것만 팬들이 알아주신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봉중근은 LG의 에이스로서, 또한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붙여진 별명이 많다.
그는 LG 암흑기 시절 유독 승운이 따르지 않아서 붙여진 '봉크라이' 별명에 대해서 "팬들의 관심 받는 것 자체가 고맙고, 좋은 별명이든 나쁜 별명이든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것이기에 프라이드를 갖게 된다"며 "'봉미미' 별명도 아직까지도 듣고 있지만, 저는 너무나도 좋았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많은 별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봉의사'를 꼽았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을 상대로 거침없는 호투를 거듭하며 얻은 별명이다.
봉중근은 "봉의사가 제일 마음에 든다. 야구하면서 제일 뿌듯한 별명이 아닌가 싶다. 한 직업을 30년 넘게 하기도 쉽지 않다. 빨리 은퇴할 수도 있는데, 대한민국 팬들이 지어주신 별명이라 대대로 자랑할 수 있는 별명이라고 생각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chang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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