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인터뷰②] ‘자체발광 오피스’ 고아성의 ‘Let It Go’

입력 2017-05-19 16:02   수정 2017-05-19 17:29


[김영재 기자 / 사진 조희선 기자] “내 끼를 다 펼칠 수 있는 무대가 필요했다”

가상에서 꾸며진 거짓으로 시청자가 마주 앉은 사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드라마는 역설의 미디어다. 그리고 여기 미세먼지처럼 만연한 현실을 가짜지만 진실하게 지적한 어떤 드라마 한 편이 5월4일 종영했다. MBC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극본 정회현, 연출 정지인 박상훈)’다. 최고 시청률 7.4%(닐슨 코리아 기준)는 아쉬운 성적이지만, 사회의 대립 구도 갑(甲)과 을(乙)을 코믹한 접근 아래 극에 녹여낸 점은 칭찬을 불러 모았다.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어언 5년 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은호원을 연기한 배우 고아성을 16일 서울시 성동구 한 카페에서 bnt뉴스가 만났다. 은호원은 자학의 시대가 낳은 흙수저의 표준이지만, 극중 대사를 빌리자면 ‘믿을 것도 없는데 지르는 게 특기인’ 캐릭터. 갑을 관계에 녹아든 이 21세기형 캔디 캐릭터는 ‘솔직 갑’ ‘부활의 아이콘’ 등의 별명을 생성시켰고, 더불어 고아성은 주연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종영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종영인터뷰①] ‘자체발광 오피스’ 고아성, 행복의 갑(甲)을 느끼다
[종영인터뷰②] ‘자체발광 오피스’ 고아성의 ‘Let It Go’

이번 인터뷰는 ‘자체발광 오피스’ 종영을 기념하는 라운드 인터뷰로 진행됐다. 다수의 매체들과 인터뷰이 한 사람의 인터뷰가 매 시간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고, 기자는 마지막 시간에 고아성을 만났다. 하나의 작품을 매개로 얼마나 많은 질문들과 대답들이 오갔을지. 피곤해 보이는 그를 위해 주제를 바꿨다. ‘자체발광 오피스’는 잠시 차치하고, 배우 고아성의 작품 선택 기준을 물었다.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작품 그 자체에 중점을 두는 것 같다고 말하니 “맞는 말씀”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어떤 비중을 연기하는 배우’라는 정의가 모호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냥 작품 들어오는 것 중 가장 끌리는 것을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특별 출연을 했던 적도 있고, 일본 드라마에 잠깐 나왔던 적도 있다. 항상 재밌을 것 같은 작품을 한다. 내가 정말 스스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Q. 넷플릭스 ‘심야식당: 도쿄 스토리’ 네 번째 에피소드에 출연했다. 25분짜리 단편이다.

“우선 일부러 화장도 꾸준히 받아오던 분에게 안 받고 실제 일본 스태프 분에게 받았다. 의상도 마찬가지로 그쪽의 도움을 받았다.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일단은 세트가 정말 잘 꾸며져 있었다. 우리나라는 보통 실내 공간을 세트로 많이 쓴다. 그런데 거기는 길까지 모두 세트였다. 티가 안 나서 놀랐다. 세트 하나 하나 뜯어보면 완벽함이 느껴진다. 사소한 간판에 스크래치 하나의 느낌까지 정말 완벽했다. 그런 데에서 감동이 오더라.”

타국의 언어로 연기를 하는 것은 연기를 잘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경지다. 배우 설경구는 영화 ‘역도산’ 촬영 전에 나카타니 미키가 그의 일본어 대사를 못 알아들었다는 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고 언급했던 바 있다.

“유나라는 인물은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이다. 역할의 특성상 마츠오카 조지 감독님께서 그렇게 완벽한 일본어를 원하시지 않았다. 실제 일본에 있는 한국 사람처럼 조금의 위화감이 원하셔서 그때 감을 잡았던 것 같다. 일본어 시험을 보는 것처럼 완벽할 필요 없이, 필요에 의한 정도. 그 기점을 감독님과 사전에 상의해서 맞췄다.”


