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보험이어서 태아 때 생긴 문제 보장하리라 여겼는데

입력 2020-11-09 07:39   수정 2020-11-09 08:02

태아보험이어서 태아 때 생긴 문제 보장하리라 여겼는데
선천성 질환·기형엔 보험금 지급 안 해…일부 보험사 2018년 약관 개선
법원 "유전자 이상이어도 출생 때 발병 안 했다면 지급해야"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2015년 1월 예비 아빠 N씨는 대형 손해보험사의 '태아보험'에 가입하고 6개월 후 자녀를 출산했다.
출산 과정에서 아이에게 출혈이 약간 있었지만, 검사에서 별다른 뇌 손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생후 5개월 무렵 아이가 목을 잘 가누지 못하는 등 발달에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상태는 점차 악화해 2016년 말에는 사지부전마비 뇌병변장애로 장애진단을 받기에 이르렀다. 2017년 2월에는 '1급 장애인' 판정이 내려졌다.
N씨는 태아보험에서 장애에 지급하는 보험금 3천만원을 청구했다가 보험사로부터 '선천성 질환'에 따른 장해는 약관상 지급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아이는 유전자 검사에서 18번 염색체 결함이 나타났는데, 보험사는 아이의 장애가 유전자 이상에 따른 것이므로 약관상 지급 거절 사유라는 주장을 펼쳤다. '선천적 질환에 근거한 병상'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약관의 면책조항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N씨는 가입 당시 태아보험이 태아 발달 과정에서 생긴 이상에서 비롯된 장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굳이 태아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출생 시점부터 보장되는 상품에 가입해도 될 터였다.
N씨는 보험사가 이러한 중대한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약관상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는 취지로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중앙지방법원은 N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보험사에 보험금과 12%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보험사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 "일부 태아보험만 선천성 이상 보장…소비자 오도 우려"
N씨를 대리한 강형구 변호사는 "선천성 질환으로 인한 장애가 보험금 지급 거부 대상이라는 약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태아보험에 가입한 부모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강 변호사는 "태아보험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당연히 태아 발달 과정에서 생긴 이상을 보장하리라 여기지만 실상은 다르다"며 "소비자를 오도할 가능성이 있는 명칭"이라고 지적했다.
시중 태아보험은 대부분 '어린이보험'의 태아 특약 상품 형태로 개발됐다. 주계약이 어린이의 사고·질병에 따른 장애를 보장하는 내용으로, 보험 가입 전부터 있었던 선천성 장애는 보험사의 면책으로 약관에 명시한 것이다.
그러나 태아보험 특약은 피보험자(보험으로 보장하는 사람)가 태아와 신생아인데도 주계약의 면책이 그대로 적용돼 분쟁을 일으켰다.
N씨에 앞서 다른 태아보험 계약자도 선천성 질환 면책 약관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하자 대법원까지 가는 싸움 끝에 받아낼 수 있었다.
논란 속에 일부 보험사는 태아보험 가입자에게 선천성 장애에 대해서도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2018년 약관을 개정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태아보험 중 선천성 질환에 따른 장애에는 아예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보장 범위를 잘 이해한 후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출생 때 발병 안 했다면 선천성으로 인정 안 돼"
강 변호사는 "설사 보험사가 N씨에게 선천성 장애 관련 면책 약관을 제대로 설명했다고 하더라도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N씨의 딸은 출생 직후에는 장애 징후가 없었고 5개월이 지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험사는 아이의 유전자 이상을 근거로 장애가 선천성이라고 주장했지만 앞서 법원은 그러한 보험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4년 태아보험을 계약한 K씨도 자녀가 생후 7개월에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1급 장애인이 된 후,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보험사는 아기에게 유전자 이상이 있고, 이는 약관에서 면책 사유로 제시한 선천성 장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K씨는 이에 반발해 보험금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모두 이겼고, 2018년 10월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승소를 확정 지었다.
당시 법원은 "선천적 질환은 태어날 때부터 발병해 있는 질환을 의미한다"며 "아이의 질병이 유전자 이상에 의한 것이라 해도 태어날 때부터 발병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만큼 선천적 질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N씨는 "유전자 이상이 있더라도 날 때부터 발병한 게 아니라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앞서 나왔는데도 보험사는 일단 선천성 장애 면책 약관을 내세워 우리에게 거절부터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비슷한 사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한 가입자가 우리 말고도 더 있을 것"이라며 "이제라도 가입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tr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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