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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성리학자 권력집단으로 변질하며 신분제 고착화…상공업 퇴조, 쇄국정책으로 국제 교류도 사라져 2022-06-13 10:00:03
실질적으로는 쇄국정책이었다. 명나라는 왜구의 발호와 내부의 정치적 문제, 성리학의 영향 등으로 해금정책을 추진했고, 일본은 쇄국이라는 기조 속에 부분적인 개항을 허용하고 왜구의 존재도 묵인하는 정책이었다. 반면 조선은 완벽한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국제적인 환경과 명나라의 영향도 있었으나 내부적인 이유로...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성리학 사상으로 이상사회 건설하려 했지만…관념적이고 원론적인 선언·정강이 새로운 문제 낳아 2022-06-06 10:00:23
있었고, 일본이 명나라와 조선을 공격한다는 정보들이 유구국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심지어 간첩으로 활동했고, 훗날 향도 역할을 한 승려 겐소는 일본이 침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기이하고 무능한 정부는 갑론을박 끝에 서인인 황윤길과 동인인 김성일을 정사와 부사로 일본에 파견해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왜구 경험이 일본 무역발전·군사대국화 토대 이루는 사이, 명나라는 해금정책 고집·조선은 권력다툼으로 쇠락중 2022-05-23 10:01:15
밀무역을 전개했으며, 특히 일본의 은을 명나라에 수출하는 일을 했다. 이 무렵 일본에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상인과 선원, 선교사들이 들어가 소위 ‘남만(南蠻)문화’가 발달했다. 의술, 천문학, 조선술 등의 신기술을 비롯해 시계, 조총 등의 서양 물건, ‘빵’ ‘덴푸라’ ‘카스텔라’ 등 포르투갈에서 흘러들어간...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해적질하던 왜구들 국제환경에 빠르게 적응, 다국적 무역상 변신…동남아까지 활동 범위 넓혀 2022-05-16 10:00:26
약탈했다. 1368년 건국된 명나라는 1371년 주민들이 바다로 나가는 행위를 막는 해금령(海禁令)을 내렸다. 민간무역을 전면 금지하고, 푸젠성·저장성·광둥성 등 해안에 견고한 성을 쌓고, 군사를 양성했다. 군선도 건조해 곳곳에 배치했다. 이런 해금정책은 300년 이상 존속되다가 1684년에야 폐지됐다. 여기에는 몇 가지...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160여년간 조선 괴롭힌 왜구 토벌하기 위해 '상왕' 태종 명령으로 대마도 정벌에 나서지만… 2022-05-02 10:00:50
수 있고, 명나라에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상왕인 태종은 결국 대마도 공격을 선택했다. 대마도 정벌 대원정원정군 사령관 격인 삼군도체찰사에 임명된 이종무(李從茂)는 각 도의 병선을 수리하고 병사들을 소집하면서 전쟁 준비를 은밀하게 추진했다. 한편 공격할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대마도에 사신을...
[책마을] 갈등과 화해의 연속…200년 美·中 무역史 2022-04-22 17:23:59
평화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명나라와 청나라는 조공을 받는 대신 주변국을 지배하거나 내정에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시기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드물었던 이유라고 설명한다. 청나라가 폐쇄적이었다는 것도 서구의 시각일 뿐 주변국인 조선, 베트남, 시암(태국), 류큐(오키나와), 러시아 등과는 활발히...
1500만원에 산 장물…"물려받았다"며 문화재 등록하다 '덜미' 2022-04-18 09:43:56
더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대명률은 명나라의 주원장이 황제에 즉위하기 한해 전인 1367년 편찬에 착수해 1373년 완성한 법전이다. 조선도 이를 가져다 법률로 활용했다. 특히 A씨 부자가 손에 넣은 대명률은 1389년 명나라에서 수정 편찬된 책을 판각 인쇄한 판본으로, 중국에 남아있는 1397년 반포본보다 연도가 앞선...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조선시대 마을마다 글 읽는 소리 낭자하고…양반 문중마을로 숨는 사람 늘어난 까닭은 2022-04-04 10:00:10
명나라를 돕기 위해 용병을 모집했는데, 이 비용을 충당하고자 군포제를 시행했다. 문제는 이때 인조가 양반층엔 군역을 면제해주고 평민에게만 군역 면제 대가로 포(布)를 받았다는 데 있다. 조선 초에는 양역(良役)이라 하여 원칙적으론 양인을 대상으로 군역이 부과됐고, 양반가의 자제라 해도 군역을 지게 했지만 이제...
[커버스토리] '잘하는 것 나눠하면 이득' 비교우위론…자유무역이 '윈윈 전략'임을 입증하죠 2022-03-28 10:00:59
국가이념으로 받든 조선은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를 오랑캐 나라라며 업신여겼습니다. 박제가는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하지 말고 나라를 개방한 뒤 무역을 해야 조선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야 생산이 는다고 봤습니다. 조선이 청나라와 무역을 열심히 했더라면, 조선은 세계 문명이 어디까지 와...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집현전 설치해 젊고 뛰어난 학자들 등용, 건국세력 대체…정치의 세대교체 추진했죠 2022-03-21 10:00:05
명나라의 3대 영락제는 주변 국가를 군사적으로 정복했다. 1405년부터 환관인 정화를 지휘자로 7차에 걸쳐 해양 원정대를 파견했다. 그 때문에 명나라 중심의 질서에서 탈피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자주성을 일부 양보하는 대신 정치적 보장과 무역상 실리를 선택했다. 세종은 무장인 태조와 태종의 유전 때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