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6) 인수봉 의대길 / 히포크라테스의 돌잔치

입력 2014-09-25 15:47  


[김성률 기자] 그리움 둘, 별 따는 소년, 한편의 시, 몽유도원도, 어느 등반가의 꿈, 이륙공천… 비교적 최근에 개척된 리지길들의 시적인 낭만이 넘치는 이름들이다. 시인 신동엽 리지도 있듯이 바위꾼들은 하나같이 시인의 자질을 갖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시인과 클라이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생각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이라면 고통을 즐길 줄 알고 창의적이며 항상 새로움을 찾는다는 것이 아닐까?

시를 창작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 똑같은 시란 존재하지 않는다. 수 백, 수천 아니 수만의 시어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시를 만들어내는 시작(詩作)은 그래서 출산의 고통에 비유되기도 한다.

오름짓 역시 고통이라면 고통의 연속이다. 손과 발이 까지고 찢어지는 일이 무시로 일어나는, 조금은 자학적인(?) 취미생활이다. 그러나 시인은 한 편의 시가 완성되었을 때 희열을 느끼고 클라이머는 고통스런 한 마디 한 마디를 끝내고 어려운 코스를 완등 했을 때 최고의 기쁨을 누린다. 전혀 이질적인 두 가지의 조합이 공통점을 찾는 순간이다.

인수봉에는 의대길이라는 바윗길이 있다. 아주 유명하고 인기가 있어서 인수봉 의대길을 모른다면 그는 아직 클라이머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의대길을 처음 등반하게 되면 바위 고참들은 흔히 “의과대학에 입학한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의과대학과 바윗길, 이 두 개의 개체는 연관성이나 조합을 쉽게 이루기 힘들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희고 긴 가운을 입은 채 섬세하고 하얀 손으로 두꺼운 의학서적을 한 장씩 넘겨 가며 읽는 의과대학생의 모습은 바로 옆에서 거친 호흡이 들려오듯 남성다움의 극치를 달리는 듯한 클라이밍과 전혀 이질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인 것을 어쩌랴. 인수봉 의대길은 1978년 8월 서울대학교 의대 본과 4학년인 이남규, 오규철과 예과 2학년인 최대식, 이병달 등이 만들어 낸 길이다.  


의대길은 인수봉 동면에 위치하고 있다. 위로는 독특한 귀바위를 두고 멋지게 생긴 미남자의 코를 닮아 있다. 그것은 요철이 뚜렷하다는 말이다. 바로 왼쪽의 궁형길도 그 옆의 인덕길도 다시 그 옆의 인수A도 오른쪽의 취나드B 길도 모두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의대길의 출발지점은 클라이머들이 ‘오아시스’라고 부르는 대슬랩 가운데 수목지대다. 인수봉 동면에서 이곳까지는 두 번의 피치 등반을 통해 오른다. 대개의 경우 여기에 배낭을 벗어두고 물과 간식이 든 어택 배낭을 메고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한다.

커다란 책 두 권을 겹쳐 놓은 듯이 보이는 좌향크랙길을 지나서 마디를 한번 끊고 빌레이로 후등자를 올린 다음 완만한 슬랩길을 올라서면 이곳이 바로 바위꾼들이 말하는 인수봉 오아시스다.

강파르게 솟은 바위를 손가락과 발가락 끝의 힘을 이용하여 내가 가진 힘의 100퍼센트를  동원해야만 오를 수 있는 암벽등반을 생각하면 이곳은 가히 오아시스라 할만하다. 누가 이름 붙였는지 모르지만 특별한 확보가 없어도 안전하고 여름에는 그늘이 있으며 겨울에는 바람도 잠잠해지는 이곳은 오아시스가 아닌 다른 말을 찾아보기 힘들다.

