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7) 인수봉 심우길 / 바위길에 대한 예의

입력 2014-09-25 15:49  


[김성률 기자] 한낮의 더위가 30도를 넘나드는 8월 한 여름. 이렇게 무더울 때에는 수목이 우거지고 고도가 높아 시원한 설악이나 바닷바람 시원한 해벽, 그것도 아니라면 등반도 하고 물놀이도 할 수 있는 물가의 암장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7월초부터 4주째 주말에는 비가 계속 내리고 지방으로 계획된 바위길 탐방은 취소가 되기 일쑤였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 나선 바위길은 다시 인수봉이다.

대한민국 클라이머들의 요람인 인수봉에는 모두 89개의 바위길이 있다. 이 많은 길들은 다시 다섯 개 정도의 구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인수동면, 인수남동면, 인수남면, 인수남서면, 인수서면이 그것이다.

심우길은 그중에서도 인수동면, 인수봉 동쪽 끝에 위치한 길이다. 인수봉의 본격적인 등용문 격인 심우길은 인수봉의 인기코스인 취나드A 길의 바로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모두 네 마디로 이루어진 심우길은 크랙과 슬랩, 인공구간인 볼트따기 등이 골고루 섞여있어 종합적인 등반의 능력을 점검해 볼 수 있는 길이다.

심우길의 개척자는 시민산악회로 알려져 있지만 개척자가 누구인지 또 개척연도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등반거리는 총 99미터이며 최고난이도는 첫 마디 크랙구간이 5.10a로 구분된다. 중급자 2인 1조를 기준으로 약 3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이지만 결코 만만치만은 않은 길이기에 초중급자로 구성된 4인 1조라면 첫 마디에서 완등까지 약 5시간은 잡아야 한다.

심우길 취재를 위해서 하람산악회의 송기승 대장을 따라 나섰다. 송 대장은 오랜 등반경험에 지속적인 암장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등반실력이 탁월하다. 무엇보다 안전등반을 모토로 하고 있어 신뢰가 가는 분이다. 송대장은 평소 인수봉 빌라길을 포함해 난이도가 높은 길들을 즐겨 찾지만 이날은 특별히 쉬운(?) 코스인 심우길로 방향을 잡았다.

2010년 8월1일 하늘은 잔뜩 구름을 머금고 있어 소나기가 한번 쏟아질지 다소 걱정이 되는 가운데 도선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하늘재에 도착하니 이미 셔츠는 땀으로 젖어 옷을 입은채로 빨래를 한듯하다. 119구조대를 끼고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서 푸른샘터를 지나 능선을 하나 넘어서면 어프로치가 끝난다. 도선사에서 약 한 시간 거리.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첫 마디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쉬운 리지길을 하나 넘어서야 한다. 안전을 위해서는 여기서부터 등반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 몸이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자일이 든 배낭을 메고 이끼가 살아 미끄러운 크랙을 올라가다보면 자칫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반에서 사고는 항상 쉽다고 생각되는 길에서 일어나지 않던가.


심우길 첫 마디에 서면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등반선이 보이지 않고 출발지점이 바위로 꽉 막혀있기 때문이다. 오른쪽으로 커다랗게 뚫린 크랙에 몸을 반쯤 집어넣고 오르면 그때부터 홀드가 잡히기 시작한다. 첫 마디의 난이도는 5.6. 첫 마디를 지나면 심우길의 크럭스라고 할 수 있는 둘째 마디가 기다리고 있다. 13미터의 좌향크랙. 난이도는 5.10a 정도로 구분되지만 발끼우기(foot jamming)기술이 없는 클라이머라면 당황하기 쉽다. 끼우기 기술이 웬만큼 숙달되지 않은 주말 클라이머라면 사전에 기본적인 연습을 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른발을 크랙에 집어넣어 끼우는 것이 포인트. 오른 발 끼우기를 두 어 번 한 다음 마지막 약간의 벙어리성 홀드는 턱걸이하듯 빠르게 잡고 나가면 둘째 마디도 돌파된다. 이때에도 오른 발을 한두 번 크랙에 넣어 끼우기를 하면서 밸런스를 잘 잡아주어야 한다. 둘째 마디를 끝내고 빌레이를 보고 있노라면 심우길 둘째 마디를 통과하는 클라이머들의 '신음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심우길의 왼쪽 낮은 길은 취나드A이고 다시 그 옆길은 직벽 크랙이 돋보이는 벗길이다. 삼형제처럼 모여 있는 이 세 개의 길들은 다른 팀의 등반자가 등반하는 모습을 구경하기에도 좋다. 더러는 서로 응원을 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나름대로 등반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어려움을 다소나마 덜어주려는 바위꾼들만의 특징이다.

