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여전히 ‘ing’, 배우 박재민의 추억 만들기

입력 2016-09-09 14:51  


[조원신 기자] 비보이, 방송인, 교수, 배우, 운동선수, 번역가, 엄친아. 하나의 타이틀로도 불리기 쉽지 않은 이 모든 것들은 모두 ‘연기자’ 박재민을 수식하는 단어이다. 특별한 기교나 꾸밈없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삶’이라는 레이스를 달려온 그를 만났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비보이이자 운동선수 출신의 VJ로 데뷔한 그는 이내 연기와 예능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신선한 이미지로 다양한 행보를 이어갔다. 유머러스한 입담과 전문 운동선수 못지않은 피지컬, 그리고 개성 있는 외모와 지성은 까다로운 입맛의 대중들에게도 제법 특별한 ‘레시피’였다.

그렇게 상승 가도를 타던 그에게 단 한 차례의 ‘오보’는 폭풍처럼 다가왔고 커다란 홍역을 앓은 그는 거짓말처럼 대중들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 그가 ‘배우 박재민’으로 다시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종전에 이어오던 행보에서 ‘배우’로서의 외길로 선회한 그. 그렇게 단단하게 자신을 제련해온 그와 bnt가 패션화보로 만났다. 남다른 프로포션으로 촬영을 매끄럽게 진행한 그는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간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진중하고 면밀하게 꺼내어보였다.

화보 촬영 소감은 어땠나요.

평소 bnt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지만 워낙 탑 스타들과의 작업이 많다보니 ‘과연 내가 bnt를 찍을 날이 올까’ 했었는데 드디어 bnt와 화보를 진행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워요. 또한 오늘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팀과 함께 한지 11년 정도 됐는데 현장에 같이 나온 게 처음이라 더욱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또 진행하는 작가님도 가장 친한 친구와 대학교 시절 유학 생활을 함께 했던 굉장히 막역한 사이라고 하더군요. 그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만났었거든요. 오늘 모든 면에서 유기적으로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가장 마음에 들었던 콘셉트

마지막 베이지 컬러의 슈트. 비보이, 운동선수 출신이라 옷을 막 입을 수밖에 없으니 때 탈만한 의상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또 평소 어두운 계열의 의상을 선호해서 오늘도 올 블랙으로 입고 왔거든요. 그래서 이런 화려한 색상의 옷은 오늘 처음 입어봤는데 정말 너무 마음에 들어요. 신발까지 컬러가 딱 들어맞고.

모델 활동을 따로 한 적은 없는지.

아르바이트로 잠깐 잠깐 패션디자인과 졸업전시회나 런웨이를 뛴 적은 있는데 전문 모델 활동을 했던 적은 없어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재민 씨를 모르는 분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자기소개를 할 때 항상 쓰는 멘트가 있어요.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연기자’ 박재민입니다.” 저는 ‘연기자’라는 개념 안에 많은 것들을 부여해요. 배우라는 직업은 드라마나 매체에서 ‘액팅(acting)’으로 국한될 수 있지만 ‘연기자’는 사람들 앞에서 기술을 시연하는 사람이잖아요. 그것이 예능이 될 수도 있고, 라디오 디제이가 될 수도 있고, 배우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어떤 그림 작품이 될 수도 있고,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아티스틱(artistic)한 감각을 대중들과 공유하며 기쁨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연기자’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예체능 쪽으로 두각을 나타낸 건 언제부터였는지.

초등학교 때 성악을 했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전문적으로 해서 그때 취입했던 음반이 서른 개 정도. 어린이 뮤지컬도 많이 했었고 방송에도 자주 나왔었죠. 저희 합창단이 전국대회를 휩쓸고 다녔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거든요. 제가 방송국에 처음으로 발 디뎠던 게 그때네요. 그래서 성악으로 예술중학교를 가려고 진학 준비를 했는데 시험 치는 시기에 변성기가 오면서 못 가게 됐어요.

그렇게 성악의 길을 뒤로 하고 14살이 되던 해에 우연히 AFKN(주한미군방송)에서 ‘비보이’라는 걸 처음 접했고 그걸 보면서 춤을 따라 추기 시작해 고3까지 비보이로 활동했어요. 그러다 영 신통치 않은 성적을 의심하던 부모님께 도서관 간다고 하고 연습실을 갔다가 딱 걸린 거죠.

