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라진 사브(SAAB)의 흔적을 찾아서①

입력 2015-04-16 09:38   수정 2015-04-20 07:16


 'Svenska Aeroplan Actie Bolaget'. 번역하면 '스웨덴항공회사'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름이 너무 길어 이니셜만 가져와 '사브(SAAB)'로 불렀다. 물론 훗날 '사브'는 항공기와 전혀 관계가 없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자동차회사가 됐지만 적어도 사브(SAAB)라는 이름에는 항공회사로 출발한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이제는 흔적만 남은 사브, 여전히 적지 않은 마니아가 존재하지만 역사에 묻혀가고 있다. 그래서 사브의 역사를 총 4회에 걸쳐 자세하게 살펴보려 한다<편집자>.

 지인 중 유독히 사브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원래 자동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사브만 보면 어쩔 줄 몰라하는 그야말로 '마니아'다. 그렇다보니 그는 사브에 대한 칭찬과 가혹한 비평까지 가끔 경계선을 넘나든다. 새로운 사브 모델이 나올 때마다 호평과 혹평을 퍼부어 대며 애증을 느꼈던 인물이다. 그러나 항상 결론은 '사브, 꼭 갖고 싶은 차'라는 말로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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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0 style="BACKGROUND: #ffffff; TEXT-AUTOSPACE: ; mso-pagination: none; mso-padding-alt: 0pt 0pt 0pt 0pt"> ▲120년 전 궤도차 제작으로 시작
 사브는 원래 항공기 제작사로 1891년 북유럽의 조그만 나라 스웨덴에 살던 필립 베르센이  창업자다. 청년 기업가 필립은 당시 유럽 내 일고 있던 산업혁명으로 철로가 확장되는데 착안해 철도 궤도차를 만들기로 하고, '바비스(Vabis)'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필립의 예상은 적중했다. 다양한 산업적 발전의 토대를 만드느라 유럽 일대는 분주했고, 화물운반량은 늘어났지만 이를 실어 나를 열차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바비스는 이 때부터 10년 동안 궤도열차 1,740대를 만들어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일대에 판매하는데 성공을 거둔다.

 궤도열차 성공에 고무된 필립은 이후 자전거 제작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사람들의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만큼 좋은 것이 없던 시절이었고, 자동차는 값이 비싸서 대중교통 수단으로는 적절치 않았던 데 동기를 부여받은 셈이다. 역시 필립의 자전거 사업은 날로 확충되었다. 그러나 자전거사업은 곧이어 펼쳐지는 자동차 시대에 급격히 밀리며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 이 때 필립은 스웨덴 국내에 돌아다니는 미국 및 독일제 자동차들을 보면서 ‘자전거를 만들었으니 자동차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1901년 바비스는 승용차 한대와 트럭 한대를 실험용으로 제작했다. 그러나 바비스의 사정상 당시 승용차와 상용차를 모두 만들어 낼 여력은 없었다. 결국 바비스는 실험용으로 제작된 두 모델을 놓고 승용차보다는 상용차 제작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 자동차회사의 지사로 출발한 '스카니아(Scania)'라는 회사가 스웨덴 내에서 자동차 제작에 성공을 거두게 된다. 바비스의 자동차 제작이 있은 지 꼭 1년 뒤의 일이다.

 하지만 스웨덴의 상용차 시장은 두 회사 제품을 모두 소화해 내기엔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두 회사가 경쟁을 해봐야 득이 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양사는 소규모 시장을 두고 경쟁하기보다 차라리 하나가 돼 시장을 독점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 하고, 1911년 '바비스-스카니아 AB'라는 합병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바비스-스카니아는 트럭과 버스 생산에 주력, 스웨덴 상용차 시장을 휩쓸면서 사세를 확장시켜 나갔다.   






 바비스-스카니아가 버스와 트럭에만 손을 댄 또 다른 이유는 승용차의 경우 경쟁력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스웨덴은 대부분의 승용차를 독일과 미국에서 수입해 왔기에 굳이 승용차를 만들어 외국회사와 경쟁할 상황이 못된다는 판단이 앞선 것이다. 반면 상용차는 바비스-스카니아 외에 제대로 만들어 내는 회사가 없었고, 북유럽 특유의 기나긴 겨울과 열악한 도로사정을 보더라도 승용보다 상용 수요가 훨씬 많아 승용차 개발에 나서봐야 별다른 실익이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1차 대전의 행운, 2차 대전의 불운
 상용차 제작에 열을 올리던 바비스-스카니아가 항공기 분야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1차 대전이다.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6~1918년 사이 바비스-스카니아는 전투기 제작에 필요한 항공기 엔진 분야에 손을 댔다. 전쟁 중이라 전투기 엔진 주문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곳곳에서 들어왔고, 이에 스웨덴 공군이 주축이 돼 항공기 제작사를 설립했다. 이 때 주력기업으로 바비스-스카니아가 선정됐다. 때맞춰 6기통 110마력의 항공기 엔진 개발에 성공했고, 이들이 제작한 항공기 엔진은 연합군과 스웨덴 군대에 판매됐다. 이를 통해 바비스-스카니아는 명실상부한 항공기 엔진 제작사로 기틀을 다질 수 있었던 셈이다. 






