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여전히 탁한 거울에 절망케 하는 과거의 뼈아픔 (종합)

입력 2017-09-25 19:13   수정 2017-09-25 20:29


[김영재 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남한산성’이 그때의 역사를 전달한다.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의 언론시사회가 9월25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최됐다. 이날 현장에는 황동혁 감독,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이 참석했다.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이병헌이 후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이조판서 최명길을, 김윤석이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예조판서 김상헌을, 뱍해일이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를, 고수가 격서 운반의 중책을 맡은 대장장이 서날쇠를, 박희순이 남한산성을 지키는 수어사 이시백을 연기했다. 그 외에 조우진이 조선 천민 출신의 청나라 역관 정명수 역을 맡아 극에 힘을 보탰다.

각각 누적 관객수 466만 2천914명, 865만 9천581명을 기록한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를 연출하며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오른 황동혁 감독은 “매번 다른 장르를 하게 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때 그때 가슴에 확 다가오는 아이템이 신기하게도 다 다른 장르였다. ‘남한산성’도 처음에는 고민을 안 하고 있었는데, 소설 한 구절 한 구절이 갑자기 온 마음으로 다가와서 시작하게 됐다”라고 사극 연출 배경을 설명했다.

이와 관련 영화 ‘남한산성’은 동명의 김훈 작가 소설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소설 ‘남한산성’은 100쇄를 돌파했으며, 70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 중인 베스트셀러다.

‘남한산성’은 ‘조선의 운명이 걸린 47일간의 기록’이라는 광고 문구가 눈길을 끈다.

병자호란은 1636년 병자년(丙子年) 12월 발발한 중국 마지막 왕조 청과, 조선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청군의 침입 속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대항했지만, 군량의 부재와 병자년의 추위 탓에 성은 항전의 기력을 잃게 된다. 설상가상 왕족이 피신한 강화도의 함락까지. 이에 인조는 이듬해 정축년(丁丑年) 1월 삼전도에서 굴욕의 강화(講和)를 맺는다.

예고편에서 성 안의 모두는 저마다의 의견을 제시한다. 주화(主和)파 최명길은 “지금 세자 저하를 보내지 않으시면 저들이 더 큰 요구를 해올까 신은 그것이 두렵사옵니다”라며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고, 척화(斥和)파 김상헌은 “정녕 전하께서는 칸의 신하가 되시겠사옵니까? 명길이 말하는 삶은 곧 죽음이옵니다”라는 말로 화친의 논의를 배척한다.

예고편 문구를 빌리자면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힌’ 상황. 앞서 소개했듯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의 숭덕제에게 신하의 예를 갖춘다. 삼배구고두례. 한 번 절하면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이를 세 차례 반복하는 청의 예법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삼전도의 굴욕’일 테지만, 과연 47일간의 항전 속 인간 군상은 어떤 기록을 관객에게 안길지 궁금증이 집중된다.


이번 영화로 이병헌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협녀: 칼의 기억’에 이어 그의 필모그래피에 세 번째 사극을 추가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2012년 9월 개봉해 그해 추석 관객을 맞이했으며, 마침 ‘남한산성’ 또한 2017년 추석 연휴 정 가운데에서 관객을 기다린다는 점이 재밌다. 그렇기에 이병헌과 사극은 연결 고리로 묶인 하나로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내부자들’을 비롯 현대극에서도 연기력이 돋보이는 이병헌은 사극 ‘남한산성’에서 최명길을 연기한다. 최명길은 유하지만 신념을 꺾지 않는 강한 성정으로 조선과 청의 화친을 주도하는 인물. 그 속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억센 기운이 있을지라도 화친이 겉으로 품고 있는 색은 부드러움이다. 화해와 평화. 이병헌에게는 맞춤 역할이었다.

“사극은 세 번째 해본다. 실제로 살아보지 않은 시대이기에 모든 것을 정확하게 고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말투나 예법이나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이렇게 했겠지’라고 상상하면서 연기하게 된다. 이 가운데 ‘남한산성’은 ‘광해: 왕이 된 남자’나 ‘협녀: 칼의 기억’처럼 어느 정도 픽션이 가미된 것이 아닌 실제 우리의 역사를 고스란히, 또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작품이었다. 때문에 많은 부분 감독님과 상의하면서 고증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최명길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연기하려고 했다.”

또한, 이병헌은 ‘내부자들’을 통해 첫 호흡을 맞춘 조우진을 제외하고 ‘남한산성’에서 모든 배우 및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다. “사실 조우진 씨 빼놓고 다 처음 보는 사이였다. 심지어 감독님과도 처음 같이 작업을 했다. 굉장히 긴장했고, 아주 신선하기도 했고, 배울 것도 많고. 그래서 그런 부분이 굉장히 좋았다. 모두 각기 개성 있는 연기를 하시는 분들이니까 하루하루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그런 촬영 분위기였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박해일은 사극이기에 숨을 곳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작품을 처음 맞닥뜨린 순간을 회상했다. 박해일은 이번작에서 인조를 맡았다. 조선 역사에서 무능한 왕으로 평가 받는 인조. 박해일의 인조는 그의 연기보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황동혁 감독이 만든 상황이 이끌어내는 웃음이 취재진을 웃게 만들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상상되는 신도 있었다. 

