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25) 노적봉 경원대길 / 너는 아느냐 이 길을 낸 클라이머의 뜻을

입력 2014-09-25 16:11  


[김성률 기자] 기자가 처음 암벽등반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벌써 여러 해 전 산악잡지에 소개된 설악산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릿지등반 기사였다. 아기자기 아름답다고까지 할 수 있는 암릉을 남성들은 물론이고 젊은 여성들도 웃으며 오르는 것을 보고 “저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결정적인 동기는 기자가 히말라야에 두 달간 머무르면서 단독 트레킹을 할 때 찾아왔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을 하고 하산을 하는데 저 멀리 봉우리 세 개가 연이어 서있는 ‘촛대봉’이 나타났다. 약간은 기이하면서도 신비하게 보이는 봉우리였다. 지나가는 트레커에게 물어보니 그 산의 이름은 아마다블람이었다.

카투만두 타멜거리로 돌아와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옥상 정원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 셀파족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까 곧 뉴질랜드원정대와 아마다블람을 등반할 고소가이드였다. 마침 잘됐다싶어 “나도 같이 갈 수 있느냐?”고 물으니 뉴질랜드팀의 양해를 얻으면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진전되면서 기자는 꿈을 접어야만 했다. 등반을 전혀 할 줄 모르면 아마다블람을 오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다블람에는 옐로우타워와 그레이트 타워라는 두 개의 직벽이 있다. 난이도는 5.9인데 빙벽과 암벽이 혼합된 믹스등반을 해야 한다.

인수와 선인의 바윗길에서도 5.9의 난이도는 결코 깔 볼 것이 못된다. 쟁쟁한 암벽등반가들이 5.9와 5.10급의 바윗길에서 추락하여 사망하거나 커다란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거의 맨몸으로 등반하다시피하는 인수, 선인과 해발 6,812미터의 고산등반은 서로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동상을 방지하기 위한 이중화에 크램폰을 착용하고 방한복을 입어 뒤뚱거리는 몸에 아이스바일과 크램폰에 의지해 등반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심한 몸살을 앓는 듯한 고소증세도 함께 이겨내야 한다.


아마다블람 등반을 포기한 기자는 귀국하여 그해 등산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아직 아마다블람 등정은 하지 못했지만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떠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노적봉 경원대길 등반기에 앞서 아마다블람까지 에둘러온 것은 이번 기사가 그동안의 기사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노적봉 경원대길을 기자가 선등하기로 한 것이다. 선등자가 느끼는 감정은 후등자와 분명히 다르며 바윗길을 더욱 자세히 보고 기억해 낼 수 있고 긴장된 마음을 갖게 된다. 그 느낌을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북한산 노적봉은 인수와 선인을 즐기는 클라이머들이 자주 찾는 곳은 아니지만 조용한 분위기에다가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워 교육등반과 가을등반지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노적봉에는 약 20여개의 바윗길이 있다.

가장 많은 등반이 이루어지는 노적봉 중앙벽에는 오아시스의 미인, 광클사랑A.B, 님은 먼곳에, 아미고스, 경원대, 하늘, Fun Rock, 8년만의 만남, 부활의 꿈, 빨대, 불장난길이 있다.

이중에서도 불장난길(5.9)은 초급 클라이머에게, 경원대길(5.10a)은 중급 클라이머들에게, 그리고 하늘길과 빨대길은 중상급 클라이머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길이다. 최근에는 불장난길 둘째 마디 크럭스 완료지점에서 빌레이 실수로 인한 추락사고가 있었다. 하늘길은 첫째 마디가 5.10a, 둘째 마디 5.11a, 셋째 마디 5.8 넷째 마디 5.9 다섯째 마디 5.11b/A0 여섯째 마디 5.8 일곱째 마디 5.9의 난이도이다. 이중에서 둘째 마디가 단연 크럭스가 되겠다. 5.11a에 슬랩이어서 힘과 기술이 없으면 결코 선등할 수 없다. 