당연히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저의 열정을 모른척하지 않으시고 한 가지 제안을 하셨죠. 학문적으로 어느 정도 위치에 진입하면 춤추는 거 마음대로 추게 해주겠다고. 그래서 저는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목표로 약속을 걸고 그때부터 완전히 춤추는 것을 그만두고 공부만 했어요. 수능까지 4개월이 남았었는데 한 달에 30점씩 120점이 올랐어요. 수능 직전에 모의고사 점수가 400점 만점에 380점까지 나오더니 결국 서울대에 입학했죠. 

농구 전공으로 입학을 한 뒤로 이번에는 완전 골수 운동 체육과가 됐어요. 서울대 운동선수로서 활동하면서 전국대회에서 입상도 많이 하고. 농구대잔치에서 준우승까지 했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어요. 겨울에는 스노우보드 선수로 활동했어요. 스노우보드 선수는 지금도 현역인데 전국 체전이라고 하는 대회에서 서울시대표로 뛰고 있어요.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대학교 입학 후 다시 비보이를 시작했는데 습관성 탈골이 심해진 거예요. 중환자실까지 가서 수술 받을 정도로 이런저런 사고를 당하게 되면서 비보이를 못하는 상황이 돼서 비보이 전문 MC를 아르바이트 식으로 틈틈이 하게 됐어요.

그 모습이 운 좋게 눈에 띄어 비보이를 소재로 한 케이블TV의 VJ로 발탁이 되기도 하고 비보이 소재의 영화나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2009년 졸업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외국에 유학가려고 시험을 다 치루고 유학가기 직전에 보니 이걸 그만두기가 너무 아쉬운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께 3년 안에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연예계 활동을 하고 자리를 못 잡으면 유학을 가겠다고 또 한 번의 약속을 했고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했는데 다행히 섹션TV에 발탁이 돼서 그때부터 인생이 변화하기 시작했죠. 정식으로 데뷔하면서 완전히 연예계에 올인을 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운이 좋았어요.

방송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않았나.

사실 방송 일은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어차피 사람들이 평가하는 거잖아요. 공부, 운동처럼 지금까지 제가 곧잘 잘 해왔던 일들은 내가 열심히 잘 하면 성적이 나왔어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방송은 자신이 노력한다고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이 따르는 직업이 아니거든요. 노력을 안 해도 성공할 수가 있고 노력을 엄청 해도 실패할 수가 있는 곳이 이 곳이기 때문에 성과가 내 노력이랑은 상관없거든요. 그래서 소속사가 아예 없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데뷔를 했기에 사실 여기 와서 상처도 많이 받았고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죠.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

오히려 그런 개념이 없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더 무식하게 시작을 했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연예인 분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게 아닐까 해요. 왜냐면 제 주변에도 핸드폰 개통 한 번 해본 적도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연예인의 삶을 살아온 친구들이 많은데 연예인으로서 실패했을 때 그 상처를 극복 못하더라고요. 근데 저 같은 경우는 그런 것 없이 진입을 했잖아요. 그래서 연예계에서 상처를 받는 대신에 실패를 해도 그에 따른 상처는 적은 편인 거 같아요. 삶에 대해서 다양한 경험들을 한 상황이었고 매니저 없이 활동을 오래 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생각이나 가치관이 조금은 다른 것 같아요.

저평가 받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해왔던 일들 중에 한 가지만 봐도 정말 잘 해왔다고 생각이 들고 그렇게 보일 수 있는데 연예계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 한 구석 때문에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처음에 저는 연예인으로서 준비가 잘 되어있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술, 담배도 안하고 클럽도 안다니고 여자를 밝히지 않아 관계가 복잡할 일도 없었고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대중들이 좋아하실 것이다’라는 생각을 데뷔 초기 때 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결국 선택은 대중들의 몫이지 제가 뭘 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가 않더라고요. 제가 대중들을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종의 자만심이었던 거죠. 제가 갖고 있는 매력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좋은 것들일지 몰라도 결국 그런 점에 대중들이 감동을 받지 않는다면 저는 연기자로서는 실패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아직까지 저평가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그건 철저히 제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대중들에게 감동을 드리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더 많은 발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언제까지 방송을 하고 싶은지.

계속 여기 있을 거예요. 계속 있으면서 대중들하고 호흡하고 싶어요, 저는.


현재 주력하는 활동은.

현재는 연기, 연기에 올인 하고 있어요. 근데 바뀔 수도 있겠죠. 언젠가는 저의 아티스틱한 이런 기능들이 예능이 될 수도 있고 그 모든 것들을 바탕으로 한 어떤 책이나 사진작가나 음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현재는 연기에 몰두하고 있어요.

