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성운동 '등대' 사아다위 별세

입력 2021-03-22 10:33   수정 2021-03-22 17:54

이집트 여성운동 '등대' 사아다위 별세
할례 등 여성에 대한 억압·불평등에 평생 맞서 싸워
전세계서 존경받았지만 정작 모국서는 인정 못받아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 이집트 여성운동의 선구자이자 투사였던 나왈 엘 사아다위가 21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BBC 방송이 현지 매체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향년 89세.
이에 따르면 사아다위는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사아다위는 이집트 의사이자 페미니스트, 작가로 활동했다. 수십 년간 소설과 에세이, 전기, 강연 등을 통해 성별 불평등과 여성의 권리에 관한 자신의 얘기와 시각을 널리 공유해온 선구자적인 인물이다.
그는 1931년 카이로의 외곽 마을에서 9명의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난한 관료였고, 어머니는 부유층 출신이었다.
그는 10세 때 결혼을 강요하는 가족에 저항했고, 13세 때 첫 소설을 내놨다.
사아다위는 어린 시절에 이미 딸보다 아들을 더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깨달았다.
그는 할머니가 "남자아이가 여자아이 15명보다 더 중하다"고 말한 데 충격을 받았다.
사아다위는 대표작 '히든 페이스 오브 이브'(The Hidden Face of Eve)에서 6세 때 여성할례(FGM)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것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녀는 할례가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며 평생 이에 대한 반대 활동을 벌였다.
여성할례는 2008년 이집트에서 불법화됐지만, 여전히 만연하고 있다.
사아다위는 1955년 카이로대 의대를 졸업했고, 이후 정신의학과 외과 전문의로 일했다.
이집트 정부 보건 담당자로 일하기도 했지만, 여성할례와 여성에 대한 성적 학대 등을 고발한 책을 발간했다는 이유로 1972년 해고된다.
그가 창간한 잡지 역시 1973년 폐간된다.
1977년 내놓은 '히든 페이스 오브 이브'는 성 학대, 명예살인, 성매매 등에 관해 다뤘다. 이는 아랍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81년에는 당시 안와르 사다트 정권에서 다른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체포돼 3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그는 감옥에 밀반입된 눈썹 화장용 연필로 화장지에 비망록을 쓰기도 했다.
그는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된 뒤 석방됐지만, 그의 글은 겸열되고 출판도 금지 당했다.
이후 수년간 종교 근본주의자 등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했고, 결국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도 종교와 식민주의, 서구사회의 위선 등을 꾸준히 비판했다.
그의 활동은 전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사아다위의 책은 4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됐고, 전 세계 여러 대학으로부터 명예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타임지의 '올해의 여성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돼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평생 고국인 이집트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의 친구이자 번역가인 옴니아 아민 박사는 "사아다위의 꿈과 희망은 이집트로부터 어느 정도의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면서 "그는 전 세계로부터 존경을 받았지만, 모국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아다위는 1996년 이집트로 돌아왔고, 2004년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아랍의 봄' 민중봉기 당시인 2011년에는 3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말년을 가족이 있는 카이로에서 지냈다.
아민 박사는 "그는 투쟁심을 갖고 태어났다"면서 "많은 일을 겪으면서 여러 세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pdhis9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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