 성장에 고무된 바비스-스카니아는 1937년 아예 주력사업을 항공기 엔진 제작으로 정하고, 회사명도 스웨덴항공제작회사인 '사브(SAAB AB)'로 바꾸고 대대적인 변신을 도모했다. 상용차보다 항공기 엔진 제작이 돈도 되고, 전쟁 중이라 수요도 급격하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공기제작사인 사브의 번창에 날개를 달아 준 일은 바로 2차 세계 대전이다. 1940년 사브는 독자모델인 Bl7 싱글 엔진 폭격기를 개발했고, 이를 전쟁중인 연합군과 스웨덴 공군에 팔아 회사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지게 된다. 게다가 B17 폭격기는 사브가 미국과 독일 항공기의 디자인은 벤치마킹했지만 엔진 등은 자체적으로 개발해 원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그만큼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수업체가 그렇듯 전쟁이 끝나면 방위산업의 위기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전쟁으로 지나치게 비대해진 사브는 전쟁이 끝나자 전투기 주문이 없어 항공기 판매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민간항공기를 만들어 내다 팔기도 했지만 수요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사업이 활황일 때 채용한 직원이 너무 많았던 데다 일거리는 줄어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고육지책 끝에 사브가 새롭게 진출한 분야는 바로 승용차 제작이다. 특히 사브는 항공기 제작 이전에 이미 상용차 제작 경험이 있었고, 전쟁이 끝나고 스웨덴 내 승용차 수요가 점차 늘어난 점을 주목했다. 따라서 항공기 제작 기술진과 기존에 보유한 상용차 제작 기술을 접목시키면 승용차 개발도 쉬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브의 4가지 원칙
 사브 경영진의 승용차 제작 대안은 성공적이었다. 승용차를 만들기로 결정한 뒤 불과 6개월만에 프로토타입이 완성됐다. 15명의 엔지니어가 6개월을 연구한 끝에 1947년 내놓은 사브의 첫 차는 '92' 모델이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지역적 특성 상 눈이 많은 점을 고려해 1936년 시트로앵이 '트락숑 아방'에 처음 적용했던 앞바퀴굴림 방식을 선택했고, 항공기 엔지니어가 만든 차답게 유선형의 스타일, 그리고 무엇보다 항공기로 착각할 정도의 놀라운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764㏄ 25마력 독일제 엔진을 사용했지만 엔진튜닝을 통해 소형차로선 시속 105㎞를 낼 정도로 성능이 뛰어났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브만의 4가지 원칙이 담겨져 있었다. 사브는 승용차 사업에 진출하며 유선형 스타일, 경량화, 앞바퀴굴림, 안전성 등 4가지를 기본원칙으로 정했다. 사브의 첫 모델 '92'는 이 같은 4가지 원칙이 그대로 담겨 있었던 셈이다. 우선 92의 스타일을 보면 유려한 해치백 라인이 돋보이며 라운드로 처리된 형상이 마치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있다. 사브로서는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에 기초를 둔 셈이다. 항공기를 만들면서 쌓인 공기역학만큼은 자신 있다는 사브만의 철학이 스며든 결과다. 물론 첫 모델과 지금 '9-5'의 모습은 다르지만 적어도 공기저항을 최소화한다는 기술적 철학은 변함 없이 계속됐던 것이다. 






 사브가 이처럼 독특한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15명의 초기 엔지니어들의 자유로운 발상이 배경이었다. 사브는 승용차를 만들 때 자동차 엔지니어를 전혀 투입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항공기 엔지니어들이 모여 자동차를 개발했는데, 이들 엔지니어들의 특징은 자동차를 보기만 했을 뿐 개발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사브는 주위에서 자동차 개발 엔지니어 없이 어떻게 자동차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우려 섞인 걱정을 뒤로하고, 이들의 무경험을 높이 샀다. 기존 자동차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로운 발상으로 마음껏 만들도록 배려했던 것이다. 이들은 운전석을 마치 항공기 조종석처럼 만들었고, 항공기가 이륙할 때 급가속이 필요한 것처럼 자동차의 초기 가속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또한 항공기에서 무척 중요하게 여겨지는 무게 배분에 신경을 썼다. '사브 92'를 두고 '가장 항공기에 가까운 자동차'라는 평가가 생겨난 배경이다.

 어쨌든 1947년에 등장한 사브의 첫 승용차 '92'는 1950년에 양산되며 시장에 출시됐다. 특히 '92'는 적절한 앞뒤 무게 배분에 따른 안정된 성능이 특징으로 꼽히며 유럽 일대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사브는 유럽 대륙에 92를 알리기 위해 1950년 몬테카를로 랠리에 출전,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유럽은 자동차의 본고장답게 자동차경주를 통해 좋은 성적을 거두면 판매는 물론 명차 대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사브 92는 출시 첫 해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며 이름을 유럽에 널리 알렸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나는 일화가 있다. 사브의 첫 차 '92'는 1950년 세상에 나올 당시 색상이 초록색에 한정됐다. 이를 두고 '사브의 캐릭터'이니 '무언가 철학이 숨어 있다느니' 하는 갖가지 소문이 나돌았으나 실제는 사브가 항공기를 만들 때 사용하던 색상이 초록색이었고, '92'를 만들 때 초록색이 많이 남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유력하다. 실제 '92' 출시 후 초록색이 모두 소진되자 곧이어 추가된 '92B'의 색상은 6가지로 늘었다. 그리고 '92'를 잇는 '92B'에는 다양한 기술이 접목돼 또 다른 주요 차종으로 등극했다(다음에 계속).

 권용주 선임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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