연기를 처음 했던 건 언제 인가요.

2008년에 미국에서만 개봉을 했던 미국 영화가 사실 엄밀히 따지면 제 데뷔작이에요. 개봉을 2010년에 해서 데뷔작으로 꼽질 못하고 있네요. 국내에서는 2011년 ‘공주의 남자’에 출연했었죠. 근데 사실 그때까지는 연기보다는 MC가 제 주력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대중들이 MC로서의 박재민 보다는 배우로서의 박재민을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연기로 옮겨간 거죠.

그 미국 영화에는 어떤 계기로 출연하게 된 건지.

한국에서 로케를 한 최초의 미국 헐리웃 영화였거든요. 비보이 영화였기에 비보이를 할 줄 알고 연기와 영어가 되는 사람을 필요로 했었어요. 제가 미국에서 태어나서 6년을 살았고 평소에도 영어가 재밌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느 정도 능숙한 상태였어요. 그 조건이 충족돼서 캐스팅이 됐고 조폭 두목으로 나왔었어요.(웃음)

미국에선 흥행 했나요?

흥행을 하진 못했어요. 소니픽쳐스에서 투자를 받아 굉장히 기대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문제는 촬영 도중에 2008년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이 대대적인 부도사태가 나요. 주택 담보로 돈을 대출을 받았던 사람들이 주택이 거품이 꺼지면서 엄청난 사람들이 빚쟁이가 됐죠. 영화 ‘빅쇼트’에서 다뤄진 그 사건으로 인해 소니에서 돈을 전부 회수해가요. 그러면서 저희 영화가 영화관 개봉 후 바로 내리게 됐죠. DVD만 하나 건졌어요.(웃음)

그럼 영화 찍으면서 지원을 받지 못한 건가요?

출연료도 못 받았어요. 촬영 다하고 한국 제작사가 없어졌어요. 공중분해 돼서 스텝들은 소송 걸어서 받았다는데 저는 소속사도 없고 개인으로 들어갔으니까 출연료도 못 받았죠.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2013년 쯔음 계기가 될 만한 일이 있었어요. ‘짝 사건’이 있었거든요.

당시 여자 친구와 소원해져 헤어진 직후 ‘짝’ 연예인 특집을 찍게 됐어요. 촬영을 마치고 그 친구에게 ‘짝 프로그램을 찍고 왔는데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다시 만나보자’고 얘기했고 좋은 답변을 받았어요.

그 프로그램의 방송은 한 달 후였어요. 그 사이 제가 여자 친구를 다시 만나는 얘기를 기자였던 친한 친구에게 했어요. 그런데 친구가 결혼에 대해서 묻기에 장난스레 결혼 해야지~나이도 있는데 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어요. 근데 그 친구가 박재민 결혼한다고 특종을 써버린 거예요.

사실 친구가 기사화하겠다고 연락을 줬어요. 사실이 아니다, 이런 기사가 나가면 안된다고 얘기도 해봤지만 이미 기사를 넘겼다고 했어요. 소속사에서는 사실이 아니기도 하고 큰 뉴스거리가 될 거라는 생각도 안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말자고 했어요. 근데 ‘짝’이 방송에 나오자마자 그 기사를 배포해서 18시간 동안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를 할 정도로 파장이 컸어요.

지금까지도 인터넷에 제 이름을 치면 4년 전 짝 기사가 나와요. 그래서 그 이후로 소속사에서 계약 해지를 당하고 출연하던 예능 프로그램 다섯 개를 그 주에 잘렸어요. 오래했던 드림팀도 잘리고 예능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때 하고 싶었던 연기를 이 계기로 파보자 라고 생각하게 됐고 그때부터 연기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죠. 상처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고 생각해요.

오해를 해명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나요.

해명 기사를 내긴 했지만 경황없이 내다보니 그냥 묻혔죠. 사실 적극적으로 해명기사를 내기가 애매했던 게 기사 터질 당시에 그 친구를 만나고 있었거든요. 이 친구랑 나랑 서로 다시 힘들게 만나서 잘 해보자고 발전해나가는 과정이었는데 ‘여자 친구 없어요’, ‘쟤랑 아무사이 아니에요’, ‘결혼 안 해요 다 사실무근입니다’라고 하기엔 제 자존심이 허락 하지도 않았고 이 친구에게 상처가 될 거 같았던 거죠. 그래서 제가 안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구차해보이기도 했고 헤어졌다 다시 만난 상태였기 때문에 옆에 있는 친구가 상처 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렇게 지켜준다는 의미였는데 결과적으론 다 잃었죠.