첫 마디 출발점에 서면 의대길의 전경이 거의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첫눈에 크랙길 처럼 보이는 첫 마디와 미끄러움이 생각보다 심한 둘째 마디의 쌍크랙, 키가 작은 클라이머에게 다소 불리한 셋째 마디 볼트따기 구간 그리고 페이스 등반이 이어지는 넷째 구간까지가 바라다 보이고 좌측 위로는 귀바위의 왼쪽 귀가 올려다 보인다. 

첫 마디는 난이도 5.8의 25미터 슬랩길이다. 출발지점의 좌향크랙을 잡고 일어나서 포인트가 확실한 지점을 딛고 일어나 이동하면 중간 지점까지 수월하게 다다르게 되고 이어서 슬랩성 바위를 타고 오르면 확보지점이다.


둘째 마디 약 20미터의 크랙 구간은 의대길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5.10a의 크랙구간이다. 일별하기에 썩 만만해 보이는 이 크랙구간은 그러나 그렇게 수월하지만은 않다. 생각보다 발이 미끄러워 슬립을 먹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 구간은 경험자가 훨씬 유리하다. 재밍기술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밍이 바로 이 구간의 포인트인데 크랙에 두 발을 넣었다 빼는 약간의 등반기술이 필요하다.

둘째 마디가 의대길의 꽃이요 크럭스다. 귀바위에서 흘러내린 멋진 코의 가장 높은 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에 전망도 좋고 마음에 들 정도의 고도감도 좋다. 둘째 마디를 등반하고 좌우 방향과 아래쪽을 바라다보면 시원하고도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둘째 마디를 힘써 오르는 등반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에도 썩 좋은 위치이기도 하다.

셋째 마디는 인공등반 구간으로 볼트가 연이어서 다섯 개 박혀 있다. 넷째 볼트와 다섯째 볼트의 간격이 넓기 때문에 넷째 볼트를 밟고 확실하게 일어서야, 즉 ‘만세를 불러야’ 다섯째 볼트에 퀵 드로우를 걸 수 있다. 키가 큰 클라이머는 오른 손으로 아래쪽 퀵 드로우를 잡고 왼손으로 다섯째 볼트에 퀵 드로우를 바로 걸기도 한다. 검악길 인공등반처럼 난이도가 센 구간에 대비해서 볼트따기 연습을 하기에도 좋은 구간이다.

난이도 5.6의 20미터 크랙길인 다섯째 마디는 일종의 서비스 구간이라고나 할까? 경사도는 높지만 홀드가 좋아서 초급자도 무난하게 오를 수 있는 코스다. 오른쪽의 날등을 오른 손으로 잡고 오르면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다섯째 마디가 끝나면 귀바위가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왼쪽 궁형길로 올라온 등반자들과 만나게 되어서 조금 번잡할 수도 있다. 여섯째 마디는 귀바위를 올라가는 구간이다. 5.10a의 난이도를 갖고 있는 이 구간은 처음 바위를 잡고 슬랩으로 올라서기까지가 가장 힘이 든다. 홀드를 신경 써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귀바위에 올라선 다음에도 간혹 선등자가 슬립을 먹는 등 주의가 필요하다.

귀바위 정상에서는 인수 A코스 넷째 마디 종료지점으로 하강하여 인수봉 정상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기자는 잠시 사방으로 확 트인 전망을 즐기며 이곳을 힘들게 올랐을 개척자들을 생각해 본다. 의술의 길을 선택하고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외웠을 의학도들. 백면서생의 그들은 잠을 자기에도 부족하고 바쁜 일과생활을 쪼개고 또 쪼개서 이 길을 개척하고 또 행복하게 올랐으리라.

의대길을 하강하면서 크랙을 잡고 또 볼트따기를 하면서 열심히 오름짓을 하고 있는 크라이머들을 마주치게 된다. 그들의 얼굴에서 어떤 어려운 길이라도 오르겠다는, 오름짓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읽힌다. 어디선가 히포크라테스의 음성이 들리는 듯도 하다.

"여보게들 산과 바위에게 감사하게. 산우들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고 말이지. 자일 파트너를 형제처럼 생각하는 일도 결코 잊지 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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