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2월15일 `100원→1환' 화폐 액면 변경
한국은행이 설립된 이후 처음 실행한 리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단위 변경)인 제2차 화폐개혁이 하루 지나면 환갑을 맞는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5일은 한은이 두 번째로 단행한 긴급통화조치 발표가60주년이 되는 날이다.
화폐개혁이란 기존 화폐의 유통을 전면금지하고 새 돈으로 단기간에 교환토록하는 통화정책을 말한다. 물가 급등 등 경제 문제가 원인이지만 지하자금 색출과 같은 정치 목적으로도 활용됐다.
1953년 시행된 제2차 화폐개혁은 화폐단위를 원(圓)에서 `환'으로 변경하는 것이 골자였다. 2월15일 발표돼 17일 전격 시행됐다. 단 이틀 만에 원과 전(錢) 등 기존화폐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군비지출로 물가 상승 압력이 심각하게 커진 데 따른조치였다. 세수 부족으로 인한 재정 적자를 해결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교환 비율은 100원당 1환. 개혁 직전 최고가 지폐는 1천원권이었다. 앞면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초상, 뒷면은 파고다 공원 전경이었다. 이 돈은 10환권으로 교환됐다. 10환권의 앞면에는 남대문, 뒷면엔 해금강 총석정이 그려졌다.
새 화폐 가운데 최고액 지폐는 1천환권이었다. 크게 상승한 물가를 반영한 것이다. 화폐개혁 직전 1조1천367억원에 달했던 은행권 발행액은 개혁 2주 뒤 76억5천100만환으로 축소됐다.
경제사학자들은 제2차 화폐개혁이 시중의 과잉구매력을 흡수하고 경제부흥자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성공한 개혁으로 평가한다.
1962년 원(元)에 통화단위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Ə년 천하'에 그쳤지만 환의흔적은 지금도 있다.
가령 한국은행이 만든 동전이 처음 등장한 것은 '환'의 시기인 1959년 10월이었다. 무궁화가 그려진 10환, 거북선의 50환, 이승만의 100환이 발행됐다.
세종대왕 모습이 처음 화폐에 새겨진 것도 이 시기다. 당시 1천환권 앞면에 나타난 이승만이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하며 그 자리를 세종대왕이 차지했다.
환의 역사는 짧았다. 5.16 쿠데타 이후 집권한 군사정권은 1962년 6월 부정축재자의 지하자금을 양성화하려고 제3차 화폐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해 5월 처음 선 뵌, 저축통장을 든 모자(母子) 그림의 100환 지폐는 발행 26일 만에 사라졌다.
당시 교환비율은 10환당 1원(元). 3차 화폐개혁은 미비한 준비와 예기치 못한예금 동결조치 등으로 경제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지하자금 색출 역시 기대에 못미쳤다.
그러나 당시 정해진 '원' 체계는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진다. 그간 디노미네이션도 없었다. 3차 개혁 당시 최고액권 지폐는 500원이었다. 현재는 5만원으로정확히 100배가 됐다.
banghd@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한국은행이 설립된 이후 처음 실행한 리디노미네이션(화폐 액면단위 변경)인 제2차 화폐개혁이 하루 지나면 환갑을 맞는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5일은 한은이 두 번째로 단행한 긴급통화조치 발표가60주년이 되는 날이다.
화폐개혁이란 기존 화폐의 유통을 전면금지하고 새 돈으로 단기간에 교환토록하는 통화정책을 말한다. 물가 급등 등 경제 문제가 원인이지만 지하자금 색출과 같은 정치 목적으로도 활용됐다.
1953년 시행된 제2차 화폐개혁은 화폐단위를 원(圓)에서 `환'으로 변경하는 것이 골자였다. 2월15일 발표돼 17일 전격 시행됐다. 단 이틀 만에 원과 전(錢) 등 기존화폐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군비지출로 물가 상승 압력이 심각하게 커진 데 따른조치였다. 세수 부족으로 인한 재정 적자를 해결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교환 비율은 100원당 1환. 개혁 직전 최고가 지폐는 1천원권이었다. 앞면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초상, 뒷면은 파고다 공원 전경이었다. 이 돈은 10환권으로 교환됐다. 10환권의 앞면에는 남대문, 뒷면엔 해금강 총석정이 그려졌다.
새 화폐 가운데 최고액 지폐는 1천환권이었다. 크게 상승한 물가를 반영한 것이다. 화폐개혁 직전 1조1천367억원에 달했던 은행권 발행액은 개혁 2주 뒤 76억5천100만환으로 축소됐다.
경제사학자들은 제2차 화폐개혁이 시중의 과잉구매력을 흡수하고 경제부흥자금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성공한 개혁으로 평가한다.
1962년 원(元)에 통화단위 자리를 넘겨줄 때까지 Ə년 천하'에 그쳤지만 환의흔적은 지금도 있다.
가령 한국은행이 만든 동전이 처음 등장한 것은 '환'의 시기인 1959년 10월이었다. 무궁화가 그려진 10환, 거북선의 50환, 이승만의 100환이 발행됐다.
세종대왕 모습이 처음 화폐에 새겨진 것도 이 시기다. 당시 1천환권 앞면에 나타난 이승만이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하며 그 자리를 세종대왕이 차지했다.
환의 역사는 짧았다. 5.16 쿠데타 이후 집권한 군사정권은 1962년 6월 부정축재자의 지하자금을 양성화하려고 제3차 화폐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해 5월 처음 선 뵌, 저축통장을 든 모자(母子) 그림의 100환 지폐는 발행 26일 만에 사라졌다.
당시 교환비율은 10환당 1원(元). 3차 화폐개혁은 미비한 준비와 예기치 못한예금 동결조치 등으로 경제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지하자금 색출 역시 기대에 못미쳤다.
그러나 당시 정해진 '원' 체계는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진다. 그간 디노미네이션도 없었다. 3차 개혁 당시 최고액권 지폐는 500원이었다. 현재는 5만원으로정확히 100배가 됐다.
banghd@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