이후 방송에서 틈틈이 사실이 아니다 이런 얘기는 했는데 대대적으로 얘기한 적도 없고 기회도 없다보니 아직도 제가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저는 지적을 받는 부분은 고쳐야 된다고 생각해서 리플을 다 보는 편인데 아직까지도 욕을 굉장히 살벌하게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근데 저는 감안해요. 오보인 건 맞지만 제가 실수했던 부분인 건 사실이니까요. 만약에 제가 진짜 결혼하게 되면 그때서는 얘기를 하려고요. 그때 사실 기사가 허위였고 제가 그때 해명할 기회가 없어서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다고요.

그래서 절로 들어가게 된 건지.

그게 시작이었죠. 지금도 절에 있어요. 4년차가 됐네요. 절에 2평 남짓 되는 방이 있는데 거기서 생활해요. 본가도 왔다 갔다 하고 절에도 왔다 갔다 하고.

그 일이 있고나서 우울증 진단을 받아 계속 약을 먹는데 낫지를 않는 거예요.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당시에 힘든 것 때문에 절에 들어갔다가 원래 산을 너무 좋아하고 술, 담배도 안하고 특별히 밤에 할 게 없다보니 절 생활이 제 라이프 스타일이랑 맞았던 거 같아요.


다시 방송에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요.

드라마 연기자로 소속사 없이 활동을 하면서 절치부심을 했었거든요. 이제는 실수를 안 하는 방법을 생각해 시작을 하면서 연극도 하고 뮤지컬도 하고 드라마도 찍고 그렇게 조금씩 하다 보니 예전에 보여 왔던 예능에서의 가벼운 이미지나 까불까불한 이미지보다는 연기자로서의 제 모습을 더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러면서 조금씩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연기를 하며 기억에 남는 작품

아직까지는 해야 될 게 너무 많기 때문에 드라마로는 없고 이순재 선배님이 예술 감독님을 맡으셨던 연극 ‘헤이그 1907’이 기억에 남아요.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했던 작품인데 헤이그 특사 3인의 연기를 했었거든요. 지금도 생각하면 되게 막 가슴이 저려요. 연기가 너무 슬픈 내용이어서.

2016년도에 새 작품이나 차기작 계획은.

올해 12월 서울대학교 개교 70주년을 맞아 햄릿 작품을 재해석한 판소리 연극을 연습 시작했어요. 서울대 동문 극단이 만들어서 이순재 선배님, 정진영 선배님 등 서울대출신 배우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알고 있어요.

드라마나 작품 활동

드라마는 10월에 웹 드라마 주연으로 캐스팅 됐고 올 하반기에 드라마 몇 작품을 검토 중이지만 아직 확정은 아니에요. 연기활동으로는 계속 꾸준히 얘기가 나오고 있어서 이것저것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대학원 논문에 집중하고 있어요. 저번 학기에 SBS 드라마 ‘내 사위의 여자’ 찍으면서 논문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지금 다시 해야 돼서 논문을 이제 쓰고 있어요. 졸업해야 돼서.(웃음)

교수라는 타이틀이 있는데.

제가 비보이 출신이고 체육교육과 나오면서 이론적으로 체육이랑 스포츠 쪽이랑 밀접하게 연관 돼있는 게 많거든요. 그래서 무용 이론으로 서울종합예술학교라는 곳에 무용예술학부에 비보이 전공 이론 교수로 있어요. 비보이 역사, 교습법, 인체기능학, 인체생리학 요런 것들 가르치고 있어요. 6년 째 꾸준히 하고 있는데 재밌어요. 후배들을 양성하는 거고 제자들이 데뷔한 친구들도 많고. 데뷔한 친구들은 빅스타의 필독 이런 친구들도 제자들이고. 무한도전에 정준하 씨 팝핀 선생님으로 나왔던 주민정도 제 제자고. 뭐 그런 친구들을 양성하는데 이런 모습이 제가 꿈꿨던 ‘연기자’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기능들을 계속해서 활용하면서 이사회에 어쨌거나 기쁨과 재미를 주는데 공헌할 수 있는 것. 그 친구들이 또 커서 대중들과 소통을 하니까.

지금도 비보이 활동을 하는 지.

