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돌아온 ‘임대아파트’ 정전에서 오는 삶의 무게

입력 2018-04-26 12:00   수정 2018-04-27 12:54


[김영재 임현주 기자 / 사진 bnt포토그래퍼 송다연] ‘임대아파트’ 주연진 4인을 만났다.

‘청춘들아! 우리 여기서 같이 살자!’ 지난 2006년 4월 소극장 혜화동 1번지에서 관객에게 감동을 안긴 연극 ‘임대아파트’가 2018년 다시 무대에 오른다. “‘초지일관’이라는 말. 저는 좋아요. 요즘 사람들이 잘 안 쓰는 말이잖아요. 꿈을 응원하는 뜻의 말인데 이런 말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거 같아요.”

서로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인생을 ‘임대아파트’는 ‘살아내고’ 있다고 표현한다. 주역 홍재생과 윤정현을 연기 중인 배우 김강현, 안혜경, 김호진, 하지영. 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대사를 묻자 ‘처음에 세운 뜻을 이루려고 끝까지 밀고 나감’이라는 뜻의 사자성어 초지일관이 언급됐다.

인터뷰장에서 만난 배우들은 무대 아래에서도 여전히 웃음과 슬픔을 밀고 당기며 살아있는 호흡을 선보였다. 첫 발걸음의 빛이 저 멀리서도 빛났으면 하는 배우들과 bnt뉴스가 만났다. 다음은 연극 ‘임대아파트’ 주연진과 나눈 이야기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인터뷰①] ‘임대아파트’ 4인방, “연극계에 따뜻한 봄날이 오길” (기사링크) 
[인터뷰②] 돌아온 ‘임대아파트’ 정전에서 오는 삶의 무게 (기사링크)


Q. 하지영 씨와 안혜경 씨 모두 극중 정현의 일을 실제로 경험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더욱 궁금하네요. 두 분이 생각한 윤정현은 어떤 인물일까요?

안혜경: 전 누군가를 사랑하면 정말 헌신적이에요. 모든 게 다 그 사람으로 맞춰지죠. 나의 잘못도 그의 잘못도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웃음) 물론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정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헌신적인 부분을 좋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사실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그 사람만의 사랑 방식인 거니까요.

하지영: 남들이 바라봤을 때 (윤)정현이는 헛똑똑이일 거예요. 하지만 정현이는 남자 친구를 포함해 큰오빠와 남동생까지 모두 뒷바라지하며 사랑해줘요. 완전 부모의 마음이죠. 본인은 아마 엄청나게 멋진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사실 과거에는 있었지만, 요즘엔 이런 유형의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이 같은 사랑이 없어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무대에나마 존재하는 이 사랑이 우리 연극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Q. 홍재생은 연인에게 지극정성으로 보살핌을 받는, 어쩌면 답답한 인물이에요.

김호진: 성공해서 호강시켜주는 게 여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호강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있어요. 저도 어렸을 때 그랬고요. 하지만 여자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잖아요. 어렸을 때는 더 큰 거를 주면 그게 더 큰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다르게 생각해요. 작은 거 하나하나 관심 갖고 상대방이 원하는 게 뭔지를 궁금해 하는 자체, 그게 바로 사랑인 거 같아요.

하지영: 여자는 성공할 남자를 만나는 게 아니에요. 사랑할 남자를 만나는 거지.

김강현: 성공할 남자예요? 성공한 남자예요?

하지영: 성공이 사랑의 기준이 아니라는 소리예요.

김호진: ‘결국 내가 기분 좋으려고 이걸 주는 건가?’라는 생각이 얼핏 들더라고요. 나만 기분이 좋은데 과연 이런 게 사랑인가 싶긴 해요.

