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신경영 20년> ① 삼성은 어떻게 변했나

입력 2013-05-29 07:01  

신경영 선언 이후 매출 13배·시가총액 44배↑삼성전자 '월드베스트' 제품 9개 중 8개 신경영선포 이후 등극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

5류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1993년 6월 7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밝힌 '신(新)경영'선언을 논할 때면 빼놓지 않고 인용되는 말이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곧 경영의 중심을 양(量)이 아닌 질(質)로 옮기는 것을 뜻했다. 질 위주의 경영으로 전환해야만 국제화, 복합화, 경쟁력 제고가 가능하며, 이를 바탕으로 21세기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신을 기반으로 삼성은 지난 20년간 변화와 혁신을 거듭했다. 그 결과 세계최대 브랜드 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Interbrand) 선정 글로벌 100대 브랜드 가운데 9위에 이름을 올릴 만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 수치로 보는 신경영 20년 성과 삼성의 연계매출은 1993년 29조원에서 2012년 380조원으로 13배 증가했고, 수출규모 역시 107억달러에서 1천572억달러로 15배 늘어났다.

시가총액은 1993년 7조6천억원에서 338조원로 44배 불어났으며, 전세계 고용 인원은 1993년 14만명에서 42만명으로 증가했다.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출시하는 제품은 신경영 선포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1등 자리를 꿰찼다.

역대 '월드베스트'로 꼽힌 삼성전자의 제품은 총 9개이며 이 가운데 8개가 신경영 선포 이후 각종 시장조사기관 집계 결과 1위에 올랐다.

점유율 기준 스마트폰(2012년·SA), 스마트카드 IC(2006년·ABI), 모바일 CMOS이미지센서(2010년·TSR)와 매출액 기준 TV(2006년·디스플레이서치), 모니터(2007년·IDC), 낸드플래시(2002년·아이서플라이), 모바일AP(2006년·SA) 등이 여기에해당된다.

D램은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하기 이전인 1992년 아이서플라이가 집계한 시장조사 결과에서 1위에 올랐다.

◇ 삼성 성장동력…반도체→휴대전화→? 삼성이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그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원동력은'변화'에 있다. 1등 자리에 오른 분야에 안주하지 않고 신성장 동력을 끊임없이 발굴해온 것이다.

이 회장은 경영진의 반대에도 1974년 개인재산을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그리고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하면서 반도체 강자로 등극했다.

이후 21년 동안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세계 시장에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은 채 휴대전화 시장 개척에 나섰다.

삼성이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든 것은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할 무렵이었다.

이때만 해도 미국 모토로라가 국내 휴대전화 시장을 점령하고 있을 때였다.

1994년 삼성은 야심 차게 첫 휴대전화를 출시했지만, 불량률이 11.8%에 달해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이에 이 회장은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불량 휴대전화 15만대를 소각하는 '화형식'을 진행하며 삼성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그해 8월 마침내 애니콜은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서는 쾌거를 기록했다.

이후 애니콜의 인기는 전 세계로 뻗어나갔으며 오늘날에는 갤럭시S와 갤럭시노트 시리즈 등 스마트폰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2년에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이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스틱스(SA) 보고서에서 1위 자리에 오르면서 14년간 1등을 놓치지 않은 노키아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2010년 이 회장은 삼성의 미래 먹을거리 사업으로 태양전지, 자동차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을 선정했지만, 어떤 분야가 삼성의 핵심신수종 사업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 기업문화도 끊임없이 혁신 이 회장은 삼성의 기업 문화에도 '메스'를 가감없이 가했다. 전 세계 시장에서일류 기업으로 인정받으려면 일하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회장이 신경영 선언 직후 가장 먼저 도입한 것이 바로 7시에 출근하고 4시에퇴근하는 ƍ·4제'였다. 일찍 퇴근해 자기개발에 시간을 쏟으라는 취지였다. 이 제도는 현실적으로 조기퇴근이 불가능하다는 회사 안팎의 지적에 따라 3년 뒤 폐지됐지만, 당시에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또 삼성은 1995년부터 3급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 학력 제한을 없앴다. 전 세계가 무한 경쟁 시대로 가는 상황에서 대학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실력이라는 이 회장의 판단에 바탕을 둔 것이다.

1995년 말에는 468명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임원 인사를 내면서 30대 부장,여성인력, 고졸, 장애인, 특수분야 전문인력 등을 과감히 임원으로 발탁해 '열린 인사'를 전격 시행하기도 했다.

아울러 삼성은 부문별 책임경영체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소사장제를 도입해 자율경영을 유도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국내에서 주목을 받기 전인 1994년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소명 아래 삼성사회봉사단을 발족했다.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회장의 철학에 따라 2002년에는 국가적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삼성장학재단을, 2013년에는 새 정부 정책에 맞춰 창조경제형 인재를키우고자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했다.

runran@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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