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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전투식량 2015-05-03 20:39:50
분유는 원래 몽골 기병대의 전투식량이었다. 육포도 빻아 갖고 다니며 물에 타 먹었다. 얇게 썬 고기와 채소를 즉석에서 데쳐 먹는 샤부샤부 역시 전장에서 시작됐다. 미국 남북전쟁 때 인스턴트 커피가 나왔고 스페인 내전 중 설탕 입힌 초콜릿이 등장했다. 군용 건빵과 별사탕은 일본이 만들었다.중세 전투식량 중 가장...
[경찰팀 리포트] 60년 된 경찰 기마대를 아시나요 2015-03-21 09:00:03
화기를 갖춘 기병대 성격이 강했다. 6·25전쟁 때는 전투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각종 축제와 행사에 투입되고, 시민들에게 경찰을 홍보하는 게 주된 역할이다.경찰기마대는 서울지방경찰청, 전북 완주경찰서, 제주자치경찰단 등 세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경찰기마대는 경찰관 6명과 의경 6명,...
英 해리왕자 `이것이 왕실의 품격`··왕실 최초 현역 장성 포부 밝혀 2015-01-06 09:38:30
육군에서 가장 오래된 2개 연대로 구성돼 있으며, 근위기병대는 왕실 퍼레이드를 담당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찰스 왕세자의 둘째 아들인 해리 왕자는 2005년 군 복무를 시작해 2011년에 대위로 승진했으며 현재 왕실 근위기병대에서 참모장교로 복무하고 있다. 지난 2007년과 2013년 2차례 아프간 파병 부대에서...
[시론] 정부의 DNA를 변화시켜라 2014-05-19 20:34:51
장래를 결정한다. 16세기 폴란드는 무적의 기병대 ‘후사르’를 앞세워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동유럽에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시대환경 변화에 무지했던 폴란드 정부는 기계화 부대를 창설하지 않아 후사르는 독일 탱크부대에 전멸당하고, 폴란드의 슬픈 치욕의 역사가 시작됐다. 모방경제 시대의...
[천자 칼럼] 코사크 용병 2014-05-14 20:38:13
반도의 원주민과 켈트족, 누미디아 기병대를 활용했다. 상비군을 고집했던 로마조차 기병과 창병, 궁수 등은 숙련된 용병들을 데려다 썼다.르네상스 시기엔 용병들이 일부러 분쟁을 야기해서 서로 싸우는 척하며 돈만 챙기기도 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용병대가 이런 짓을 자주 저질렀다고 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다산 칼럼] '포템킨 계단'과 키예프의 불안한 미래 2014-02-27 20:34:33
러시아는 코사크 기병대를 파견해 이들을 진압했다. 1917년 혁명 이후 이 사건은 ‘작은 러시아 혁명’이라 해석되기 시작했다. 소련 정부는 그 20주년을 기념해 영화를 만들었고, 그것이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1898~1948)의 이 작품이다. 이 영화는 영화사에 빛나는 대표적 걸작으로 꼽힌다. 교묘한 몽타주 기법을...
말 문화 가장 빛낸 인물, 마상무예 집대성한 정조 2014-01-28 20:33:58
독립군 기병대 교관을 지낸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1900~1972), 뛰어난 침술로 어의가 된 조선 후기의 마의(馬醫) 백광현(1625~1697), 국가에 많은 말을 바쳐 임진왜란 극복에 힘을 보탠 김만일(1550~1632), 6·25전쟁에서 빗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아군의 고지로 포탄을 날랐던 경주마 ‘아침해(레클리스)’ 등이...
[게임별곡 36] 16비트 시절 최고 인기 '남북전쟁' 2013-12-23 00:21:40
빠져 익사하기 때문이다(기억하라! 기병대는 무조건 돌진이다. 멈추거나 후퇴가 안 된다). 이러한 맵 구성으로 인해 서로간의 심리전이 상당했다. 때로는 죽음을 불사하고 다리를 통해 적진으로 돌진하기도 했는데, 포병의 사냥감으로 최고의 재미를 선사해 줄 뿐이었다. 운 좋게 살아남아도 몇 안 되는 기병대는 보병의...
[오피니언] 샹파뉴가 몰락한 이유 등 2013-12-06 16:54:42
없는 몇천명의 스코틀랜드군은 기병대를 앞세운 2만3000여명의 잉글랜드군을 대파함으로써 독립을 쟁취했다. 로이 윌리엄슨이 작곡한 국가 ‘스코틀랜드의 꽃’도 이 때의 승리를 노래한 것이다. 하지만 18세기 초 잉글랜드에 병합됨으로써 독립국의 역사는 400년 만에 끝났다. 이후 대결은 수면 아래로 잦아드는 듯했으나...
[천자칼럼] 스코틀랜드 2013-11-29 21:36:31
없는 몇천명의 스코틀랜드군은 기병대를 앞세운 2만3000여명의 잉글랜드군을 대파함으로써 독립을 쟁취했다. 로이 윌리엄슨이 작곡한 국가 ‘스코틀랜드의 꽃’도 이 때의 승리를 노래한 것이다. 하지만 18세기 초 잉글랜드에 병합됨으로써 독립국의 역사는 400년 만에 끝났다. 이후 대결은 수면 아래로 잦아드는 듯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