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영국 의회의 브렉시트 결정 장애

입력 2019-09-08 17:40   수정 2019-09-09 00:21

의회 역사가 750년 된 영국은 ‘의회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불린다. 국민을 대표해 선출된 의원들이 토론하고 표결하는 영국의 의회정치는 선진 민주주의의 표본으로 여겨졌다. 많은 나라의 벤치마크가 됐다.

그러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둘러싸고 3년여간 이어져온 영국의 정치 혼란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 영국이 과연 많은 이가 부러워하던 선진 정치를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커졌다.

영국 하원에 이어 상원은 브렉시트를 내년 1월 31일까지 다시 3개월 연기하는 법안을 7일(현지시간) 최종 통과시켰다. 당초 올해 3월 29일로 예정됐던 브렉시트는 4월 12일에 이어 10월 31일로 두 차례 연기됐다. 영국은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선택했지만 이후 3년이 넘도록 공전을 거듭하며 브렉시트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언제, 어떤 조건으로 유럽연합(EU)과 결별할지 아직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한 상황이다. 테리사 메이 전임 내각은 지난해 11월 EU와의 협상을 통해 가까스로 브렉시트 합의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이 합의안은 수차례 하원에서 부결됐다. 하원은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그동안 의향을 묻는 투표도 몇 차례 했지만 아직 한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합의가 없어도 무조건 EU를 떠나겠다는 보리스 존슨 신임 영국 총리의 ‘노딜 브렉시트’ 강행을 막았으나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영국 의회에 ‘불임 상태’가 됐다는 조롱이 쏟아지는 이유다.

그러나 영국 정치의 발달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민주주의’보다 ‘의회’다. 영국 의회는 왕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귀족 계층의 투쟁에 뿌리를 둔다. 왕의 자의적 판단을 견제하는 힘을 키우는 과정에서 귀족과 성직자뿐 아니라 부유한 자유민 등으로 의회 참여자가 확대됐다. 지금까지도 영국 상원은 ‘귀족원(House of Lords)’으로 불리며 세습 귀족이 차지하는 전통이 남아 있지만 하원은 그 구성이 다양하다.

반면 영국의 민주주의는 실체가 불분명하다. 영국은 성문헌법이 없는 국가다. “영국의 헌법이란 일어난 일 그 자체”라는 말이 나온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대륙 국가는 시민혁명을 통해 근대 헌법을 마련했다. 하지만 영국은 이들과 달리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 상황이 오래 이어졌기 때문에 의회 정치를 유지하며 개혁 바람을 피해갈 수 있었다. 의회 정치는 법조문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이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게 장점이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아무런 결정도 할 수 없다. 브렉시트라는 초유의 사태는 영국 의회가 어떤 ‘결정 장애’로 빠질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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