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14) 인수봉 하늘길 / 거친 호흡과 오름짓, 하늘을 향해 쏴라

입력 2014-09-25 15:57  


[김성률 기자] 4월의 첫 번째 주일. 기온은 지난주와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북한산 도선사 주차장의 분위기는 지난주와 큰 차이가 있었다. 등산객들이 크게 불어나 있었고 자일을 둘러맨 클라이머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뜨인다. 하루재 지나 인수봉을 바라다보니 벌써 바위꾼들이 많이 붙어있다. 4월, 그렇구나. 이제 본격적인 암벽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이날 등반할 바윗길은 하늘길이다. 하늘길이라는 이름의 바윗길은 여럿이다. 인수봉에도 선인봉에도 그리고 관악산에도 있다. 이 세 개의 하늘길은 각각 위치는 다르지만 난이도는 모두 만만치 많다. (인수봉 하늘길 : 5.10c, 선인봉 하늘길 : 5.11b, 관악산 하늘길 : 5.10급)

선인봉 하늘길도 그렇지만 인수봉 하늘길도 힘을 많이 써야 하는 크랙길이 있기 때문에 일명 '노가다길'로도 불리며 슬랩에 강한 여성보다는 완력이 있는 남성에게 어울리는 남성적인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산구조대 못미처 비둘기샘에서 찬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 인수 남면으로 올라선다. 인기 있는 짬뽕길과 여정길에서는 오늘도 변함없이 등반연습을 하는 클라이머들로 부산하다.

하늘길은 인수 남면 거룡길의 오른쪽, 동양길의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하늘길은 힘이 드는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인수봉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인기 있는 바윗길이라고 한다. 인수봉 하늘길은 1969년 9월 우정산악회의 박창규, 장경린, 강영택 회원 등이 참여하여 개척한 바윗길이다.


첫째 마디는 크랙구간이다. 마치 갈지자 또는 알파벳 Z자의 연속처럼 보이는 길은 처음 출발해서 서너 발자국 걸어가는 길은 밑에서 보기에 무척 쉬워보였지만 막상 붙어보니 좌향크랙에 오른 손이 잡힐 때 까지 다소 무게 중심이 흔들리면서 바위 밑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온다. 실제로 하늘길 첫째마디 초입에서 추락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나만 그런 걸까? 난이도 5.8도 안 되는 길을 가는데 밑에서 잡아다니는 짜릿한 느낌이 온다. 오른발을 앞으로 쭉 뻗고 무릎을 최대한 굽히고선 오른팔을 쭉 내밀어 간신히 크랙을 잡는다.

등반자에 따라 자신만의 강점이 나타나는 길이 있다. 가령 여성은 슬랩, 남성은 크랙길이다. 선등실력이 안 되는 초중급자에게는 그래도 잡히는 구석이 있는 크랙이 더 수월하다.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크랙은 슬랩보다 손에 잡히는 면적이 많다. "어떻게 비비면서 올라가면 되겠지"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또아리를 튼다.

좌향크랙을 잡고 올라가는데 발이 조금 미끄러지기는 하지만 손 홀드는 무척 좋다. 5.10a의 첫째 마디와 약간 난이도가 높은 둘째마디는 크랙연습구간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둘째 마디 역시 수직에 가까운 좌향크랙이다. 손과 발을 적절히 사용해야 하고 왼발을 밖으로 빼내서 밸런스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두 발을 다 크랙 사이에 집어넣으면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은 상식. 첫째 마디보다도 발이 더 잘 미끄러진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발을 적절히 벌려 지지력을 이용해야 한다. 둘째 마디는 거의 다 올라서도 홀드가 마땅치 않아 약간 애를 먹었다.


인수선인의 바윗길(월간 사람과 산 발행)을 보면 하늘길은 모두 일곱 마디로 이루어져 있고 최고난이도는 마지막 일곱째 마디의 5.10d. 확보장비로는 퀵드로 10개와 소형과 중형의 캠이 필요하다.

첫째 마디는 23미터, 난이도 5.10a의 크랙구간이다. 둘째 마디 역시 17m, 5.10c의 크랙구간. 셋째 마디는 26미터, 난이도 5.9 구간. 넷째 마디는 30미터, 난이도 5.8의 슬랩구간. 다섯째 마디는 5.10b의 페이스 구간이고 여섯째 마디는 난이도 5.8의 크랙구간이다. 그리고 마지막 마디인 일곱째 마디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5.10c의 구간으로 거리는 20미터다.

반면 손재식의 한국바위열전(마운틴 북스 발행)을 보면 첫째 마디와 둘째 마디의 난이도를 5.10a의 같은 난이도로 두었고 다섯째 마디와 일곱째 마디의 난이도를 5.10c로 보았다.

경험을 통한 기자의 주관으로 본다면 둘째 마디의 난이도가 첫째 마디보다 어려운 것으로 보아 둘째 마디의 난이도는 5.10b~5.10c가 맞지 않을까 생각된다.