심우길 둘째 마디에서 빌레이를 보다가 왼쪽 벗길 둘째마디를 어렵게 오르는 여성 등반자가 눈에 띄었다. 아니 굳이 눈에 띄었다기 보다는 과감한 '애낳는 소리(?)'에 놀라서 쳐다보게 되었다. 물론 클라이머들이 붙인 말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힘이 들기에 '애낳는 소리'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후등을 하는 이 등반자는 자일에 푸르지크 매듭을 지어 안전벨트에 연결한 다음 매듭을 왼손으로 올리고 다시 내 몸을 올리는 주마링 등반을 하고 있었다. 벗길의 둘째 마디는 5.10d급의 직상슬랩이니 욕이 튀어나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일지 모른다.

다소 고통을 느끼며 둘째 마디를 끝내면 셋째 마디는 비교적 수월한 크랙구간이다. 가파르게 서있는 확보점에서 가운데로 똑바로 하늘을 보고 있는 크랙에 역시 오른발로 끼우기를 하고 올라서면 좋은 홀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30미터의 거리에 난이도는 5.7.

셋째 마디를 마치면 이제 마지막 넷째 마디가 남아있다. 넷째 마디 출발점에서 바라본 등반구간은 다소 만만해 보이는 인공구간, 즉 볼트따기 구간이다. 그러나 과연 정말 그럴까?


심우길 넷째 마디 볼트따기는 교대길 등에 비해서 볼트의 거리가 멀다. 더군다나 볼트들은 오른쪽 위방향으로 부메랑이 날아가듯 박혀있어 볼트 위에 발을 올려놓고 일어서도 위에 걸린 볼트나 퀵드로우는 손에 잘 닿지 않는다. 초급자는 바늘땀을 따듯 힘겹게 하나하나 올라 서야한다. 볼트따기 경험이 전혀 없이 이 구간을 통과하기란 숨 막히는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심우길 넷째마디는 볼트따기 구간으로는 긴 편이어서 31미터에 이른다.

기자는 인공구간인 넷째마디에서 등반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능력의 한계를 체험해야만 했다. 핑계이긴 하지만 전날 야근에 새벽까지 이어진 음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다가 거리가 멀고 굽어져있는 볼트들. 게다가 처음으로 말번을 맡아 퀵드로우를 회수하자니 부끄럽게도 확보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넷째 마디를 완등하고 나니 열심히 빌레이를 봐주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의 하람산악회 신영만 님이 고생했다며 위로를 해준다. 신영만 님은 지구과학 교사인데 뒤늦게 바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주말이면 어김없이 바위길로 나서는 분이다. 바위길을 가는 등반도 일종의 과학의 결실인데 전공분야를 몸으로 체험하는 분이라는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넷째 마디 등반을 끝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주목들은 바위꾼들이 거칠게 호흡하는 각박한 환경에서 어찌 살아남았을까? 하강을 할 때 듬직한 나무가 눈에 뜨이면 슬링을 걸고 하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바위길의 나무들은 수 없이 도태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2003년 4월 청죽산악회에서 5킬로그램짜리 철구조물 일곱 개와 약 1톤에 가까운 흙을 가져다 이곳에 든든한 주목의 방책을 쌓았다고 한다. 물론 구조물 없이 주목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겠으나 이만한 정성라면 진정한 바위꾼들의 바위길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 없다.

하강 포인트에서 인수봉 주변을 바라본다. 비가 올 듯 울먹울먹하던 날씨는 짙은 안개만 흩뿌린 채 아무런 말이 없다. 심우길에서 미진했던 등반의 아쉬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회복해야할까? 그것은 아무래도 취나드A나 벗길에서 찾아야할 것 같은데 그곳 역시 만만치만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랴. 다음 등반에는 또 다른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무더웠던 여름날, 자일을 몸에 메고 바위와 진한 포옹을 하며 한 말의 땀을 흘린 보람은 완등의 기쁨으로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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