가끔 공연을 하곤 해요. ‘남남북녀’에서도 공연을 했었고 방금도 박효신 콘서트 관련 연락이 왔었어요. 효신 형 콘서트는 제가 한 번도 안 빠지고 데뷔한 이후에도 비보이로 참여했었거든요. 사람들은 모르지만 형 뒤에 보면 제가 있어요.(웃음) 이번에도 문자가 왔는데 10월부터 콘서트가 있다는데 아무래도 하지 않을까요.

정말 바쁘게 사시네요.

돈 되는 건 다 해요.(웃음)

돈 돼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실 돈 돼서 하는 건 아니죠.

어떤 삶의 목표가 있는 건가요?

제 인스타 아이디가 라이프 아티스트(life artist)거든요. 제 인생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정말로 시간 허비한 거 없이 정말로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제게 누군가 박재민 씨의 인생은 뭐로 정의할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저는 ‘추억 만들기’라고 얘기했거든요. 정말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은 게 제 목표라 앞으로도 여러 가지 모험을 계속 해나갈 거 같아요. 라이프 아티스트로서.

지금 보니 핸드폰을 여전히 2G폰을 쓰는데.

스마트 폰이랑 두 개를 갖고 다니는데 스마트폰은 내비게이션를 보는 용도 외에 급한 문서 작업을 할 때나 써요. 데이터를 한 달에 1기가도 안 써요. 많은 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시작했던 SNS는 와이파이가 되는 집이나 절에서 자기 전에 조금씩 해요. 스마트폰을 그 외에는 쓰지 않아요. 연락도 모두 2G폰으로 하는데 카톡 보다는 문자, 문자보다는 전화, 전화 보다는 만나려고 해요. 아날로그적인 걸 좋아해서.

그런 걸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지.

대중들을 상대로 하는 연기자는 디지털화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연기자라는 사람이 액정화면에 익숙해지고 디지털에 익숙해지면 결국 우리가 감동을 주는 방법은 사람의 눈을 보면서 아날로그로 감동을 시켜줘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디지털화가 되면 대중들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까먹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계속해서 사람들과 호흡하고 교류하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선 스마트폰을 안 쓰는 게 제겐 더 좋은 거 같아요.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며 지칠 법한데 어떻게 해소하는지.

연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그렇게 집에 오면 지치는데 그 스트레스를 뭐로 푸냐면 운동으로 풀어요. 운동도 하는데 이게 매일 가야 되니까 스트레스예요. 그걸 또 뭐로 푸냐, 춤으로 풀어요. 근데 또 춤이 잘 안 되면 뭐로 푸냐, 후배들을 보면서 강의하며 풀어요. 또 강의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연기로 풀고. 이게 서로 상호 보완 작용이 되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지칠 틈이 없는 거 같아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없을 때 사람이 다운이 되고 술 한 잔 하자 하게 되는데 저는 술 마실 틈이 없거든요. 계속 하루 종일 움직이고 밤에 자고 그런 라이프 스타일이라 에너지가 떨어질 틈이 없는 거 같아요. 내 삶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몇 가지 활동을 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노력도 필요한 거 같고요.

배우로서 롤모델

어렸을 때부터 윌 스미스. 제가 미국에서 처음 좋아했던 배우가 윌 스미스였거든요. 그때 프레시 프린스라는 예명으로 가수활동도 하고 다방면이잖아요. 멋진 배우이자 가수이기도 하면서 감독이기도 하고 멋진 아빠이자 남편이기도 하고 사회 공헌도 많이 하고. 제가 닮고 싶은 모든 걸 갖고 있어요.

기부를 했던 기록도 찾아 볼 수 있었는데 그것도 다 롤모델에게 영향 받은 것들로 부터 비롯된 활동이었나요.

윌 스미스의 영향이기 보다는 대중 문화인으로서, 그리고 대중예술인으로서 당연히 가야 하는 수순이었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예를 들어 삼성에서 일하면 삼성사장님이 주는 월급이고 현대면 현대사장님이 주는 월급인데 제 출연료는 철저히 대중들이 주는 거거든요. 대중들의 시청률을 담보로 나오는 돈이기 때문엔 저는 그 돈이 다시 대중들한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지 사회 경제도 환원이 되고 계속 움직이고 대중들로 인해 받은 실체 없는 돈이기 때문에 항상 보답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그 돈을 어디다 쓸까, 사회에 어떻게 환원할 수 있을까, 대중들이 준 돈이 어디에 쓰이면 가장 아름다울까 생각하던 끝에 기부에 다다른 거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과 세월호 유족들에게 기부를 했었는데 올해는 자금상태가 조금 여의치 않아서 소소하게 조그맣게만 했네요.(웃음)

쉽지 않은 일인데.

