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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규 칼럼] 역사 대전환기의 혼군들 2021-05-05 17:29:48
자초했다. 선조는 임진왜란, 인조는 병자호란, 고종은 망국을 불렀다. 국제 정세에는 깜깜이였고, 당파에 휘둘리며 왕권 유지에 골몰한 것도 공통점이다. 혼군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으로 사전에 정의돼 있다. 율곡 이이가 명확히 설명했다. ‘정치를 잘해보려는 뜻은 있지만 총명하지 못해 간사·무능하거나...
천주교 성지서 불교전…화해의 메시지 전한다 2021-04-12 17:17:51
잃었습니다.” 화엄사영산회괘불이 그려진 때는 병자호란(1636~1637년)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던 1653년. 피폐해진 조선 민중들에게 그림은 불보살의 자비와 위로를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위태로워진 지금의 상황과 들어맞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은 대여 요청에 흔쾌히...
[책마을] 박지원은 '열하일기'로 8촌 형을 구했다 2021-04-01 17:46:53
특사 일행을 따라 중국에 간다.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를 ‘오랑캐’라 부르며 멸시했던 조선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대청 외교 방향을 바꾼다. 중국 근세사 전문가인 구범진 서울대 교수는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에서 ‘1780년의 열하’를 배경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외교 관계에 관한 역사적 장면을...
대원군의 쇄국정책,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1-03-21 12:08:58
합리적인 대응이었다. 서학과 천주교는 병자호란 직후부터 영향을 끼쳤지만, 신앙과 학문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18세기 후반부터는 서양인들이 탄 이양선들이 해안에 출몰했고, 호기심과 두려움이 교차했던 조선은 쇄국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서양지도에 기록됐고, 이후 ...
사명감 갖고 오랑캐의 나라 찾은 사람들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1-02-28 08:00:12
사명감 때문이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황폐해진 토지, 포로, 질병, 대량 아사로 '절망의 땅'이 돼버렸다. 곳곳에 만연한 패배감, 상처받은 자존심, 극에 달한 관리들의 탐학, 민란 발생 등으로 조선 체제는 총체적으로 한계를 드러냈다. 박지원의 스승인 이익도 정확하게 갈파했지만 한정된 관직과...
정조 무예정책 의지 담은 '호렵도 팔폭병풍' 고국품에 돌아왔다 2021-02-18 11:43:00
때부터 제작됐다. 조선에서는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거치며 청에 대한 배척의식이 높았다. 하지만 정조 4년(1780년) 건륭제 칠순 잔치에 사절을 보내면서 관계가 호전됐고 청의 문물이 대거 유입되며 청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호렵도는 이런 시대 상황에서 마상무예를 강조한...
독도는 우리땅, 간도는?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1-02-07 08:00:02
맺으면서 후금은 강역 문제를 거론했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산삼·녹용 등을 구하고 농사를 짓기 위해 두 강을 몰래 건넌 조선인들로 문제가 발생했다. 강희제 때에 들어서면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이에 청나라가 정계비를 세운 목적과 배경, 경위 등을 이를 주도한 강희제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청국과...
[오형규 칼럼] 조선이 아직 안 망한 건가 2021-01-27 17:58:59
유럽은 더 짧았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겪으며 진작 망했을 왕조가 유교 원리주의로 연명한 결과다. ‘양반들의 나라’에선 차별과 억압이 일상이었다. 양반과 상민(班常), 양인과 천민(良賤), 적자와 서자(嫡庶)에다 남녀·지역·직업까지 차별은 철저하고 중층적이었다. 특히 노비는 재산 취급했다. 노비를 세는 단위는...
50년 전쟁 후 찾아온 참혹한 기근의 역사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1-01-24 08:00:02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까지 무려 50년 가까이 처참한 살육 현장을 겪은 조선의 백성들은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양 난을 겪으면서 많은 농토가 유실됐고, 노동력은 부족한 형편이었던 경술년(1670년)과 신해년(1671년)에는 조선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경신 대기근’이 일어났다. 일부에서는 인구의 4분의 1...
효종의 북벌론, 현실성 있었나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2021-01-17 08:28:05
만주의 국제환경 국제환경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남북분단과 6·25 전쟁 등 사건들처럼 우리 운명은 국제환경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1654년 당시 명나라는 멸망(1644년)한 지 이미 10년이 됐다. 물론 복명운동이 계속됐고, 1658년에는 남쪽에서 정성공이 10만명의 병력과 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