노적봉 서벽에는 최근에 산과바위산악회에서 여러 개의 등반루트를 개척했다. 즉 나비처럼 (5.10b), 노적갈매기(5.10a), 마징가와 방망이길(마방길 / 5.11a), 웨딩마치길(5.10d)이 그것이다. 산과바위산악회에는 이밖에도 60미터 단피치의 희망길(5.10a)도 개척했다.


오늘 우리가 오를 길은 경원대길이다. 노적봉을 오르려면 우선 북한산성입구에서 등산로를 따라 노적사까지 진입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클라이머들은 산성 안에 위치한 식당차를 타고 노적사 가까이까지 어프로치를 대신해주기도 했지만 이제 그런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노적사에서는 사찰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이 지키고 있는 길목을 지나 능선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계속 올라가면 뫼우리길과 반도길이 있는 벽이 나오므로 주의해야 한다.

‘경원대릿지’로도 불리는 경원대길은 중앙벽의 가장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거리가 280미터에 달하며 주로 페이스와 슬랩으로 이루어진 바윗길이다.

출발에 앞서 경원대길의 난이도를 한번 살펴보자. 첫째마디는 거리 20미터 난이도 5.5의 쉬운 사선크랙이다. 둘째 마디는 난이도 5.9의 35미터 거리의 페이스 구간이다. 셋째 마디는 난이도 5.10a에 거리 35미터의 페이스 구간이며 넷째 마디는 난이도 5.7 거리 25미터의 페이스 구간 다섯째 마디는 난이도 5.10a의 짧은 크랙과 슬랩 그리고 역시 짧은 오버행을  넘어서는 인공등반 구간이다. 여섯째 마디는 물길 자국 오른쪽으로 오르는 슬랩과 좁은 테라스 그리고 짧은 크랙을 오르는 난이도 5.7의 쉬운 구간이다. 일곱째 마디는 난이도 5.7 거리 30미터의 슬랩구간이며 마지막 여덟째 마디는 난이도 5.7 거리 45미터의 슬랩구간으로 여덟째 마디 등반을 마치면 드디어 노적봉 정상으로 사방이 탁 트여진 장쾌한 북한산의 전경을 만날 수 있다.

드디어 두 손에 초크를 묻히고 심호흡을 한 뒤 첫째 마디를 출발한다. 예전에는 첫째 마디 사선크랙 중간부분에 프렌드를 설치하고 올랐다는데 최근 중간 지점에 볼트가 설치되어 있어 편하게 퀵드로우를 하나 걸고 첫째 마디 등반을 마친다. 첫째 마디 종료지점에는 확보물인 쌍볼트가 없다. 슬링줄을 나무에 걸고 확보를 하고 빌레이를 보아야 한다.

둘째 마디는 수직으로 솟은 바위를 넘어서야 하는데 마지막 홀드가 잘 잡히지 않는다. 손으로 홀드를 잘 찾아 꽉 붙들고 몸을 위로 올려붙여야 한다. 이 부분이 처음 만나는 고비인데 홀드가 쉽게 찾아지지 않으니 다소 당황하게 되고 서두르게 된다. 시간이 지체되어 힘이 빠지면 결국에는 추락을 하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아무래도 선등의 부담이라고 할 것이다. 마침내 홀드를 찾아 양 손으로 움켜쥐고 몸을 올리니 다시 짧은 슬랩이 나온다. 슬랩에서도 발디딤 한곳이 편치 않은 곳이 있는데 과감히 딛고 일어서면 등반을 마칠 수 있다.

셋째 마디는 경원대길을 통털어서 가장 난이도가 센 곳에 속한다. 출발지점은 인공등반 구간이다. 혹자는 첫 볼트만 인공구간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네 개 모두가 인공등반 구간이라고도 한다. 어차피 크럭스는 인공등반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다행히 손가락 끝의 반 마디 정도가 잡히는 작은 누룽지들이 바위에 붙어 있어 이것을 붙잡고 몸을 의지해야 한다.

