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고난에 맞서는 인간 투쟁이 역사"

입력 2019-09-18 17:30   수정 2019-09-19 00:21

“‘어떻게 살 것인가’ 화두를 던진 인간학 교과서.”(중국 근대문학 개척자 루쉰)

중국 한나라 역사가 사마천(BC 145~BC 86)이 저술한 <사기열전(史記列傳)>은 ‘인물전(人物傳)의 고전’으로 불린다. <사기열전>은 중국의 전설시대인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한나라 무제 때까지 약 2500년 역사를 다룬 <사기>의 ‘열전(列傳)’ 부분이다. 황제와 제후들의 업적을 각각 기록한 ‘본기(本紀)’ ‘세가(世家)’와 함께 <사기>의 주요 축을 이룬다.

70편으로 구성된 <사기열전>에 등장하는 인물은 유학자, 충신, 간신, 반역자, 모사꾼, 장군, 자객, 의사, 점쟁이, 상인 등 다양하다. 서양의 인물전 고전인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카이사르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등 영웅호걸을 다룬 것과 대조적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학 교과서'

사마천은 환란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사람들의 우정과 배신, 지혜와 우둔함, 명분과 실속, 믿음과 의심, 탐욕과 베풂 등을 기록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입체적인 감정과 행동을 담아냈기 때문에 오늘날 현실을 서술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기열전>이 ‘인간학 교과서’ 혹은 ‘인간학 보고(寶庫)’로 평가받는 이유다.”(루쉰)

<사기열전>의 첫머리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편’이다. 사마천은 망한 은나라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 죽은 두 사람을 첫 편에 올렸다. 선한 사람이 망하고, 악한 사람이 흥하기도 하는 세상사 부조리를 알리기 위해서다. 흉노에 투항한 장수를 변호하다가 궁형(宮刑)을 자청해 겨우 목숨을 건진 자신의 억울함을 백이와 숙제에 투영한 것이다.

“도척이란 도적은 죄가 없는 사람을 마구 죽이고 노략질을 일삼았다. 자기 밑에 수천 명의 부하를 거느렸다. 그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천수(天壽)를 다하고 죽었다. 의리와 신의를 지킨 백이와 숙제는 굶어 죽었다. 하늘에 도(道)가 어디 있느냐. 도가 있다면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하지만 사마천은 ‘인과응보’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현실 세계에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이 치욕을 참으며 <사기>를 완성했듯이, <사기열전>을 통해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도 고난을 극복해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간 인물들의 치열함이다. 젊은 시절 불량배 다리 사이를 기어가는 굴욕을 참아낸 대장군 한신(韓信)이 대표적이다. 갖은 고난 끝에 오왕 합려를 도와 아버지와 형을 살해한 초나라 평왕에게 복수한 오자서(伍子胥),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인 오왕 부차(夫差)와 월왕 구천(勾踐) 등 ‘복수의 화신’들도 <사기열전>의 주요 인물이다. 인생사 성공과 실패를 떠나 고난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사기열전>을 관통하는 주제다.

“죽는 것이 무엇이 어려우랴. 어떻게 죽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더 어렵다. 참고 참고 또 참아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과업을 이뤘으니 열혈남아가 아니고 무엇이랴. 치욕을 참아야 사람 구실을 하고 큰 뜻을 이룰 수 있다.”

사마천은 역사를 움직인 전국시대 유세가(遊說家·왕에게 자신의 이론을 설득시켜 정국을 좌지우지한 정치인)들을 비중 있게 다뤘다. 이들 역시 ‘의지의 인물’이다.

소진(蘇秦)은 위나라와 조나라 등 여섯 나라를 동맹으로 묶는 합종책(合從策)으로 진나라의 팽창을 15년이나 막아냈다. 장의(張儀)는 이에 맞서 진나라 중심 동맹체인 연횡책(連橫策)으로 천하통일의 발판을 마련했다. “소진과 장의 역시 자신의 유세가 군주에게 활용되기까지 10~20년을 떠돌아다녀야 했다. 큰 뜻을 버리지 않았기에 찾아온 단 한 번의 호기를 입신양명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굴욕을 이겨내는 자가 진정한 강자"

사마천은 인정받기를 원하는 욕망을 인간 행동의 강력한 동인(動因)으로 봤다. ‘자객(刺客)편’은 연나라 태자의 지극한 도움에 감동받아 진시황 암살에 나섰던 형가(荊軻)와 은인을 위해 목숨을 바쳐 원수를 대신 갚은 섭정 등 다섯 명의 얘기다.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지(死地)에 뛰어들기도 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먹고 자는 욕구 못지않게 강력하다. 부하나 동료의 마음을 얻은 뒤 그(자객)를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시도한 사람들의 처세술도 빛난다. 무릇 지도자는 부하를 대할 때 이처럼 정성을 다해야 한다.”

사마천은 마지막 편인 ‘태사공 자서’를 통해 ‘발분저서(發憤著書)’란 표현으로 <사기열전>을 마무리했다. ‘곤란에 처하거나 가난한 시절에 마음을 굳세게 하면 도리어 그 사람을 분발하게 해 걸작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고난은 인간을 키우고 역사를 발전시키는 자양분이라는 얘기다. “주나라 문왕은 유리에 갇히게 되자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제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에 처하자 유교 경전인 ‘춘추’를 지었다. 손자는 다리를 잘리는 형을 받은 뒤 ‘손자병법’을 저술했고, 진나라 재상 여불위는 촉에 유배된 이후에 백과사전인 ‘여씨춘추’를 편찬했다. 이들은 모두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마음에 깊이 맺힌 것을 승화했기 때문에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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