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년' 최빈국 한국 일으킨 정주영 4대 업적은

입력 2015-11-21 10:00  

경부고속도 건설·자동차 독자 개발·현대조선소 건설·중동 진출'이봐, 해봤어?' 저자 박정웅 "그의 가장 큰 유산은 도전 정신"

"세계적으로 뛰어난 기업가들이 많이 거론된다.

그렇지만 각기 그들이 활동했던 시기와 경제·사회적 기반, 시장 등 환경 여건을 놓고 비교해 볼 때 열악하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긴 정주영 회장의 기업가로서 면모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빛나는 특성을 가진다." 경영학의 태두 피터 드러커 교수가 생전에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을 평가한 말이다. 그의 탄생이 오는 25일로 100주년을 맞는다.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아산 탄신 100주년 기념사업 위원회'가 각종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등 그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가 이어지고 그의 일대기를 재조명한 책 출간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 산업근대화의 주역', '위기의 승부사', '세기의 도전자', '불굴의 개척자' 등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모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그가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도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다.

한 세기 전인 1915년 11월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아버지 정봉식과 어머니 한성실 씨 사이에서 6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정주영 회장은 소판 돈 70원을 들고 가출해 맨주먹으로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구고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초를다졌다.

◇ '대동맥' 경부고속도로 건설 = 1968년 2월 착공해 2년5개월만인 1970년 5월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정주영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그는 공사가 시작되자미군 폐지프차를 개조해 만든 탑차를 타고 현장을 누볐다.

그는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인부들을 독려했고 터널 굴착시 수맥을 잘못 건드려 사고가 나자 직접 착암기를 뺏어 들고 앞장서는 혈기를 보였다고 한다.

현대건설[000720]을 필두로 16개 건설사가 참여한 경부고속도로 공사는 세계 고속도로 건설역사상 단위거리 대비 10분의 1 수준의 가장 저렴한 비용과 최단시일 완공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건설된 경부고속도로는 1970∼1980년대 그리고 그후 한국의 경제발전에역동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국가 대동맥 역할을 하게 된다.

◇ 자동차 독자모델 개발 = 정주영은 1967년 12월 현대차[005380]를 설립하면서미국의 포드를 합작 파트너로 삼았다. 하지만 6년 뒤 포드와 결별한 정주영은 1976년 1월 순수 국산 자동차 1호인 포니를 만들어냈다. 현대차가 세계자동차업체 중 16번째로 독자 모델을 개발한 회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1986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엑셀이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위업을 이뤄냈다. 엑셀은 불과 4개월만에 미국에서 5만2천400대가 판매됐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연간 800여만대의 차량을 생산하며 글로벌 순위 5위의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했다. 최근에는 '제네시스' 브랜드를 런칭하며 고급차 시장에 뛰어들어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 대형 유조선 2척 수주와 현대조선소 건설 = 정주영은 1971년 9월 사업계획서한장과 조선소 예정부지인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 한장만을 들고 유럽으로 날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돈을 빌리고 배를 지을 조선소도 없이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인 리바노스로부터 26만톤급 2척을 수주하는 거짓말 같은 일화를 만들어냈다.

그는 1972년 미포만에 현대조선소를 조성, 도크 1, 2호를 완공하고 수주한 대형유조선 2척을 건조해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현대중공업[009540]을 비롯한 '조선 빅3'가 최근 해양플랜트 납기 지연으로 거액의 손실을 보며 고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세계 1, 2, 3위를 휩쓸게된 토대는 정주영이 닦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열사의 땅' 중동에 건설 사업 진출 = 1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5배 이상 뛰어오른 1974년 말 정주영은 또하나의 승부수를 띄운다. "돈을 벌려면 세계의 돈이몰리는 곳으로 가야 돼"라며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동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당시 중동 건설 시장은 선진국들의 내로라하는 토목, 건설, 엔지니어링 회사들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정주영은 중동지역에서 어렵게 따낸 건설 프로젝트를 공기까지 단축하면서 척척 완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런 그의 도전 정신은 한국의 다른 건설업체들이 중동 건설시장에 뒤따라 뛰어들 수 있게 하는 다리를 놓은 셈이 됐다.

1976년에는 단일공사로서는 세계 최대였던 9억3천만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주베일 지역 항만공사를 따내 중동 진출의 꽃을 피웠다.

정주영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책 '이봐, 해봤어?'의 저자 박정웅 전 전경련 상무(현 메이텍 대표)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이나 중동 건설시장 진출, 조선 공업, 자동차 독자개발 등의 사업을 추진할 때 정 회장께서 예외없이 공통적으로 당면했던 상황은 '무모한 미친 짓'이라고 하는 냉대였다"며 "하지만 그는 특유의 집념과실천력으로 보란 듯이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이어 "정 회장이 주요 사업들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경제발전은 여러 면에서 대단히 다른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며 "그는 시련과 좌절로부터 희망과 기회를찾아내고 그로부터 에너지를 충전해 도약했던 한 시대의 초인이었다"고 강조했다.

박 전 상무는 "정 회장이 제일 좋아하는 말은 '무한한 상상력의 힘'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여러 업적보다도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그걸 철저하게 실천하는 도전 정신"이라고 말했다.

박 전 상무는 1977∼1987년 전경련 회장을 지낸 정주영 회장을 10여년간 가까이서 보좌했다.

freemong@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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