페이스 중간에서 잠깐 길을 잃는다. 어차피 내려갈 수는 없기 때문에 추락을 하더라도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셋째 마디 홀드에는 분명히 길이 있다. 중간 지점에서 가던 방향으로 직상하면 추락 할 수도 있다. 홀드를 잘 찾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오르면 셋째 마디도 잘 마칠 수 있다. 남성 클라이머들은 대체로 슬랩등반이 약하기 때문에 5.10a 정도의 페이스 등반은 결코 쉽다고는 할 수 없다.


넷째 마디는 쉬어가는 구간이다. 쉬운 만큼 볼트의 간격은 그만큼 멀다. 발디딤에 주의하면서 볼트를 따라 오르니 또 하나의 크럭스 구간으로 불리는 다섯째 마디가 바라다 보인다. 다섯째 마디는 경사가 심한 페이스 구간인데 세 번째와 네 번째 볼트 사이에서 균형잡기가 어렵다고 되어 있다. 역시 그랬다. 손에 확실히 잡히는 홀드가 없고 오른쪽의 크랙을 이용해서 몸을 올린 다음에 왼쪽에 다소 거리가 있는 홀드를 잡아 몸을 올려야 한다. 루트 파인딩을 하고 두 어 번의 망설임 끝에 크럭스를 통과한다.

그러나 긴장이 풀려서일까?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슬링줄이 있는 곳보다 약 5미터는 왼쪽으로 올라왔다. 클라이밍 다운을 하기에는 경사가 심하다. 부득이 살 떨리는 트레버스를 하는데 이미 마지막 볼트에서 5미터 이상은 올라왔기 때문에 추락을 하게 되면 추락거리가 만만치 않다. 몸을 세워 벽을 붙잡고는 조심조심 트레버스를 하여 간신히 슬링줄을 잡았다. 크럭스를 통과할 때보다도 더 긴장된 순간이었다. 쌍볼트에 확보를 하고 나니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

물길 오른쪽으로 오르는 슬랩구간인 여섯째 마디를 마치니 이제 남은 마디는 단 두 개. 난이도 5.7의 쉬운 슬랩등반인데 앞팀에는 여섯 명의 초보 등반자들이 길을 막고 있다. 등반시간이 느려도 너무 느리다. 등반시간도 넉넉지 않아 아쉽게도 노적봉 완등은 다음 기회로 미루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노적봉 여섯 마디를 선등으로 올랐다는 것이 무척 큰 보람으로 다가온다.

여섯째 마디 확보지점에서 하강자를 만든다. 한쪽 자를 하강링에 통과시켜 고정시키고 다른 자와 연결한 다음 양쪽 줄을 퀵드로우에 연결하여 고정한 다음 매듭 아래부분을 하강방향으로 모두 내려뜨려 주면 된다. 자일을 던지면 오히려 엉키기 쉽기 때문에 내려뜨리는 것이 맞다. 정상에 올라가면 두 번의 60자 하강을 통해 하강하여 워킹으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여러 번의 60자 하강을 통해 등반 출발지점까지 돌아간다.

노적봉 경원대길은 1996년 경원대 산악부에 의해서 개척되었다. 김기섭 씨로 대표되는 경원대 산악부는 수 많은 클라이머들을 배출하고 새로운 바윗길, 아름다운 이름의 바윗길을 많이 내준 고마운 암벽팀이다. 노적봉 경원대길이 개척된지 십 여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인기 있는 바윗길로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등반선을 잘 살리고 등반자를 배려한 개척자들의 따뜻한 마음과 개척정신 덕분일 것이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노적봉. 임진왜란때 봉우리에 노적가리를 가득 쌓아 왜적들을 물리쳤다는 노적봉은 기자에게 풍성한 수확의 봉우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 프렌드(캠) : 암벽등반시 등반자의 추락을 막기 위해 크랙에 끼워 넣어 지지력을 얻는 확보물이다. 양쪽 날개가 바위면에 벌어지면서 지지력을 얻게 하며 등반자가 추락을 하더라도 설치한 프렌드 밑으로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렌드가 개발되면서 등반자의 등반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예전에는 오르지 못했던 오버행 구간을 프렌드를 설치하고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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