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급발진, 과학적 검증 두고 공방

입력 2013-06-20 10:14   수정 2013-06-20 10:14


 -급발진 연구회, "재현 검증 제조사의 몫"
 -자동차업계, "연구회 스스로 재현 검증 실패"

 자동차급발진연구회가 발표한 급발진 추정원인을 놓고 자동차업계가 반박하고 있다. 연구회가 원인으로 추정한 '압력 과다'의 재현이 불가능한 데다 대안으로 내놓은 '전자식 진공펌프(EVP)' 및 가속보다 제동페달 신호를 우선 받아들이는 '스마트 페달'을 장착한 차도 급발진이 보고돼서다. 또 급발진 조건 가운데 하나로 지목한 '제동이 잦은 교통환경'의 경우 한국보다 지·정체가 훨씬 심각한 나라가 많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압력 과다, 발생조건 놓고 갈등
 급발진연구회는 급발진 원인으로 추정되는 '압력 과다' 발생조건으로 정지, 크리핑(변속기가 'D' 모드일 때 가속 또는 제동 페달을 밟지 않은 상황에서의 주행), 일반 주행 등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조건보다는 공통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 조건 모두 '제동 페달을 밟고 있거나 또는 밟았다가 떼는 순간' 급발진이 일어났다는 것.

 연구회 김필수 교수는 "급발진이 일어나는 차종은 가솔린과 LPG 등 이른바 공기와 연료를 압축한 뒤 인위적으로 불을 붙여 폭발시키는 점화 방식의 엔진"이라며 "그 이유는 점화 방식의 차종은 제동력 증대에 필요한 진공을 엔진 안으로 들어가는 공기에서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디젤차는 "제동력 증가를 위해 엔진이 아닌 별도의 진공장치(진공펌프)에서 진공을 활용해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자동차업계는 이 같은 주장이 과학적 측면에서 벗어났다고 반박한다. 가솔린이 아닌 디젤에서도 급발진이 보고됐다는 주장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수입 디젤차에서도 급발진 의심 사고가 있었다"며 "점화 방식의 엔진에서만 일어난다는 주장은 명백한 오류"라고 말했다.

 연구회는 그러나 '압력 과다' 현상은 브레이크 진공호스를 엔진 흡기쪽에 연결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빈번하게 발생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연구회 김창용 이사는 "엔진으로 들어가는 진공관에서 제동력 증가에 필요한 힘을 얻어내는 배력장치는 1970년대 처음 사용했으며, 이 때부터 급발진이 보고됐다"며 "당시에도 승용차만 보고됐을 뿐 별도의 진공펌프가 있는 버스나 화물차는 급발진 보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연구회는 또 유럽산 수입차가 국내에서 급발진 사고를 보이는 건 제동 페달을 많이 쓰는 국내 교통상황과 연관이 있고, 상대적으로 한국과 일본차에 급발진이 많은 것도 제동력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제동력을 높이려면 엔진 흡기관에서 더 많은 진공압력을 가져와야 하고, 이 때 흡기관 내 진공압력이 떨어져 '압력 축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업계는 그러나 연구회의 주장에 허점이 많다는 입장이다. 먼저 유럽산 수입차가 국내에서만 급발진이 나타난다는 건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진공압력이 아무리 낮아도 공기가 빨려들어오는 힘으로만 스로틀 밸브를 100% 개방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스로틀 밸브를 개방해도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동차는 출력을 제한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엔진은 가속 페달을 밟아 스로틀 밸브가 열리면 ECU가 감지해 그 만큼의 연료를 분사하는 순서로 작동한다"며 "가속 페달 신호없이 스로틀 밸브가 열리면 고장으로 인식한다"고 밝혔다.






  연구회는 이에 대해 "스로틀 밸브가 열리는 건 압력 과다에 따른 강제 개방이고, 이 때 ECU가 스로틀 개방을 정상으로 인식해 연료를 분사하는 오류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자동차업계는 반면 "연료분사는 세 가지 신호 중 하나만 없어도 보호모드로 들어가고, 각각의 신호도 두 가지를 교차 검증해 작동한다"며 "연구회 주장대로 ECU가 오류를 일으킨다면 동일 차종에서 모두 나타나야 한다"고 맞받았다. 

 ▲급발진 재현, 가능한가-연구회, 자체 재현 검증은 실패
 또 한 가지 갈등은 급발진 현상의 재현이다. 연구회는 원인 추정에 따라 내부적인 재현 검증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연구회 관계자는 "한 달동안 재현을 시도했지만 급발진 현상을 인위적으로 만들지는 못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재현에 따른 검증은 제조사의 몫으로 넘겼다. 김필수 교수는 "이번 발표는 미진한 게 사실이지만 중요한 건 추정 원인을 갖고 다양한 실험을 해보자는 것"이라며 "실험은 자동차제조사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는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원인을 제기한 후 제조사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국민대학교 자동차공학과 조용석 교수는 "실험은 공학계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며 "급발진의 존재 여부가 여전히 논란인 상황에서 재현에 따른 검증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실험이 불가능한 가설은 말 그대로 가설일 뿐인데, 가설은 과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연구회가 대안으로 제시한 브레이크 진공펌프도 논란거리다. 흡기쪽 진공이 브레이크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과도 압력'이 발생, 급발진 원인으로 추정되는 만큼 흡기에서 가져오는 진공 대신 별도의 진공장치를 부착해 활용하면 된다는 게 연구회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논란이 됐던 서해안고속도로 급발진의 경우 연구회가 대안으로 제시한 진공펌프가 적용돼 있었고, 브레이크 신호를 우선하는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시스템'도 장착됐었다는 점에서 연구회의 추정 원인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 평가다.

 ▲논란의 진일보, 향후 숙제는?
 '과도 압력'으로 추정된 급발진 원인은 비단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모든 제조사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하지만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선 여전히 여러 가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로틀 밸브의 케이블 꼬임, 전자파, 변속기 오작동 등 지속적인 문제를 제기했으나 모두 재현 검증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김필수 교수는 이에 대해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제시한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학계에선 현상이 있더라도 재현 검증이 되지 않으면 객관적 요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만큼 이번 원인 추정도 여러 급발진 주장 가운데 하나로 끝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 자동차 급발진, 원인으로 '제동장치 압력 이상 추정'
▶ 국토부, "자동차 급발진, 결함 확인 안돼"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