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조세감면…내년 50兆 넘을 듯

입력 2019-08-15 18:11   수정 2020-11-10 15:58


조세감면은 ‘제2의 예산’으로 불린다. 예산을 직접 투입하지는 않지만 내야 할 세금을 깎아준다는 점에서 사실상 예산 지원과 똑같은 재정지출로 간주된다. 이런 조세감면액이 문재인 정부 들어 큰 폭으로 늘었다.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조세감면액은 47조4000억원으로 작년(41조9000억원)보다 13.1% 늘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 근로장려금(EITC) 감면액을 4조원 넘게 늘린 여파다. 같은 기간 국가예산은 428조8000억원에서 469조6000억원으로 9.5% 확대되는 데 그쳤다. 조세감면액 증가율이 국가예산 증가율을 압도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년 ‘확장 재정’을 예고한 만큼 예산뿐 아니라 조세감면액도 상당폭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는 투자 활성화와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조세감면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에 사상 처음으로 ‘예산 500조원대+조세감면액 50조원대’ 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中企니까, 농민이라서…'퍼주기 세금감면'으로 연 12兆 줄줄 샌다

세정당국이 아파트 관리비에 부가가치세를 물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안 건 2001년이었다. “아파트 관리비만 부가세 예외로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한 시민의 제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알게 됐다. 부가세는 모든 재화와 용역을 소비할 때 10%의 세금을 부과하는 일반 소비세인 만큼 아파트 관리비를 예외로 인정해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뒤늦게 과세 방침을 세웠지만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에 막혔다.

정부의 선택은 ‘원칙 고수’가 아니라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었다. 주민을 설득하는 대신 관리비 부가세 면제를 아예 법으로 명문화한 것. 정부는 10여 년 후인 2014년에야 135㎡ 이상 아파트에 대해서만 과세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지방 대형 아파트보다 집값이 몇 배 비싼 서울 소형 아파트가 관리비 면세 혜택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기·농민 세금 혜택 대기업의 6배

조세 감면은 세입 기반을 줄이는 만큼 재정 지출과 같은 효과를 낸다. 조세 감면을 ‘조세 지출’로 부르는 이유다. 조세 감면은 예산으로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 국회와 언론의 감시를 덜 받기 때문에 이익단체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된다. ‘묻지마’ 세금 감면을 쳐내야 할 정부도 여론 등을 의식해 쉽게 맞장구를 쳐준다.

올해 세금 감면 예상액이 47조4000억원에 이르게 된 배경이다. 2016년 감면액이 37조4000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3년 만에 10조원이나 불어난 셈이다. 올해 감면액은 국세 수입의 13.9%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국세감면율 법정 한도(13.5%)를 넘어섰다.

더 큰 문제는 감면 내역이다. 원칙에도 맞지 않고, 정책효과도 없는 조세 감면이 너무 많아서다. 중소기업과 농민을 대상으로 하는 세금 감면이 그렇다. 올해 중소기업과 농민에 대한 세금 감면 규모는 12조2000억원으로, 전체의 25.7%에 이른다. 대기업(2조원) 감면액의 여섯 배가 넘는다.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 제도는 가장 대표적인 ‘퍼주기 감면’으로 꼽힌다. 제조업 등 48개 업종 중소기업이라면 아무 이유 없이 최대 1억원까지 세금을 깎아준다.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등 세금을 깎아줄 만한 명분이 있는 기업만 주는 게 아니다. 정책 효과가 나올 리 없다.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조차 폐지 또는 축소를 권고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2017년 2조원이던 지원금을 올해 2조6000억원으로 늘렸다.

농민도 마찬가지다. 자경농지 양도세 감면, 농업용 석유류 개별소비세 면제, 농업용 기자재 부가세 면제 등 3대 항목에서만 올해 4조4000억원을 깎아줬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농업용 기자재에 주는 세제 혜택은 주로 장비를 생산하는 대기업에 돌아간다”며 “왜 세금을 깎아주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무원칙·무효과 세금 감면 정비해야”

현재 조세감면사업은 모두 276개다. 2010년 177개에서 9년 동안 100개 가까이 늘었다. 면밀한 검토 없이 신설하다 보니 조세원칙에 맞지 않고 실효성도 없는 생색내기용 사업만 양산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52개 사업은 올해 조세 감면 실적이 ‘0원’이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과표 양성화’란 정책 목표를 달성했지만 여전히 유지되는 대표적인 감면제도다. 외환위기 직후 이 제도를 설계한 김재진 조세정책연구원 부원장마저 “폐지할 때가 됐다”고 말했지만 그뿐이다. 올초 기재부가 폐지 방침을 밝혔다가 여론에 밀려 없던 일이 됐다.

농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제도는 농산물을 사용하는 음식점 등이 받는 세금감면 규모가 실제 받아야 할 감면액보다 몇 배나 많지만 “안 그래도 어려운 자영업자를 건드리면 큰일 난다”는 정치권과 정부의 판단에 개편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회사택시가 내야 할 부가세의 99%를 돌려주는 ‘택시 부가세 경감제도’는 “소비자가 부담한 부가세를 사업자에게 돌려준다는 점에서 조세원칙에 반하는 제도”(김낙회 전 관세청장)란 비판에도 2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김 전 청장(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정부가 내년에 500조원이 넘는 슈퍼예산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에 걸맞게 조세수입 기반도 확대해야 한다”며 “세율을 올리기 힘들다면 조세원칙에 맞지 않고 정책 효과도 떨어지는 각종 감면제도부터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헌/서민준 기자 ohyea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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