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가R&D 없이 반도체 미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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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2-27 17:57   수정 2017-02-28 10:25

"'반도체 굴기' 밀어붙이는 중국정부
기업에 반도체 연구 떠넘기는 한국
기술격차 유지 위한 정책대응 절실"

황철성 < 서울대 교수·재료공학 >



지난 1월 미국 대통령 과학기술정책자문위원회(PCAST) 명의의 ‘미국의 장기적인 반도체 기술 우위 보장’에 관한 정책 제안서가 발간됐다. 이 제안서 작성을 위해 워킹그룹이 조직됐는데 미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참여했다.

제안서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중국 정부 차원의 반도체 육성 정책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미국 반도체 산업에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할 것. 둘째, 중국과의 초기술 격차를 계속 유지할 것. 셋째, 반도체뿐 아니라 전 산업에 파급효과가 큰 몇 가지 기반기술을 선정해 집중 지원할 것 등이다.

이 제안서는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인 내용들도 있다. 그러나 이 제안서 전체를 관통하는 요지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 반도체산업의 발전 과정은 자동차, 석유화학 등 다른 산업과는 확연히 달랐다. 즉, 반도체산업은 정부가 학계를 장기간 지원해 얻은 원천·핵심 기술을 기반으로 산업계가 형성됐다. 최고의 첨단 기술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반도체산업의 특성상 당연한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반도체 관련 학계 지원을 더 강화해 우수 인재를 배출하고 최고의 기술을 개발, 초격차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주목한 사실은 이런 내용이 학계가 아니라 반도체 관련 기업과 정부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라는 점이다. 기업의 이익과 입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정책 제안을 받아들여 미국 반도체 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하려는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것이 틀림없다.

한국은 어떤가. ‘정부의 선 연구개발(R&D) 투자, 후 산업화’ 공식은 우리나라에도 적용돼 1990년대 G7프로젝트를 통한 메가바이트(MB)급 D램 개발 사업은 메모리 반도체 개발의 초석이 됐다. 이런 정책적 뒷받침으로 대학에서 반도체는 최고의 연구 분야로 부상했고 최고의 기술 인재를 배출해 현재 메모리 초강국의 위상을 확립했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정책기조는 급변했다. 현재 정부의 반도체 분야 R&D 규모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우수 교수를 확보하기 어려워 이미 대학에서는 반도체 분야 연구가 급격히 줄었고 산업에서 요구하는 고급 인력 공급에도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한정된 R&D 재원을 새롭게 부상하는 산업을 뒷받침하는 데에 써야 한다고 한다. 가령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에서조차 반도체 관련 분야의 정부R&D 투자 제안은 반려되기 일쑤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성숙기에 들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으니 산업계에서 학계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단기 성과 위주로 투자할 수밖에 없다. 대학에 연구비를 투자해 그 결과물이 나오려면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매년 자신의 거취도 불분명한 CEO로서는 투자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들 기업에서 세금을 거두는 정부가 그 일부를 반도체에 재투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사회정의에 부합할 수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부상은 어쩔 수 없다. 다만 우리는 미국 정부처럼 애써 확립한 메모리 반도체 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정책적 대응을 해야 한다. 앞으로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메모리 사업의 국제경쟁력 강화가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새로운 개인 맞춤형 정보기술(IT)산업을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길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에게 불행한 점은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수 인력을 배출해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게 이에 대처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려면 정부의 반도체 R&D정책은 재고돼야 한다.

황철성 < 서울대 교수·재료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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