쉬운 일은 아닌 거 같아요. 근데 저는 기부 문화 자체는 사실 굉장히 좋은 문화인데 이게 위험한 발언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기부가 활성화 되지 않는 사회가 좋은 거예요. 뭐냐면 사회에서 이미 다 해결이 되는, 굳이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해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 사회 자본이 잘 투입이 되는 사회가 제일 좋은 거죠.

근데 정부가 그걸 못해주니까 기부라는 형태로 사람들이 그걸 채워주는 거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어떻게 보면 사회의 구조가 잘못 돼있다는 거죠. 구멍이 많다는 거죠. 기부가 안 일어나는 사회가 제일 좋은 사회인 거고 기부가 되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되면 좋은데 이것도 문제인 게 저는 기부를 빚내서 했어요. 정말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저는 1년이라도 빨리 기부를 하는 게 맞다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융통해서 기부를 하긴 했는데 문제는 뭐냐면 저는 굉장히 어렵게 했거든요. 근데 이 기부라는 게 금액 적으로 평가를 받기 시작하니까 저는 기사를 안내려고 했어요. 이게 평가를 받을까봐 그게 조금 아쉬운 면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는 지금 상황에서는 활성화가 돼야 하죠. 그래도 아쉽거나 하진 않아요. 이렇게 저와 같이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으니 대중들도 굳이 알아주길 바라기 보다는 이런 은은한 흐름이 언젠간 빛을 바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같이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 있는지.

저는 연기하는 게 너무너무 재밌어서 딱히 같이 하고 싶은 배우보다는 앞으로 최대한 많은 배우들과 최대한 많은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너무 재밌어요.

탐났던 역할

한국영화에서는 ‘달콤한 인생’에 나왔었던 김뢰하 역할. 그리고 황정민 씨가 했던 연기. 진짜 독한 캐릭터. 독한 사람이 인상 쓰면 오히려 안 독해 보이거든요. 독한 사람은 진짜 자기가 독한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그런 연기를 쫌 해보고 싶어요. 자신 있거든요.

최근 예능 ‘비디오스타’에 출연했는데.

그 PD님이 저의 아주 철저한 팬이세요. 짝 사건이 터지고 다섯 개의 방송에서 하차 했을 때도 유일하게 절 안 잘랐던 게 ‘올더케이팝’ 감독님이었거든요. 신뢰하나로 가는 멋쟁이 감독님이셔서 제가 2012년 이후로는 티비를 안보지만 딴 거 묻지 말고 게스트로 나오라고 해서 바로 나갔습니다. 나가서 다 챙겨주시고 비디오스타에서 재밌게 놀다 왔고 당분간 예능 쉬겠죠. 감독님이 잘 챙겨주셔서 잘나오기도 했어요. 그때 실시간 검색 순위 1위도 했어요.

이제는 연애 안하는지.

생각은 있지만 사실 조심스러워요.

이상형

착한여자요. 화를 못 내는 성격이라 저한테 약간 심술부리거나 화내면 제가 못 견뎌요. 제가 화를 안내니까 배울 것이 많은 분. 약간 외모도 보지만 그건 한참 나중에 문제고. 급구합니다.(웃음) 심지어 잘못 나간 기사 때문에 유부남인 줄 알고 접근도 잘 안하시더라고요.

최종적으로는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멋졌던 한 명의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연예인 출신인데 다른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분들도 많아서 제 모습도 어떻게 바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박재민 이라는 사람을 기억했을 때 도전을 많이 했고 안주하지 않았던 정말 멋진 한 명의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뭔가 인기 많은 연예인, 대박 작품 그런 걸로 기억 되는 것도 좋지만 그런 것 보다는 그 사람 참 괜찮은 인간 이었다고 멋있었다고 기억되고 싶어요.

기획 진행: 조원신
포토: bnt포토그래퍼 차케이
의상: 슈퍼스타아이, 잭앤질
슈즈: 나이키, 팀버랜드
아이웨어: 룩옵티컬
시계: 잉거솔
헤어: 에이바이봄 도형 이사
메이크업: 에이바이봄 재희 실장

bnt뉴스 기사제보 fashion@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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