Q. 김강현 씨는 어때요? 사랑의 한 방(放)을 꿈꾸나요?

김강현: 성공해서 주는 것보다, 저는 저희 부모님이 떠올라요. 바라는 거 없이 다 해주셨어요. 근데 저는 엄마, 아빠한테 뭘 못 해드렸어요. 연극 하면서 후배들에게 술 한 번 못 샀어요. 부모님 생신에 선물 살 돈도 없었고요. 그 정도로 가난했어요. 하루는 아버지가 어디 갔다 오냐고 물으셨어요. 어머니랑 삼계탕 먹고 왔다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앞으로는 얻어먹는 일 없이 꼭 밥 사드릴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여태껏 베푸셨는데 또 얻어먹어?’라는 마음이었어요. (웃음) 평생 밥 사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벌고 싶어요. 다 주셨으니까요.


Q. 극중 정전된 상황에서 양초를 키며 ‘초지일관’을 이야기하잖아요. 실제 배우들의 삶에도 정전이 온 순간과 다시 밝아오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김호진: 현재 저의 삶을 보면 불이 켜졌다 꺼졌다 계속 반복돼요. 저의 위치가 정전이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불을 껐다가 켰다가 하는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이번 연극이 촛불을 한 번 더 켜게 된 계기였죠.

안혜경: 전 한 3년 정도 일이 끊겼던 적이 있어요. 배우의 길을 가고는 싶지만, 정해진 이미지 때문에 들어오는 역할이 아나운서나 기상 캐스터에 머무르더라고요. 일이 없으니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죠. 소파 밑을 뒤질 정도였으니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마도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힘든 순간이었어요. 우연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임대아파트’의 연출가 분께서 하자고 안 했으면 식당이나 카페 같은 다른 일을 했을 거예요. 내가 일할 공간이 있어서 좋아요. 엄마도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살아계셨으면 좋겠고요.

하지영: 작년이 딱 정전이었어요. 그간 운명은 개척해가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사람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한 방이 있더라고요. 이게 불안을 넘어서 공포로 변하니까 너무 무섭더라고요. 그때 제가 선택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불안 말고 실질적인 불안을 느껴보자’였어요. 그때 바로 멕시코에 상어를 만나러 가는 방송을 했었는데 진짜 무섭더라고요. (웃음) 내가 겪어보지 못한 공포를 느끼니까 정말 무서웠어요. 그 일을 경험하고 1월부터 불이 켜지더라고요. 어두운 바다 속에서 불이 딱 켜진 느낌? 이번 연극 연습을 할 때였어요. 살고 싶어서 옆에 있는 (김)호진 오빠나 (김)강현 오빠나 주변 사람들에게 다 매달렸던 것 같아요. 덕분에 지금은 완전히 불이 켜진 상태예요.

김강현: 사실 미국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어느 지역이 정전이 되면 기사가 뜨잖아요. 안 좋은 의미가 아닌 평소에 일어나지 않는 희귀한 일이 발생한 거니까. 정전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별에서 온 그대’가 기적이었어요. 그 역할을 연기하면서 사랑도 많이 받고 참 기적 같은 정전이 일어난 거죠.

Q. 홍재생과 윤정현의 미역국 신 등을 보고 혹자는 2000년대 초연된 작품의 정서와, 현재 관객의 정서가 만들어내는 불협 화음을 지적 중이에요.

하지영: ‘임대아파트’는 작가의 살아온 과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에요. 왜 그걸 없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왜 현재에 맞춰야 할까요. 우리 아빠가 일궈온 것이 있기에 지금의 디지털이 이뤄진 건데요. “이거 올드해” 하시지만, 우리는 그 세대를 살았어요. 그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의 디지털이 불을 밝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공연에 등장하는 상황은 그 시대에 실제 일이에요. 40대 50대라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고, 30대라면 시대를 인지할 것이고, 10대 20대는 그때를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중간 중간 10대, 20대, 30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각색을 많이 했거든요. 고루하고 답답하게 여길 것이 아니라 이걸 만들어낸 사람들이 어떤 문화에서 살았는지 남아있다는 거 자체로 우리 공연은 가치가 있다고 봐요.

