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12) 인수봉 아미동길 / 젊은 알피니스트를 부르는 행복한 바윗길

입력 2014-09-25 15:53  


[김성률 기자] 암벽등반을 하기에 3월달은 아직 이른 시기다. 벌써 한낮의 도심은 완연한 봄이 온 것 같지만 그렇게 높다고 할 수 없는 삼각산 계곡에는 아직도 잔설이 남아있고 얼음이 쌓여있다.

하지만 산꾼이 어찌 계절 탓을 하고 날씨 탓을 하랴. 주일 낮기온이 영상 15도나 된다는 말을 듣고 부푼 기대를 안고 하루재를 오른다. 올 들어 처음 찾는 인수봉. 도선사 주차장부터 모처럼 화창한 날씨에 산행을 즐기려는 등산객들로 길이 심심치 않다.

사실 이날은 본격적인 첫 등반이어서 특별히 어느 길을 오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일행은  대슬랩에 이르러 바윗길이 괜찮아 보이는 아미동길을 선택하고 등반준비를 한다.

일반적으로 아미동길의 출발지점은 인수B코스의 왼쪽 크랙을 타고 시작하여 작은 오아시스를 지나가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원래 아미동길의 정확한 출발지점은 대슬랩에서 왼쪽으로 약 50미터 떨어져있는 곳에 위치한 5.10급의 만만치 않은 크랙이다. 그러나 역시 자주 가지 않는 길은 잊혀지고 자주 가는 길이 새로운 길이 되는 것일까? 대슬랩에서 오르는 길은 아미동길의 신루트가 되다시피 했다.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최근에 제작한 인수봉 루트 안내판을 보면 첫째마디가 40미터의 반침니, 크랙 구간(난이도 표시 없음)이며 둘째마디가 30미터의 슬랩(난이도 표시 없음), 셋째마디가 20미터의 슬랩과 크랙으로 이루어졌으며 5.6의 난이도를 매겼다. 넷째 마디가 30미터의 크랙구간으로 난이도 5.8이다. 다섯째마디가 가장 높은 난이도의 5.10a슬랩길이다. 여섯째 마디는 40미터의 크랙과 슬랩구간이며 일곱째 마디가 40미터의 슬랩구간(난이도 표시 없음)이다.


인수대슬랩 생공사길 바로 왼쪽길에서 등반을 시작한다. 왼쪽으로 누운 크랙을 잡고 어렵지 않게 한발 한발 내딛는다. 바위가 다소 차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만져보는 바위의 느낌은 약간 싸~하면서 감촉이 좋다. 바위결은 변함없이 살아있다. 어렵지 않은 크랙길이지만 긴 겨울잠에 막 깨어난 클라이머들은 움직임이 조심스럽다. 앞 팀에서 먼저 가는 선등자가 "첫등반이라 쫄린다"며 지레 엄살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의 첫 등반은 설레이기도 하지만 떨리기도 한다. 아직 몸이 안 풀렸기 때문이고 슬랩과 크랙의 등반감각이 아직 되살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반을 하다 보니 아미동길은 등반 내내 툭 트여져 시원한 시야가 보장되고 빌레이를 보는 장소도 대부분 아늑해서 개척자가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바윗길이다. 아미동길은 어떤 연유로 붙여진 이름일까?

혹자는 누에나방의 눈썹이라는, 가늘고 길게 굽어진 여인의 눈썹처럼 난 길이 모인 길이어서 아미동(洞)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하기도 하고 혹자는 육군의 영문명인 아미(ARMY)처럼 씩씩하게 쭉쭉 위로 올라가는 길이어서 아미동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1973년, 지금으로부터 무려 38년 전에 개척된 아미동길 이름의 유래는 그러나 알고 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아카데미산악회에서 등반대장인 이동일이 주축이 되어 개척하였다는 의미로 아카데미의 맨 앞 글자와 뒷글자인 '아미'와 이동일의 가운데 자인 '동'이 합쳐져서 생겨진 이름이다.

개척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니 ‘ARMY동’ 길이라 불러도 크게 잘못된 이름은 아닐 것이다. 아미동길 개척길에는 산악계의 큰 어른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의 동생인 이용민도 함께 힘을 보탰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의 이용민은 힘이 좋기로도 유명했는데 개척기간중 선인봉으로 등반을 갔다가 추락사했다. 자일 두동을 매고 자유등반으로 박쥐길을 오르다 실수를 한 것이었다. 훗날 세계적인 클라이머가 될 수도 있었을 젊은 알피니스트의 어이없는 사고였다.


넷째 마디에 이르러 왼쪽으로 가늘게 뻗어 오른 실크랙과 오른쪽으로 굵고 뚜렷한 인수b의 크랙길이 펼쳐진다. 첫출발 때에는 크랙을 잡고 버티면서 일어서야 하고 발재밍을 이용해서 올라붙은 다음 레이백 자세를 취하면서 올라가는 것이 포인트.

아미동길의 크럭스이자 하이라이트는 단연 다섯째 마디의 슬랩길이다. 5.10a 정도의 난이도인데도 몸이 굳어서일까 만만치 않은 고도감 때문일까 후등인데도 두 번씩이나 짧은 슬랩을 먹고 힘겹게 오른다. 연습부족을 탓하기 보다는 “첫등반이니까~”스스로를 달래본다.

골프 라운딩을 할 때 앞, 뒤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간제약을 받지 않고 널널하게 치는 골프를 일명 ‘대통령 골프’라고 부르는데 굳이 비유하자면 ‘대통령 등반’을 했다고 해야 할까? 아직 매서운 3월의 추위가 걱정되었는지 아직 알피니스트들이 찾지 않은 인수봉에서 모처럼 마음 편한 등반을 하는 호사를 다 누려본다. 

이처럼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에 정상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아미동길을 끝내고 참기름 바위를 거쳐 인수 정상으로 향한다. 참기름 바위 앞에서는 아직 차가워 보이는 바위를 피해 고독길을 거쳐 이곳까지 온 등반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참기름 바위에는 손이 닿을만한 위치에 잡기 좋게끔 닥터링이 되어있다.


닥터링(doctoring)은 등반루트중에 자연적인 홀드가 없는 경우 인위적으로 바위면에 홈을 파서 홀드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세계적인 등반사조는 크린 클라이밍을 지향하기 때문에 바위에 인위적인 조작을 하거나 필요이상의 볼트를 박는 일을 삼가고 있다. 아무래도 참기름 바위의 닥터링은 초심자들을 위한 배려로 읽혀지지만 그보다는 바위에 대한 경험을 더 많이 쌓고 안전등반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받고 오르는 것이 바윗길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마지막 인수에 오른 것이 벌써 지난해 10월. 그리고 보니 반 년 만에 다시 오른 인수봉 정상이다. 암벽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인수정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또 오르고 싶다고 해서 언제든지 마음대로 올라 설 수는 없는 곳이 바로 이곳 인수 정상이다.

아미동길은 젊은 클라이머들이 의기투합해서 개척한 길이다. 그래서인지 바윗길에서 그들의 푸릇한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다. 원숙한 맛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간결하고 깔끔한, 높은 테크닉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정상까지는 만만치 않은 끈기를 필요로 하는, 거침없이 정상으로 올라가고픈 젊음의 희망을 담은 풋풋한 바윗길이다.

젊은 알피니스트들이여 아미동길을 올라라. 그리고 38년 전에 이곳에 길을 만든 개척자들의 마음을 한번쯤 헤아려보며 마음 속의 호연지기를 마음껏 펼쳐 보아라. 세상이 잠시 그대들을 속일지라도 세상은 온통 그대들의 것일 지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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