Q. 드라마와 영화를 병행 중이다. 조석경(장신영)이 회사에서 겪고 있는 유리 천장처럼, 영화계와 방송계는 보이지 않는 유리 벽이 존재한다. 병행 혹은 동행의 배경이 궁금하다.

“일단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영화와 드라마에 환경이 많이 비슷해지고 있다. 영화가 필름으로 안 찍게 되면서 현장 분위기가 드라마와 비슷하게 됐다. 필름으로 찍으면 희소성 때문에 약속을 완벽하게 해놓고 최대한 표현하는 것이 컷이었다면, 요즘은 시도를 다양하게 하는 중이다. 중간에 자르고 다시 하는 경우도 많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필름으로 찍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나도 필름 영화의 마지막 세대에 걸쳐져 있어서 조금은 경험해봤는데 많이 달라지고 있다. 현장에서 분위기가 좌우되는 점이 스태프 분들인데, 영화 하시는 분들이 드라마를 하시고, 드라마를 하시는 분이 영화를 하시고. 이동이 정말 잦아졌다. 스태프 분부터 구분이 없어지니까 그래서 더 비슷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와 드라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분량이다. 드라마와 영화는 찍는 기간은 비슷하지만, 영화는 3개월 동안 2시간짜리 영상을 만들고, 드라마는 일주일에 한 3시간 정도는 만드는 것 아닌가. 분량으로 따지면 연기를 정말 많이 해야 된다. 그 부분이 차이점이면서 동시에 재밌는 부분이다. 순발력을 발휘하는 재미가 있다. 연기를 많이 하다 보니까 찍어야 하는 분량이 많아지고, 약간 이전이랑 다르게 하고 싶은 창의력이 엄청 생긴다. 대담성이 만들어진다. 애드립도 많이 하게 되고. 이번 드라마가 특히 배우들이 애드립을 많이 했다. 배우들끼리의 태도도 상대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체발광 오피스’의 은호원(고아성)은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줘야만 했냐?”라고 독백한다. 글로는 평범한 대사다. 하지만 영상에서 고아성은 영화 ‘해바라기’ 속 명대사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의 뉘앙스를 그대로 따라한다. 이것도 애드립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그는 “애드립이다”라며, “그런 건 정말 리허설 때도 생각지 못하다가 슛 할 때 되면 호기심 발동이 되고, 아이디어가 실전에서 많이 생긴다. 감독님도 많이 받아주시니까. 나중에는 제지하시더라.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웃음)”

조석경은 은호원에게 “실수였든 아니든 회사에선 결과만 중요해”라고 말한다. 과정이 무시되는 것은 물론, 그 결과마저 성공만이 인정 받는다는 지독한 표현이다. 더 무서운 것은 중간의 회사 대신 다른 단어를 대체하더라도 그럴 수 있겠다는 수긍의 탄식이 절로 나온다는 점. 이는 배우도 마찬가지다. 배우는 흥행이라는 결과가 중요한 직업. 그는 흥행성과 작품성 중 “그때 그때 다른 것 같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속내를 털어놨다.

“내가 작품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부정할 수 없다.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작품성이 우선시 하는 것도 아니다. 흥행하는 영화도 하고 싶고, 상업 영화만의 재미와 쾌감도 있는 것을 알기에 늘 다양하게 하고 싶다. 이번에 작품성 있는 어떤 작업을 했으면 다음에는 다른 것이 끌리고. 항상 기복이 있다.”

Q. 서우진(하석진)은 ‘은장도’를 위로하면서 자기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다른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아성 본인이 생각하는 배우 고아성의 강점과 약점이 궁금하다.

“우선 강점은 공감 능력이다. 조금 뛰어난 편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나, 호기심이 정말 끝이 없다. 사람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일은 영원할 것 같다. 꼭 연기가 아니더라도. 이것이 연기자로서 가지는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약점은 모르겠다. 공감 능력 빼고는 다 별로인 것 같다. (웃음)”

도기택(이동휘)은 하지나(한선화)에게 뜨거운 1년의 사랑과 지지부진한 10년의 사랑을 언급한다. 시한부 인생의 종점을 준비하는 도기택의 슬픈 간접 고백이지만, 사랑의 열정 차이는 지금도 열심히 사랑 중인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고민을 안겨준다.

“사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한번도 생각 안 해본 문제라 생각해보고 싶다”라며 잠시의 고민을 고친 후 “나중에 생각나면 말씀드리겠다”라고 말했다. 사랑에 옳고 그름은 없다. 또한, 정답도 없다. 하지만 대중이 좋아할, 인터뷰에 적합한 대답은 있다. 그러나 그는 섣부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신중함이 돋보였다.


고아성 a.k.a. ‘야구르지롱 돌직구 야구소녀’는 MBC ‘일밤-복면가왕’에 출연해 장덕의 ‘님 떠난 후’와 박영미의 ‘나는 외로움 그대는 그리움’ 선곡했다. 이제 이십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뿐인데, 각각 1986년도와 1990년도 곡의 선곡이라니. 그는 “둘 다 내가 골랐다”라며, “평소에 좋아하는 곡들이었다”라고 밝혔다.