안혜경: 생활극의 한계 같아요. 보이는 현실인 거잖아요. 그래서 시대를 구분하시는 거 같아요. “옛날에나 저랬지 지금은 안 그래” 하고요.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작품 보고는 그런 말 안 하시잖아요. 딱 그 차이라고 생각해요.

김호진: 작품 안을 조금 더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가족과 친구들이 어떤 배려를 하면서 이 가정을 지키려고 하는가?’를 보셨으면 해요. 남자와 여자를 보고 “저런 게 어딨어?” 하시기보다, 서로 간에 왜 그렇게 하는 지를 봐주셨으면 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무엇일까요?

김호진: 아무래도 ‘초지일관’이죠. 실제 저의 마음과, (홍)재생이의 마음이니까요. 그래서 그 대사가 더 와 닿고 기억에 남아요.

안혜경: 저도 ‘초지일관’이요. 이제 잘 안 쓰는 말이잖아요. 참 좋은 뜻을 가진 말인데 이런 말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더더욱 기억에 남아요.

김호진: 사람들이 웃더라고요.

Q. 웃기려고 쓴 대사인 줄 알았어요.

김강현: 아니에요. 갑자기 생각났는데, 어렸을 때 스승님(김한길 연출가)과 제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박근형 선생님이 계셨어요. 배우 박근형 선배님 말고 극단 골목길 박근형 대표님이요. (박)해일이랑 (고)수희가 무대에 오른 ‘청춘예찬’으로 상이란 상은 다 휩쓸고 다니셨던. 저희가 ‘임대아파트’를 혜화동 1번지에서 잠깐 했어요. 열흘 정도 했죠. 2년, 3년 후에 (박근형) 선생님께서 지나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인사를 드렸는데 “열심히 하고 있어. 응, 초지일관” 하고 가시더라고요. (김한길) 연출님께서 울컥하셨어요. ‘아, 저 분이 ‘임대아파트’를 보셨구나. 대사까지 기억하셨구나.’ 그래서 ‘임대아파트’는 진짜 ‘초지일관’이 맞는 거 같아요. 처음 세운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결국엔 인정받은 작품이니까요.

Q. 연극 ‘임대아파트’는 좌절의 순간이 오지만 꿈과 희망을 강조해요. 배우들이 바라는 꿈과 행복은 무엇일까요.

김호진: 최종 목표를 얼마나 높게 잡는지에 따라서 행복의 크기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내려놓는 것이 참 어려운데 행복을 위해서는 필요하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행복하거든요. 제가 배우로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어도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안혜경: 예전에 40대를 생각하면 남부럽지 않은 생활에 좋은 남편과 예쁜 아이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돼보니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웃음) 그 당시에는 꿈을 물어보면 어떤 직업을 말했는데 지금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김)호진 씨 말대로 내려놓는 건 정말 힘들지만 1부터 하고 있어요. 언제 10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하지영: 한때 성공에 대한 갈망이 많았어요. 그 욕심만큼 잘 되면 잘 될수록 안 될 때 내 주변 사람들이 떠나가면 어떡할지 많이 두려워했죠. 그때 어떤 분께서 “네가 그런 애가 아니더라도, 성공하지 않아도 네 옆에 있을 사람은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좀 자유로워지더라고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제가 할 수 있는 역량을 자잘하게 보여주며 살고 싶어요.

김강현: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저도 이쪽 바닥에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꿈 때문에 배우를 시작했어요. 영화나 드라마를 하면 제 영상이 생기잖아요. 원래 저의 꿈은 검색하면 제가 나오는 게 꿈이었어요. 근데 이뤘잖아요. 그 성취감으로 ‘임대아파트’를 만들자가 다음 꿈이었는데 또 이룬 거죠. 이렇게 현실 가능성 있는 작은 꿈을 생각하며 이뤄나가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지금의 꿈은 평생 가족들과 후배들한테 밥 정도는 살 수 있는 경제를 갖는 거예요. (웃음) 

한편, 연극 ‘임대아파트’는 4월13일부터 5월13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시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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