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서 삼성까지…"벌처펀드 안전지대 없다"

입력 2015-07-06 15:00  

'낮은 총수지분율·규제완화'로 국부유출 자초 논란

"무엇보다 2000년 이후 다수의 헤지 펀드가 한국 기업들을 난타했음에도 아직까지 배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뼈아프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삼성물산[000830]과 엘리엇 간 분쟁을 계기로 열린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최 토론회에서 국내 기업들이 잇따라 벌처펀드(vulture fund)의 먹잇감이 된데 대한 안타까움을 이같이 표현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타이거펀드의 SK텔레콤[017670] 공격을 시작으로 소버린자산운용, 헤르메스, 아이칸, 론스타 등 해외의 굵직한 벌처펀드들은 한 차례 이상 국내기업들을 공격 대상에 올렸다.

이들은 앞으로는 '글로벌 스탠더드', '투명 경영' 등을 내세우며 경영권에 간섭한 뒤 뒤로는 막대한 수익을 올린채 유유히 국내를 떠났다.

대주주의 낮은 지분율과 제한된 경영권 방어 수단, 과도한 규제 완화 등으로 해당 기업은 물론 기업에 투자한 소액주주들까지 국부 유출의 현장을 지켜봐야만 했던것이다.

◇ SK에서 삼성까지…"안전지대는 없다" 점진적 자본시장 개방을 추진하던 우리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울며겨자먹기'로 자본시장의 빗장을 풀었다.

외화 유입을 촉진해 환율 시장을 안정시키고 나아가 주식과 자본시장의 안정까지 꾀한다는 미명 아래 각종 규제가 철폐됐고 우리 기업은 본격적으로 해외 투기꾼들에게 노출되기 시작했다.

벌처펀드의 위험성은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헤지펀드인 타이거펀드가 1997∼2000년 국내 대표기업 중 하나인 SK텔레콤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에 간섭하면서부터 알려졌다.

타이거펀드는 1999년 4월 SK텔레콤 지분 6.6%를 확보해 다른 우호지분과 연합,주식 액면분할과 유상증자를 반대하는 SK텔레콤에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을가했다.

SK그룹과 계열사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등 부담을 떠안아야 했지만 이후 타이거펀드는 지분을 전량 매각해 6천300억원의 시세차익(전경련추산)을 보고 2000년 철수했다.

SK그룹은 몇년 뒤 또다시 벌처펀드의 공격에 직면한다.

지난 2003년 영국 소버린자산운용은 자회사인 크레스트증권을 통해 SK 지분 14.

99%를 사들여 1대 주주에 오른 뒤 경영진 교체를 주장하며 분쟁을 벌였다.

소버린은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 후보 추천과 정관 개정, 최태원 회장 퇴진 등을요구했다. 소액주주 및 노동조합과 접촉하고 헤르메스 등 외국계 주주들의 지지를구하는 등 우호지분 확보 노력도 벌였다.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주가가 상승하자 소버린은 단순투자 목적으로 지분보유목적을 변경한 뒤 2005년 7월 매각, 8천억원의 차익을 실현하고 철수했다.

2006년 미국의 큰 손인 칼 아이칸과 스틸파트너스는 KT&T 지분 6.6%를 확보하면서 경영권을 위협했다. 주가가 상승하자 1년만에 1천500억에 달하는 차익을 챙긴 뒤국내 시장에서 물러났다.

외환위기 이후 극심한 구조조정을 겪은 금융기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는 2003년 인수금액 1조3천834억원, 코메르츠방크와 수출입은행에 대한 콜옵션 행사에 7천715억원 등 2조1천549억원을 투자해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배당과 지분 매각을 통해 차곡차곡 투자금을 회수했다.

이후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3조8천억원에 넘기며 국내에서 철수, 무려 5조원에달하는 차익을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스타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차별적 조처를 하며 수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앞서 뉴브릿지캐피탈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제일은행을 5천억원에 사들여 2004년 1조6천500억원에 되팔아 230%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고 칼라일은 JP모건 사모펀드와 손잡고 한미은행을 인수하고 2004년에 씨티은행에 매각하면서 7천억원 이상의 차익을 거둔 바 있다.

영국계 투자회사인 BIH는 브릿지 증권을 인수해 2002∼2004년 4차례에 걸쳐 유상증자를 단행, 2천200억원의 투자자금 대부분을 회수했다.

삼성이 공격대상에 오른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엘리엇과 분쟁 중인 삼성물산은 지난 2004년에는 영국계 펀드인 헤르메스가 지분 5%를 사들인 뒤 우선주 소각을 요구하면서 경영권을 위협받았다.

당시 호주의 플래티넘 등 다른 외국계 기관투자가들이 가세하면서 20%를 밑돌던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1년 만에 46%까지 확대됐다.

삼성그룹은 최대주주인 삼성SDI[006400]를 앞세워 지분을 확충하고 연합세력을규합해 가까스로 방어에 성공했다.

헤르메스는 그해 말 '투자 이익 실현 차원'이라며 지분 전량을 매각해 대규모차익을 실현했고 불공정 거래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헤르메스는 최근 삼성물산-엘리엇 분쟁 진행 와중에 삼성정밀화학[004000]의 지분을 5% 넘께 확보했다고 밝히면서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 취약한 대주주 지분·규제완화가 공격 불러 이처럼 벌처펀드가 국내 대기업들을 공격 대상 리스트에 올리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들 기업의 대주주 내지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낮기 때문이다.

재벌닷컴이 최근 총수가 있는 자산 규모 상위 10대 그룹 소속 96개 상장사의 지분 보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외국인 보유 지분율이 총수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보유 지분(보통주 기준)을 웃도는 기업이 16개사에 달했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만 해도 이건희 회장 일가족과 계열사 등 총수 우호지분은 29.57%이지만 외국인 보유 지분은 51.82%에 달한다.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앞두고 엘리엇의 반대에 삼성물산은 총수와 계열사 등 우호지분이 19.63%로 외국인 보유 지분(33.08%)을 크게 밑돌고 있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국내 2위 기업집단인 현대기아차[000270] 그룹도 현대자동차[005380]와 현대모비스[012330], 기아차 등 핵심 계열사 3곳의 총수와 우호 지분보다 외국인 지분이 많다.

SK그룹은 중추인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000660], SK이노베이션[096770] 등 3개사의 외국인 지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외국계 자본 입장에서는 수면 아래서 기회를 넘보다가 기업 총수나 경영진의 성향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거나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돌변해 경영 간섭에 나서거나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자본시장은 이미 전면 개방돼 외국계 자본의 국내 유입과 유출은 자유롭다.

각종 규제 완화로 적대적 M&A를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데다 주식매매 차익에 대한 비과세, 감사 선임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의결권 3% 제한, 이사 중 사외이사 2분의 1 이상 선임 등 소액주주 및 투명경영을 내세우며 도입된 각종 제도로 경영권 방어 수단은 부족한 상황이다.

최준선 성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국제적 투자는불가피하하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우리 법률은 미국이나 일본 등이 다 인정하는차등의결권 제도나 포이즌필은 허락하지 않으면서도 감사 선임 시 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이상한 규정은 고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pdhis959@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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