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맥퀸, 패션계의 별이 지다

입력 2014-07-09 00:12  

국내외 수많은 패셔니스타들의 목에 둘러져 있던 해골 스카프. 그 해골 스카프는 여전히 패셔니스타의 목에 둘러져있지만 더 이상 해골 스카프의 주인공 ‘알렉산더 맥퀸’을 만날 수가 없게 되었다.

영국의 천재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이 영국 현지시간 2월11일 런던의 자택에서 향년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패션계의 ‘앙팡테리블’로 불리우며 탄탄한 재단 실력을 바탕으로 파격적인 디자인과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잠잠했던 영국 패션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정확한 사인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2월3일 그의 트위터 페이지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 적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알렉산더 맥퀸은 1969년 런던의 한 달동네 이스트 앤 스트라드포드에서 택시 운전기사와 가정부의 아들로 3남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패션계에 발을 들여 놓은 뒤 92년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런칭했다. 영국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96년 11월 존 갈리아노의 후임으로 지방시를 맡게 되었다. 96년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그는 전통, 성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의 경계를 허물고 이를 낭만적인 섹시즘으로 강조한 파격적인 작품 성향으로 주목 받았다. 1994년 졸업 패션쇼의 모든 작품을 당시 영국 보그 편집장이었던 이사벨 블로우가 통째로 구매하면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이후 이사벨 블로우는 알렉산더 맥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절친한 친구가 되어 그가 영국 패션계의 거장이 되는 데에 일조하게 된다.

알렉산더 맥퀸은 고정된 뮤즈를 통해 영감을 얻기 보다 생활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속에서 영감을 얻어내어 작업하는 편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정교한 재단과 실용적인 스타일을 강조하는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는 50년대 에스프리와 오드리 헵번의 고전적인 우아함을 특징으로 하던 지방시에 현대성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특히 런웨이에서 재미있고 파격적인 연출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슴뿔이 등장한다든지 모델들이 폭행당한 듯 한 분장, 무대 자체가 물바다인 경우 핏속에 잠긴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등 전체적으로 어둡고 성적인 연출을 선호하였다.

그는 패션계의 지배적인 자리를 확보하며 동시에 런던패션에 활력을 되찾아 주었고 고전적인 파리의 패션계에도 생기를 불어넣었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레이블도 사라졌으면 좋겠다던 알렉산더 맥퀸. 그의 죽음 이후 알렉산더 맥퀸이 계속해서 지속될지, 사라지게 될지 가늠할 수 없지만 그가 구축했던 독자적인 패션세계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패션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될 것이다. (자료제공: 아이스타일24)

한경닷컴 bnt뉴스 이유경 기자 fashion@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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