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5) 인수봉 검악길 / 바위꾼의 사랑, 검악에서 꽃피우다

입력 2014-09-25 15:44  


인수봉을 오르는 바윗길 가운데 가장 어려운 길은 어디일까? 한국등산학교 총동창회 후원으로 월간 사람과 산에서 발행된 '인수선인의 바윗길'을 보면 한 마디짜리를 제외하고 최고난이도가 5.12급 이상으로는 거룡길(6마디 5.12b), 학교길A(3마디, 5.12a), 빌라길(6마디, 5.12a), 청죽길(3마디, 5.12a) 등이 인수봉 바윗길의 ‘지존’이라 할만하다.

물론 바윗길이란 수치가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또한 개인의 신체적 특징에 따라 난이도의 느낌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인 등반의 난이도를 평가하는데 아직까지 요세미티 등급체계를 뛰어 넘는 방식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길을 등반하고 나면 바위에 자신이 붙는다. 쉬운 길만 오르다가 어려운 길을 등반하는 것보다는 어려운 길을 오르다가 다소 쉬운 길을 만났을 때 등반이 한층 더 여유로와 지는 것이다.

손재식의 역작 '한국바위열전'에도 인수봉 등반의 난이도가 잘 나와 있다. 이 책에 나온 최고 난이도 5.11급 이상의 길들도 역시 만만한 길은 아니다. 등반은 자신의 실력에 맞는 길을 올라야 재미도 있고 등반실력도 느는 것이지 어려운 길을 오른다고 꼭 등반실력이 느는 것만도 아니다.

'한국바위열전'에 나온 어려운 길들은 앞서 나온 길들을 제외하고 교대길(7마디, 5.12a), 비원길(5.11b~c), 궁형길(4마디, 5.11b), 청맥길(6마디, 5.12), 학교B(5.11d), 검악A(5.11d), 에코길(5마디, 5.11d), 알핀로제스(3마디, 5.11c), 가로길(4마디, 5.11c), 늦바람(2마디, 5.11c), 환상열차(5.11d), 알프스(3마디, 5.12a)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오늘 갈 길은 검악A길이다.

검악A길은 인수남서면에 위치하고 있다. 인수남서면은 맨 왼쪽으로부터 가로길, 알핀로제스, 에코, 청죽, 블루마운틴, 검악A, 빌라의 순서로 바윗길이 나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벌써 알아차렸으리라. 인수봉 남서면에는 중상급의 클라이머들도 떨고 가는 짭짤한 바위길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검악길은 인수에서도 가장 어려운 축에 든다는 빌라길과 이웃해 있다. 인수봉 남서면에 서면 커다랗게 십자가 형태로 바위가 갈라진 모양이 보인다. 대수롭지 않게도 보이는 그 십자 크랙은 보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칼로 베인 상처같기도 하고 오랫동안 기억될 상징을 남겨 놓은 듯도 하며 편안하게 미끄럼을 탈 수 있는 미끄럼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루 전에도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던 터라 등반인원은 갑자기 네 명으로 줄어들었다. 오늘의 등반팀은 온 사이트 등반으로는 어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등반실력을 갖춘 손제성 대장과 기자 그리고 두 명의 주말 클라이머다.

서울시산악연맹 45주년 행사를 참관하고 나서야 뜨거워지는 아스팔트를 뒤로 하고 어프로치를 한다. 경찰 구조대 쉼터까지 가는데도 땀이 비오듯 한다. 계곡물에 잠시 흐르는 땀을 씻고 인수암을 지나 등반 출발점으로는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남서벽으로 향한다. 손제성 대장이 제일 좋아하는 '빈데길'을 찾기 위해서이다. 남면의 연습바위들인 '거듭 태어나기', '아직도생각중', '아가씨', '해우길' 등을 지나 남서면의 빌라길을 지났을 때에는 고작 1시간 이 조금 넘는 정도의 어프로치인데도 불구하고 장비의 무게와 가파른 길 때문에 이미 온몸은 땀에 젖어 있다.

등반 출발 시간은 정오경. 검악A길에는 이미 2인1조의 한 팀이 붙어 있었다. 앞 팀의 선등자는 올라가고 후등자는 빌레이를 보고 있다. 우리 팀은 천천히 장비를 착용하고 빵과 김밥으로 간단한 식사를 마쳤다. 원래 암벽등반에는 따로 식사시간이 없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등반중에는 편안하게 앉아서 식사를 할 장소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뒤따라오는 팀 때문에 여유 있게 앉아 지체를 할 시간이 없다.

앞 팀의 후등자가 드디어 빌레이를 해제하고 등반을 시작하는데 첫 마디 출발지점 왼쪽 바위에 걸린 퀵드로우를 잡고도 오른쪽 페이스를 올라가지 못해 여러 번 미끌어진다. 결국 과감하게 왼쪽 퀵드로우를 놓고 페이스를 올라붙나 싶었는데 결국 추락해서 몸이 한 바퀴나 돌고 말았다.