영화도 ‘옛’이 접두어로 사용되는 영화들을 좋아하는지 묻자, “옛날 영화도 좋아하고 최근에 나온 것도 좋아한다. 가리진 않는다”라고 답했던 고아성. 영화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필름 세대 끝자락부터 연기를 시작했던 그에게 현 영화계의 남초 현상을 질문했다.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혜안이 궁금했던 것. 이에 관해 어떤 배우는 영화계가 노쇠하고 병들어 있다고 직언을 했고, 또 어떤 배우는 대중의 결정이자 시대의 흐름이라고 표현했던 바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여배우들이랑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한다. 그런데 저보다 경력이 더 오래 쌓이신 분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하셨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 1990년대 후반 이럴 때는 멜로 영화가 정말 대세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20년이 다 지나가도록 말이다.”

“예전에 ‘조폭’ 소재 영화가 너무 많이 나왔다. 영화 ‘조폭 마누라’나 ‘투사부일체’ 같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인기를 끌었지만, 소재는 남았어도 어느 순간 종결된 것이 현실이다. 그런 것처럼 배우에게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 있고, 최대한 기대를 낮추되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선배에게 들었다. 힘이 나더라.” 그렇게 좋은 말을 건넨 선배가 누구인지 물어보니 “류현경”이라는 대답이 웃음과 함께 터져나왔다. 두 사람은 토크쇼에도 출연했던 ‘절친’ 사이다.

마지막회인 16회의 마지막에는 다음의 문구가 화면에 자막으로 나온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덕분에 우리의 오늘은 행복했습니다. 당신의 오늘이 항상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더불어 기자가 메모했던 은호원의 대사 중에는 “아주 간단한 행복 법칙을 마지막에서야 깨달았다. 오늘 하루만 행복하자. 오늘만 행복하면 모든 날이 행복하다. 어제도 오늘이었고, 내일도 오늘이 될 테니까. 그래서 오늘 괜찮은 하루였다”라는 것이 있다. 과연 고아성은 오늘을 상기하며 사는지 궁금했다.

“아무리 바쁠 때도 매일 짧게라도 일기를 쓴다. 일단 컴퓨터에 먼저 쓰고, 손으로 옮겨 적고, 지운다. 그런 버릇이 있어서 하루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는 점은 늘 있었다. 그 대사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약간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나는 이 드라마를 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점이 ‘난 사실 밝은 사람이 아니라’라는 것이었다. 발랄하거나 은호원처럼 활발한 캐릭터가 아닌데, 그런 모습을 연기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컸다.”

“그 대사를 하면서 난 정말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면 그 전체가 생활이 될지, 내 인생이 될지 궁금했다. 그런데 지난 3개월을 돌이켜보면 내가 내렸던 정의가 무의미하게 정말 은호원처럼 밝은 시절을 보냈더라. ‘내가 어떤 사람이든 3개월 동안 꽉 차게 삽화처럼 보냈으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닌가’라는 개인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나 자신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지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어느 사람인 것보다. 은호원을 통해서 배운 것이 많다.”

은호원은 선물 같은 배역이었고,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자체발광 오피스’가 대중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길 원하는지 물었다. 고아성은 “그동안 안 해봤던 시도였고, 그것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니면 부족했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스스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은 남겨두고 싶다”라며, “이번 작품은 비중이 정말 많았다. 포지션의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라고 입을 열었다.

“내 끼를 다 펼칠 수 있는 하나의 무대가 필요했다.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나는 마음껏 까불 수도 있었고, 어느 때보다 서럽게 울어보기도 했고, 누구한테 소리질러 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갈증의 해갈에서 오는 배우의 만족감이 전달됐다.


고아성 연기의 시작은 KBS2 ‘울라불라 블루짱’이었다. 그리고 대중이 기억하는 그의 첫 작품은 영화 ‘괴물’이다. 이에 인터뷰 중간 아역에서 성역으로의 전환이 매끄러웠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때로 간극을 메우지 못해서 방황하는 연기자들이 많은 것이 현실. 특히 어떤 배우들은 연기 아닌 노출을 추구하며 대중에게 파격을 안겼던 바 있다.

그는 자연스러움을 강조했다. “잘 모르겠다. 만약 나만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비결은 그냥 신경을 별로 안 썼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성장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전략적으로 이미지 메이킹 한다면 대중은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지금 스물 여섯이고 그런 때는 지났지만, 그때도 인지를 했다. ‘괜히 욕심을 부리거나 전략을 세우면 안 되겠다’라고. 그냥 ‘렛 잇 고(Let It Go)’ 했다”

욕심과 전략. 그리고 내버려둔다는 뜻의 ’렛 잇 고’와 자연스러움. 고아성의 선택이 전적으로 옳다고 말할 순 없다. 개인마다 외모, 성격, 개성이 다른 것이 배우인데 어찌 한 가지 방법만이 성공으로 가는 정도(正道)겠는가. 그러나 덤덤하게 ‘렛 잇 고’를 말할지라도, 아마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그를 이뤄낸 것일 테다. 류현경의 말처럼 시대를 배척하지 않고 희망 속에 흐름을 탈 고아성의 다음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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