셋째 마디는 크랙과 슬랩이 혼합되어 있는 난이도 5.9의 비교적 수월한 구간이다. 셋째 마디 등반이 끝나면 넷째 마디로 가기 위해서 우측으로 트래버스를 하며 횡단해야 한다. 이때 동양길과 교차하며 동양길 넷째마디 확보지점과 만나게 된다. 트래버스를 완료하면 이번에는 크로니길 여섯째 마디 종료지점이다.

기자는 이곳에 확보를 하면서 후등자 빌레이를 보고 있던 산악인 윤대표 씨를 만났다. 흰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모습에 선글라스를 끼어서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독특한 그의 말투가 바로 그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코오롱등산학교 암벽반에서 강사와 학생으로 만난 기자는 같은 반이 아니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거니와 그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만 이내 그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윤대표. 1952년생. 1978년 토왕골 선녀봉 악우길 초등, 1979년 아이거북벽 등정, 1980년 마터호른과 그랑드조라스 북벽 등정, 1992년 인수봉 늦바람(5.11a) 초등 그리고 2007년 융프라우, 브레방, 에귀디미디 남동벽, 차마그란데 북벽 등정, 2008년 마터호른, 에귀디미디 북벽, 드류 북벽 등정…

그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한국의 산악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알프스 3대북벽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등정한 알프스의 사나이이자 1980년대 자유등반의 선봉장으로 이름을 날릴 만큼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클라이머이기도 하다.

윤대표 씨는 하늘길의 루트를 묻는 우리 일행에게 마치 주머니 속에 있는 물건을 꺼내듯이 "칸데 우측길로 올라가면 낡은 볼트가 하나 있고 또 그곳을 지나 왼쪽으로 마지막 마디가 또 우측으로 가면 인수정상으로 걸어가는 길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명성과는 달리 차분하고 친절한 것이 그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다. 나중에 코오롱등산학교 서형찬 강사에게 들은 바로는 윤대표 씨가 등반을 처음 배울 당시만 해도 헬멧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모자를 쓰고 등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퀵드로가 거꾸로 걸려있다는 윤대표 씨의 말에 퀵드로를 바로 걸며 작별인사를 하고 넷째 마디를 출발한다. 넷째마디는 길이 30미터 난이도 5.8의 슬랩구간이다. 큰 어려움 없이 슬랩길을 밟는 기분이 모처럼 유쾌하다.


이제 단지 두 개의 마디만이 남았다. 게다가 여섯째 마디는 모처럼 푸근해 보이는 크랙길, 좌우가 막혀있어서 안정감이 있는 길이다. 이곳에서 잠시 떡과 물로 요기를 한다. 사실 워킹산행과 달리 암벽등반에서는 따로 식사시간이 없다. 때문에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놓고 막걸리 한잔 하면서 식사시간을 즐긴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또 등반중에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가장 위험도가 높은 하강이 끝나기 전까지는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잠시 쉴 수 있는 시간, 약간은 편한 장소에서 자신이 준비한 음식을 간단히 먹는 것이 클라이머의 일상적인 식사다.

푸근한 여섯째 마디를 모두 오르니 이제 마지막 마디가 남아있다는 안도감도 잠시, 일곱째 마디의 모양새가 마음을 긴장시킨다. 완전히 왼쪽으로 이동해서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오른쪽 아래에 있는 홈에 오른발을 집어넣은 다음 슬랩을 타고 올라야 하는 구간이다. 난이도 5.10c. 그러나 긴장감도 잠깐이다. 앞서 등반하는 등반자의 실루엣이 역광에 비추어 아름답다. 글쎄 단지 회색의 바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햇빛에 비쳐 반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일곱째 마디는 출발이 힘들뿐 몇 걸음 애를 써서 오르면 이내 난이도는 떨어지고 빌레이어가 자일을 감는 속도보다 빨리 마지막 볼트까지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드디어 인수봉 정상. 마지막 볼트에서 바람이 세지 않은 오른쪽 방면에서는 등반자들이 나란히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고 왼쪽 하강코스에서는 등반교육을 받은 일행들이 줄을 서서 하강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두 번째 인수정상. 등반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 시계는 오후 4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하강포인트의 바람은 거세져서 4월초의 날씨가 한겨울 못지않다. 체감온도는 영하 5도 이하는 되지 않을까 싶다.

힘들게 올랐으니 이제는 내려가야만 한다. 하늘을 뚫고 오른 인수봉 하늘길. 그 하늘을 향해 내 몸을 쏘아 올렸으니 내 몸은 이제 편안하게 지상으로 안착할 것이다. 차디찬 강풍을 뚫고 하강을 시작한다. 이제 하강을 하면 언제 다시 인수봉을 오를까. 클라이머라면 인수봉 정상은 언제고 오를 수 있지만 반면에 또 어느 때고 오를 수 있는 곳만은 아닌 곳이기도 하다.
 
하강을 하는 중에도 찬바람이 얼굴에 부딪쳐 이가 덜덜 떨려온다. 힘들고 고생스러운 이 등반길에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는 걸까? ‘도전과 응전’ 속에서 참 자아를 발견하는 것일까? 그 와중에 마음속으로는 벌써 다음 등반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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