뒤에서 보니 30대나 되었을까?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데 첫 마디를 간신히 출발해서 끝내기까지 거의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결국 앞 팀은 첫 마디를 끝으로 두 명 모두 하강을 하고야 말았다. 뒤에서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막상 붙어보면 만만치 않은 것이 암벽이지만 너무 못 간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 대장이 선등하고 우리팀의 첫 후등자가 출발점에 섰다. 역시 앞 팀의 후등자와 똑 같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일까? 출발조차 안되는 상황이다. 출발하고도 계속 미끄러짐의 연속이다. 이유는 이렇다. 왼손으로 잡은 퀵드로우를 놓아야 균형을 잡고 미세한 홀드를 양 손의 손가락 힘으로 잡고 발로 디디며 일어서야 하는데 왼손으로 잡은 퀵드로우를 놓으면 아주 미세한 홀드를 잡지 못하고 체중에 밀리기 때문이다. 첫 마디 출발점의 난이도를 '인수선인의 바위길'에서는 5.9로, 한국바위열전에서는 자유등반으로 올랐을 때 5.10d로 잡고 있다. 

첫 마디 페이스 구간이 끝나면 다시 만만치 않은 볼트따기 구간과 만난다. 볼트 위로 발을 올려놓고 만세를 부르며 몸이 완전히 서야 윗 볼트로 올라설 수 있다. 인공구간임에도 난이도는 5.11d.

첫 마디를 끝내고 숨 돌리기가 무섭게 두 번째 마디. 좌향크랙으로 팔과 어깨를 오른쪽 커다란 크랙을 비비며 올라서든지 아니면 과감하게 몸을 왼쪽으로 완전히 내보내서 슬랩으로 오르던지 둘 중의 하나를 택일해야 한다.

난이도는 5.8에 불과하지만 자일이 바위 오른쪽 볼트를 통과하기 때문에 '텐'이 먹히지 않는 구간이고 심리적인 압박 때문에 등반이 쉽지만은 않다. 둘째 마디가 끝나기 전에 우리 팀의 한 명이 완등하지 못하고 하강을 하고야 만다. 첫째 마디가 키가 큰 사람에게 유리한 구간이라면 둘째 마디는 키가 작아도 슬랩을 잘 오르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을 지 모르지만 바위길은 이렇게 공평한 것이다. 누구에게 더 유리하고 불리하고가 없다. 자신의 핸디캡만 뛰어넘을 뿐.


셋째 마디. 십자 검법의 오른쪽 칼자국을 횡단하는 트래버스 구간이다. 선등자라면 크게 어렵지 않은 구간이지만 가로로 횡단하는 구간이고 아래는 그야말로 직벽이기 때문에 추락의 부담이 엄습한다. 말번은 퀵드로우를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선등자만큼의 주의가 필요하다.
셋째 마디를 건너다보면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과연 누가 이 십자 크랙을 가로질러 등반하는 계획을 세웠고 또 개척하게 되었을까?

역시 사랑의 힘은 놀랍다. 등반후에 알게 된 사실은 검악A길이 바위를 하다 한 떨기 국화꽃이 된 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길이라는 것이었다. "저 멋진 십자길로 등반을 하면 좋겠다"는 숨진 애인의 바램을 현실화시킨 길이다. 이 길을 개척하는 데에는 자그마치 1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얼떨결에 셋째 마디부터 말번을 맡은 기자는 트래버스 구간을 거의 다 건너가서 셋째 마디 마지막 볼트에서 약 2미터의 추락을 경험한다. 오른손으로는 퀵드로우를 잡고 왼손으로 왼쪽 퀵드로우를 회수한 다음 왼쪽 볼트에 걸린 자기확보 잠금비너를 빼는 순간, 몸의 무게 중심이 아래로 쏠리면서 그만 오른손으로 잡은 퀵드로우를 놓쳐버린 것이었다.

2미터 추락의 짧은 순간, 빌레이어가 확보를 보고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라인홀트 메스너의 책 <죽음의 지대>가 떠올랐다. 알피니스트가 추락할 때 그들은 무엇을 겪게 될까? 이 책을 읽기 전에 추락하는 등반자는 무척 고통스러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추락하는 당사자는 무척 편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고 오히려 이를 바라보는 사람이 더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메스너는 이 책에서 많은 산악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사실을 밝히고 있다. 추락은 단지 짧은 등반의 과정일 뿐이다.

셋째 마디를 마치면 마지막 넷째 마디는 난이도 5.6의 쉬운 구간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넷째 마디를 끝내고 크로니길을 통해 인수봉 정상으로 가기도 하지만 사실 검악길은 넷째마디로 등반이 끝이 난다. 앞 팀이 없이 등반을 시작했을 경우 등반소요시간은 약 4시간 전후, 물론 등반자의 실력에 따라 시간은 단축되거나 늘어날 것이다.

수유리 120번 버스종점 건너편에는 맛있는 손만두로 유명한 풍성식당이 있다. 뒤풀이를 위해 이곳에 들어서면서 원로 산악인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을 만났다. 항상 현역인 그가 등산학교에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등반의 목적은 첫째도 안전, 둘째는 안전, 셋째도 안전입니다” 안전이 그 어떠한 등반의 덕목보다 우선한다는 의미다. 오은선도 “살아 돌아오는 등반이 가장 성공한 등반”이라고 했지 않은가.

사람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다. 추락의 공포만 생각난다면 어느 누구도 등반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추락은 찰라이며 등반의 일부분일 뿐이다. 검악길 등반을 힘들게 끝내고 차디찬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면서 “빌라길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새로운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한경닷컴 bnt뉴스 김성률 기자 kimgmp@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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