“이병헌, 김윤석 선배님이 먼저 캐스팅되셨고, 나는 그 후에 하게 됐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극이라는 장르 안에서, 정극이고 그러다 보니 정말 숨을 데가 없겠구나’라는.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추려고 하니 긴장도 됐다. 배울 것이 많겠다는 생각에 집중하고, 관찰했다. 추운 겨울에 사고 없이 잘 마무리 지으면 좋은 작품이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포스터를 보면 상단의 이병헌 그리고 하단의 김윤석이 눈에 띈다. 연기력으로는 비교할 이가 없는 두 배우 그리고 그들의 역할이 주화파와 척화파라는 점에서 확실한 연기 대결을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조를 사이에 두고 두 명의 신하가 설전을 벌이는 구조는 에너지의 분산이라는 인상을 전달했다. 김윤석과 이병헌의 간접 대결은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영화를 접한 기자의 기시감에서 비롯된 부족함일 수 있다. 그럼에도 화친과 전쟁을 논하는 김윤석의 김상헌과 이병헌의 최명길은 영화의 백미다.

“그날 촬영은 중요하기도 했고, 두 사람 다 대사의 양이 엄청 많은 날이었다.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분위기도 진지했고, 그 전에 대사를 다 숙지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그래서 대사 NG는 거의 없었다.”(이병헌)

이어 그는 김윤석을 칭찬했다. 연기가 불 같은 배우란다. “보통 리허설을 하다 보면 상대방이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 어느 정도 숙지가 된다. 그렇지만 굉장히 불 같은 배우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상황을 던져 놓고 연기하신다고 생각됐던 것이, 매 테이크마다 다른 연기를 하신다. 탁구처럼 상대방에 따라 공격과 수비를 고민하고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상황이 많았다. 긴장하고,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이에 김윤석은 “사실 비하인드가 있다”라는 말로 관심을 모은 뒤 “그날 그렇게 인조 앞에서 (김)상헌 (최)명길 두 신하가 마지막 결정을 놓고 다툴 때, 실수로 바뀐 대본을 몰랐다. 현장에 도착해서 바뀐 것을 알았다. 모골이 송연했다. ‘이 중요한 장면에 이 많은 대사를 다시 숙지를 해야 한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입을 뗐다. “(이)병헌 씨한테 일부러 변화구와 직구와 체인지-업을 던지려고 한 것은 아니다. 급조하다 보니까, 어쩌다 보니까 밸런스가 바뀌고 그랬다. 어쨌든 병헌 씨가 잘 받아줘서 좋은 장면이 나온 것 같다.”


영화와 소설은 다른 결을 가진다. 소설을 원작으로 두는 영화의 경우 방대한 양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을 영화로 옮기며 상업적으로 성공한 대표작 ‘해리 포터’ 시리즈 역시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원작 팬들의 지적이 산처럼 쌓였던 바 있다.

‘남한산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설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개성을 발산하지만, 영화는 최명길과 김상헌 그리고 인조에게 역량을 집중한다. 그렇다고 서날쇠, 이시백, 정명수의 색이 죽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족했다. ‘남한산성’은 이만하면 스크린으로 성공적 이동한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의 팬이라면 아쉬움이 남을 수 있겠다.

황동혁 감독은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을 처음 영화로 옮길 때 중점을 둔 지점이 최명길과 김상헌 두 사람의 대립이었다. 인조를 둘러싼 사상적 대립이었다. 두 캐릭터에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나머지 캐릭터들이, 소설처럼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를 담을 수 없다 보니 조금씩 생략된 지점이 있다.” 그는 다른 역할 역시 최대한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각각의 캐릭터에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의 심정과 하는 일을 묘사하기 위해서 제한적 시간 안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8월23일 ‘남한산성’ 제작보고회에서 조우진은 “역사는 거울이다”라는 말로 취재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의 현학적 표현은 언론시사회에서도 계속됐다. 그는 “오늘 영화를 보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탁한 느낌이었다. 거울이 탁한 것인지,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이 탁한 것인지 가늠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마무리 인사말을 전했다.

‘거울이 탁하다’라는 말은 ‘역사가 탁하다’라는 말과 일치할 테다. ‘남한산성’에서 묘사된 역사. 기자가 접한 그때의 역사는 외세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 조선이라는 사실보다 민초를 사지로 내몰고, 도구로 생각하는 일부 지배층의 과오가 짙은 악취로 다가왔다.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의 마지막 장(章)의 제목은 ‘성안의 봄’이다. 인조가 상투에 흙을 묻히고, 청 황제는 대륙으로 돌아가고, 봄이 다시 오고, 조선은 무너지고,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21세기가 왔다. 그럼에도 악취는 여전하다. 탁한 거울은 언제 밝아질 것인가.

한편 영화 ‘남한산성’은 10월3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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